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게시판에 '사연&질문 게시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이 게시판에 올라온 사연과 의사 선생님의 답변을 가공하여 <닥터's 메일>이 만들어집니다.

오늘 인터뷰를 진행한 김재옥 선생님은 '사연&질문 게시판' 답변 활동을 가장 활발히 하시는 선생님 중 한 분이신데, 삼성역에 개원을 하신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정신의학신문]
선생님 안녕하세요? 연초에 개원이라는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김재옥 원장]
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2021년은 기억에 남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정신의학신문]
네, 선생님과 의원에도 많은 복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면 항상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제가 궁금해서기도 하지만, 대부분 선생님들의 진료 철학과도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아 꼭 물어보는 편입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의사의 길을 걷게 되셨고, 어떠한 이유로 정신건강의학과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김재옥 원장]
사실 학창 시절때는 공대가 목표였어요. 하지만 첫 수능을 망쳤고, 재수를 하게 되었죠. 다시 수험 준비를 하다가 고민이 많은 와중 룸메이트가

"너는 대기업형 인재가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진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친구의 영향인지 지금은 둘 다 의사가 됐습니다. 다행히 의학 역시 기계처럼 원인과 결과가 비교적 명확한 학문이라 만족하며 공부할 수 있었죠.

대기실
대기공간

의학을 공부하니 자연히 의학의 한계에도 생각이 미치게 됐습니다. 의학이란 인과론을 기반으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 다루다 보니, 사람을 사람 그 자체가 아닌 고쳐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경험을 하게 됐죠. 나이가 여든인 분이든, 환갑인 분이든 암에 걸리면 수술을 해서 치료를 해야 하니까요. 여든인 분이 수술을 한 뒤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환갑인 분이 수술을 받을 때 주변 가족들의 고통이 어떨지는 (당시 제가 생각하기에는)의학의 변두리에 있는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오히려 의학 변두리에 있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듣고 가끔은 같이 고민하다 보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있었습니다.

[정신의학신문]
공학과 의학에 대한 시선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니, 만족하는 측면과 그렇지 못한 측면이 모두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의 선택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계신가요?

[김재옥 원장]
진료실에서 내담자의 얘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제가 그 분의 이야기 속에 어떤 변곡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때는 감사함을 느끼고, 그 감사함이 다시 저를 건강하게 만들어주죠. 그러니 제 결정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김재옥 원장
김재옥 원장

[정신의학신문]
방금 전 "의학 변두리에 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가끔은 같이 고민하다 보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있었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선생님께서는 '정신건강의학과'는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재옥 원장]
간단하지만 간단하지만은 않은 질문이네요.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우울이나 불안, 불면, 집중력 문제 같은 의학적인 원인 때문에 방문하시지만, 결국은 그 외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죠. 그래서 자신의 어긋난 이야기를 확인하고, 그 이야기 속에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질병을 찾아 치료하고, 의학 변두리에 있는 이야기들도 함께 고민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원에서 병을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이기에 병이 아닌 고통도 함께 고민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우울, 불안 같은 정신적인 아픔을 느끼고 계시거나, 쉽게 말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안고 계신 분들이 도움을 받는 곳입니다. 진료실에서 가장 흔히 듣는 얘기가 ‘이런 것을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로 시작하는 이야기 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보통 아픔의 핵심인 경우가 많죠. 다른 사람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 속 어두운 곳에 있는 얘기가 있으시다면 한 번쯤 방문하셔서 대화를 나눠보셨으면 합니다. 어둠 속에 있는 무언가가 괴물이라면 두려워 할 만하지만, 장난감 괴물이라면 굳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정신의학신문]
괴물과 장난감에 비유해주시니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형상화해서 보여주는 상자가 있는데,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수업 장면이 있거든요.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시나요?

[김재옥 원장]
우선, 내담자가 해야 하는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 드립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할 때는 마음이 복잡해 집니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이 얘기가 소문이라도 나는거 아닌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해도 괜찮은 타이밍인가.’

