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이 상황이 내 탓인지, 아이 탓인지, 아니면 서로의 성향이 잘 맞지 않아 그런 것인지 혼란스럽고, 멘붕에 빠지는 느낌을 피하기 힘듭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 것 같은데 지치고, 짜증나고, 그러다 보면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경우가 있지요. 그 당시의 심정은 스스로가 한참 지나 나중에 생각해 보아도 잘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잠깐 후회하고, 다시 육아전선으로 열심히 뛰어들겠지만 간혹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는데도 본인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육아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원인을 어디서부터 찾아보아야 할까요?

 
그렇다면 좀 더 상황을 이성적으로,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먼저 아이의 기질이나 성향과 관련이 있는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부모가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 판단을 해야겠지요. 물론 두 가지가 어느 정도는 겹쳐있을 가능성도 아주 높습니다.
 
아이의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면 먼저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물론 육아와 소아심리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은 그 당시의 상황이 아이의 어떤 어려움과 관련이 있는지를 명확히 구별해 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반드시 전문가처럼 명확히 구분해 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러한 경우 대부분은 아이의 기질이나 성향과 관련이 있고, 혹시나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면 대부분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학교 등 또래관계에서 드러날 테니까요.
 

우리 주위에는 기질적으로 유독 힘든,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기질적으로 유독 힘든,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기질적으로 유독 힘든 아이를 어려운 아이(difficult baby)라고도 하는데 대략 열 명중 한 명정도를 차지하며, 특징으로는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 강한 반항을 보일 때가 많고, 대체로 매우 예민하고, 부모의 화를 돋우는 행동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쉽지 않은 기질을 타고나는 아이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요.
 
이러한 기질 탓이라고 생각된다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힘들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힘든 상황을 예상하고, 담담하게 반응한다면 아이의 기질이 안정되어 갈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의 준비만으로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서 지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부부간의 긴밀한 협력(가령 아내가 아이 문제로 지친 기색이 보이면 남편이 즉시 도와야 겠지요)과 활용 가능한 주위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맘키즈에 올라온 글들을 보며 느끼고, 배우며, 서로 댓글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것도 인맥을 활용하는 좋은 사례가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쉽지 않고, 노력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도 부족할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의 문제행동의 원인을 병리로 보기 보다는 기질 탓으로 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병리와 아이의 기질이 일정비율 섞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면 관계상, 또 발달연령에 따른 주된 병리가 차이가 있고, 제가 전달해 드리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은 아니기에 모든 병리적인 문제들을 다 열거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한번쯤은 병리로 인한 영향으로 생각을 해 봐야 하는 상황으로는, 또래관계를 매우 힘들어 하며, 표현하는 언어와 놀이가 많이 늦되어 보이고, 나이와 상황에 맞지 않는 주제와 내용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걱정을 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경우, 현재 아이가 심한 적응상의 어려움이 없다는 가정 하에, 우선은 부모의 판단을 존중해 드립니다. 그 다음은 아이의 이런 병리적인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부모의 환경적, 심리적 요소는 없는지 살펴보시도록 합니다. 그러나 혹여 문제행동이 심해지거나 또래관계에 어려움이 커진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알려드립니다. 결국에 부모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아이가 앞으로 잘 자랄 수 있을지, 앞으로 잘 해내갈 수 있을 지입니다. 일단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이의 장점을 믿고, 힘들 때도 많겠지만 굳게 버텨 내시도록 조언을 합니다. 육아라는 긴 항해를, 풍랑 속에서 잘 헤쳐 나가도록 격려는 해 주되 언제라도 힘에 부치면 돌아와 기댈 수 있는 마음의 안전기지(secure base)가 되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신체적인, 경제적인, 환경적인 요인은 물론이요, 부모의 정신병리나 완벽주의적인 성향, 자극 민감성 등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육아를 하기 전에는 그럭저럭 버텨내 오던 이러한 어려움들이 육아라는 커다란 과제에 맞닥뜨려서는 버텨내는 힘이 버거워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아주 어린 아이의 엄마같은 경우에는 산후우울증도 간과할 수 없지요.
 
이러한 상황들에 처한다면 먼저 자신을 돌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육아에 관한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잠시 자신을 돌보는 동안 육아에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최선을 다해 준비 해야겠지요. 스스로가 힘든 상황에서는 아이에게 잠깐은 잘 대해 줄 수 있겠으나 이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과거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으면 당장 생명이 위독한 경우가 아니라면, 후방으로 후송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야전병원에서 치료받고, 재정비 후 전선으로 다시 뛰어들었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 우리 아이, 잘 자라 줄까요?

 
지금 이 순간 아이의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모습들이 나중에 또래관계에 있어서, 아니 몇 년 후의 상급학교에서의 생활에, 심지어는 성인이 되어서 까지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걱정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부모의 과도한 걱정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걱정으로 인해 아이가 받아야 하는 정상적인 사회적 자극과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들은, 우리들이 어린 시절 그랬듯이 스스로 앞길을 헤쳐 나갈 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들을 방치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 지켜보고, 어려움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도와야겠지요.

처음부터 잘 한다면 이미 아이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어린 시절 어설프고, 주위의 걱정을 살만한 행동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아닌가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지요. 그러니 그러한 문제들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아이의 장점을 부지런히 찾고, 잘 자라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충분히 좋은 엄마(Good-enough mother)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영국의 소아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도널드 위니콧이 처음 언급한 개념입니다. 그 교과서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의 고유한 생각과 느낌에 공감해 주며, 아이가 부모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민감하게 파악하여 즉각적이고도 적절하게 반응하는 부모"
 
완벽한 엄마(Perfectly good mother)가 아니어도 괜챦습니다.(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충분히 좋은 엄마(Good-enough mother)가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아이가 완벽하게, 충분히 좋은 자녀가 되기 쉽지 않듯이... (그렇다면 이미 아이가 아니겠지요) 모자란 서로를 인정하고, 아껴주고, 버텨 나가면 됩니다. 가끔은, 아니 자주 힘들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즐기면서 버텨 나가면 시간은 결국 당신편입니다.
     
     
장혁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조선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대병원과 전북대병원에서 소아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으며 현재 아이나래정신건강의학과(광주)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조선대학교의과대학 외래교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대한청소년정신의학회 평생회원, 아동정신치료의학회 정회원 등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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