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부산 맘편한 정신건강의학과의원, 허량 전문의] 

 

많은 환자분들의 삶을 경청하다 보면 어릴 적 경험했던 트라우마 즉, 시련, 상처가 성인이 된 오늘날까지도 만성적인 허무함과 우울함, 무감동성 성격, 대인 관계에 대한 불안, 거절에 대한 민감성, 쉽게 긴장하는 성격 등에 영향을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료 공간에서 흔히 관찰되며 여러분의 인생 전반에 작용하는 사건들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인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이나 사별, 양육자의 비공감적이거나 정서적 공포를 유발하는 학대, 친구 관계의 배신과 따돌림, 성적인 불쾌한 경험, 주변의 과도한 기대와 압박은 지긋지긋하지만 우리의 생활 전반에 무의식적 기억으로 남아서 스스로는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몸은 기억하는 공포와 불안으로 나를 괴롭히는 사건들이죠. 마치 어릴 적 배운 두발자전거를 성인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다시 타게 되는 경험처럼 말이죠.

 

대인관계 민감성, 거절 못 하고 눈치를 보는 나 

(혹시 당신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

트라우마는 아이가 타인의 눈치 보고, 의기소침해지며 주눅 들게 만듭니다. 그런 아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울타리’ 형식으로 변형되어집니다.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세상과 타인에 대해서 ‘내 울타리 안에 안전한 관계인지, 내 울타리 밖의 나와 친밀하지 않으며 나를 공격하고 미워하는 위험한 관계인지’ 의심하게 만들고 ‘내 울타리 안의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떠나지 않을지’ 만성적인 불안과 대인관계의 예민함,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경험합니다. 

아이는 타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기주장이나 부탁을 거절하는 것과 같이 타인이 자신의 울타리를 떠날 수 있는 상황에서 용기 내지 않으며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착한 아이의 형태가 나타나게 될 수 있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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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일까? 

(융통성이 부족한 자기 처벌적인 성격 = 초자아)

이러한 무의식적인 습관적인 생각은 스스로가 외부 세상과 나의 간극이 생기는 것에 대해 힘들어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바로 분리불안입니다.

흔히 ‘분리불안’하면 떠오르는 상황은 유치원 아이가 스쿨버스가 도착했을 때 엄마를 붙들어 매고 우는 모습이지요, 이러한 분리불안 패턴은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기에서도 완벽주의적 성향이나 강박 증상으로 표현됩니다. 

예를 들면, 한 직장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이 프로젝트를 완벽히 해내지 않으면 내 동료나 상사는 나에게 실망할 것’이라는 마음에 어릴 적 경험했던 분리불안이 작용하여 우리의 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부단히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강박증상의 예를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가스밸브, 콘센트, 문 잠금장치, 오염이나 청결에 대한 ‘확인 행동’ 또는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매사 걱정하는 ‘예측 불안’은 나 혹은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겨서 우리의 관계에 간극이 생길 수 있음에 대한 대표적인 ‘분리불안’ 증상이지요. 

이러한 스스로의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자아는 더욱 완벽주의적이고 철두철미해지는 강박적인 성향을 강화시켜 나갑니다. 이렇듯 개인의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생각과 행동을 담당하는 영역을 ‘초자아’라 하며 이는 나도 모르는 나의 성격적인 영역입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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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하는 안의 부정적 감정 반응

제가 진료 환경에서 흔히 쓰는 표현은, 우리의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빗물을 담아내는 그릇이 있다면 그 그릇의 크기는 유한할 것입니다. 즉,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좌절 상황은 그릇의 용량을 넘어 부정적인 감정이 넘쳐흘러내립니다. 즉, 일반적으로 감정은 표출되고 환기되어야 되지만 ‘울타리’ 관점을 가진 자아는 본인의 생각과 감정이 타인과 같이 외부를 향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조준하게 됩니다. 즉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스스로를 벌하듯 죄책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불안 초조와 같이 각성된 신체적인 반응으로 표현됩니다. 

예를 들어, 발표를 앞둔 약한 자아는 ‘긴장하면 안 된다, 남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초자아적 무의식적 기준이 작동할 것입니다. 이때 내가 잘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의 무의식은 죄책감을 들게 하거나, 양 귀가 붉어지게 만들거나, 목소리가 떨려 말더듬을 유발하는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벌할 것입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자극하는 어릴 적 상처가 재현되는 트라우마 반응 때문이지요.   
      

극복하기 위한 자아의 의식적 노력 

그러면 우리는 어릴 적 상처로부터 벗어 날 수 있나요? 고정된 건가요? 성격은 바뀌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극복 가능하다’입니다. 어릴 적 결핍과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성격은 스스로 새로운 나를 찾고자 하는 욕구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항상 스스로가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믿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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