이렇게 얘기를 하기 힘든 상황이 지속될수록, 스스로가 이상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문제있는 사람이라는 오해만 강해지죠. 그래서 충분한 시간과 안정적인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립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야기를 함께 듣고 그 이야기의 의미와, 그 속에 있는 내담자의 가치를 발견해 재해석합니다. 그동안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던 점들을 알게 되면 이야기는 재해석되고, 재해석된 이야기 속에 내담자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죠. 그렇게 이상한 이야기를 가진 문제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한 이야기 속의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 됩니다.

진료실
진료실

나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는 늘 혼란을 가져옵니다. 여기에 더해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다른 이에게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나만의 어두운 비밀이 됩니다. 이런 비밀이 하나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고통스러워 집니다. 하지만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야기 속에는 사실 최선을 다했던 내 모습이 언제나 있습니다.

다만 그 당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며, 그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그 이야기는 다시 내가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바쁘게 현실을 살다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둘씩 쌓이게 되고,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마음의 빚이 되어 어느 순간 인생의 긍정적인 부분을 줄이고, 부정적인 부분을 늘립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늪에 있는 기분이 들 때, 자신을 되돌아봐 스스로의 이야기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의학신문]
글도 쓰시면서 사연에 답변도 달아주시고 많은 활동들을 하시는 것 같아요. 글 쓰는 것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김재옥 원장]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글을 쓰는 것도 익숙합니다. 그래서 정신의학신문 게시판에 올라오는 사연 글에 답변을 하거나 지식iN 활동도 하는 등 지금도 글 쓰는 활동을 계속 하고 있죠. 이런 온라인 활동은 오프라인 진료와는 또 다릅니다. 진료실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도와드리지만 시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차마 나오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주로 온라인 질문 게시판에 모여 있고,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고민하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진료실에서 받았다면 더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연이나 질문을 만나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이나, 미성년자, 의료수급자, 성소수자, 정신과 기록이 인생에 악영향을 줄까봐 등 무언가 정신과 문턱을 넘기에 걱정이 되는 것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온라인에서 도움을 요청하시는 경우들이죠. 이런 분들이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정보와 용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의학신문]
책을 집필하시고 유튜브 활동도 하시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책과 유튜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표지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표지

 

[김재옥 원장]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는 군인을 대상으로 쓴 책입니다. 대부분의 남자가 정신건강의학과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것이 군대에서입니다. 자신이 힘든 경우도 있지만, 주변에 힘든 사람이 다니는 것을 보게 되죠. 문제는 군대에서는 정신적인 아픔이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정신력, 정신교육 같이 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정신의 개념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우울, 불안, 불면 같은 치료받아야 할 정신적인 고통이 ‘군인으로서 준비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잘 못 해석되어 버리죠. 군 간부부터 일반 용사까지 모두 이런 오해를 가지고 있기에,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편견을 줄이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유튜브 채널
유튜브 채널 썸네일

유튜브 역시 같은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튜브는 군인 뿐 아니라 다양한 독자층을 위해 정신건강과 관련 있는 일반적인 내용도 다루고 있습니다.

정신건강, 정신병, 정신질환 어떤 말이든 결국 내 안에 있는 이상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 속 받아들일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가장 안전하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은 정신건강의학과이고, 한 번의 문턱을 넘는다면 그 이후의 삶은 이전의 삶보다 편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어요.

첫 상담은 정신과 기록이 아닌 일반 병의원에서 한 상담으로 처리될 수 있고, 수급자인 경우 교통비 정도의 자기부담으로 진료를 받으실 수도 있죠. 미성년자나 성소수자인 경우에도 차별없이 진료 받을 수 있구요. 한 번의 진료를 받으시더라도, 얻어가실 수 있는 것들이 투자하는 것에 비해 많으실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이야기 하러 오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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