정신의학신문 | 서울 광화문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사연)
저는 올해 스물다섯으로 취업 준비 생활이 1년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그동안 겪지 못했던 우울감이나 무력감 등 다른 이들도 많이 겪는 감정들을 한꺼번에 겪고 있어 힘든 나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괴롭고 수치스러울 때가 많지만 아직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제가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느낌을 평소에 많이 받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부모님께 응석 부리거나 탓할 때도 많았습니다. 소심한 성격에 겁을 많이 느끼며 자라왔는데, 여태껏 자신감 넘치고 밝은 성격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자아 성찰이 부족했던 건지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알게 된 것은 좋으나, 어떤 방법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취업하더라도 저의 어리숙한 정신 상태가 발목을 잡을 것 같아요. 어려움을 마주하면 남 탓을 하거나 도망치는 습관을 버리고, 책임감을 느끼고 유능하게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정신적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떤 것을 공부하면 좋을까요?
사연)
K님 안녕하세요,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사회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취업 준비를 하시게 되어 많이 힘들고 괴로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때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움에 빠집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힘든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장기화되면 당연히 무력감과 우울감 등이 따라오기 마련이고요.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 대부분 아마 K님과 같은 마음일 겁니다. 실제로 진료 현장에 많이 찾아오시기도 하고요.
제가 ‘아마 대부분의’ 취준생들이 비슷한 상태에 있을 거라고 추측성 말씀을 드린 이유는 이렇게 취업이 어려운 이유가 K님 자신만의 탓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취업이 어려웠던 적은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매해 수백 명씩 공개 채용을 하던 대기업들의 공채가 다 없어지는 등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없는데, 취업의 어려움을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요. 취업난 때문에 고통이 생기는 이유는 개인이 아닌 이 시기의 사회적인 원인이 더 큽니다.
이렇게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도 주위에서 한, 두 명씩 좋은 일자리를 찾아 취직하고 자신은 50~100군데 쓴 원서가 줄줄이 떨어진다면,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게 되고, 비난하고 자책하게 되죠. 이러한 상황이 또다시 반복된다면 K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격 자체도 소심하고 겁이 많았는데, 여태껏 자신감 넘치고 밝은 성격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남 탓을 잘하고 어려움을 마주하면 도망치는 습관이 있다.’, ‘나는 미숙하고 어리숙하다.’, ‘이런 성숙하지 못한 정신 상태는 취업을 하더라도 나의 발목을 잡을 것 같다.’와 같은 생각들을 마음속에서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사회적인 원인이 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안 좋은 점을 찾아 자기 탓만을 하는 거죠.)
K님은 현재 본인의 상태를 감정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울, 무력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것과 그로 인해 괴롭고 지치는 것. 하지만 ‘아직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라는 정도의 표현까지. 이렇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좋은 능력입니다. 또한 K님은 취업 준비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 자꾸 자신의 안 좋은 점을 보게 되고, 도망치고 싶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성숙하지 못하다는 등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상태에서도 단지 취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부분을 고쳐야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이미 스스로 정신적으로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만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등 마음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좋은 방향으로 의지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모든 힘을 쥐어짜내 노력한다면 지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따라오는 것 조차요. 다만, K님의 경우 이러한 당연한 마음의 작용과 반응을 알지 못해 스스로 성숙하지 못하다고 여기며 수치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울 수 있겠으나 우선은 푹 쉬세요. 잘 자고 잘 먹으면서 지친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잠도 잘 자지 못하고, 가만히 쉬는 것도 잘 못 하는 상태라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길 바랍니다.) 그러면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다시 스멀스멀 살아나기 시작할 겁니다. 그때 다시 취업을 준비하면 됩니다. 푹 쉬려고 하면 주위 친구들과 비교하여 더 늦은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잘 쉬지 못하는 사람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긴 삶에서 잘 쉬는 시간은 앞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K님의 회복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영상을 하나 첨부하겠습니다.
영상 참고 : https://www.youtube.com/watch?v=BiK645BRz3w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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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