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편: 생애 첫 한 시간- 아기 편
너무나도 연약한 아기
소나 말과 같은 동물의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곧 네 발로 섭니다. 열심히 어미를 따라다니고 또 매달립니다. 대개의 동물들은 출생 직후부터 어느 정도는 스스로 먹고, 움직이고는 합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침팬지나 고양이, 개 등의 동물은 만숙성을 보입니다. 즉 출생 직후에는 제대로 서지도 먹지도 못해서, 어미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숙성 동물 중에 단연 일등은 바로, 인간입니다. 갓난아기는 서는 것은 고사하고, 사실상 앉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도움이 없으면 조금도 이동할 수 없습니다. 다른 영장류의 발달 수준과 비교하면, 인간의 뇌는 고작 1/4만 완성된 상태로 태어납니다. 이런 수준의 뇌로는,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신생아의 위와 장은 사실상 아무것도 ‘소화’를 시키지 못합니다. 아주 특별한 음식, 즉 어머니의 젖이 아니면 안됩니다. 쌀이나 밀은 모든 인류가 오랜 역사동안 주식으로 먹어왔지만, 신생아가 먹으면 반드시 탈이 납니다. 사실상 6개월 전에는 어머니의 젖, 혹은 특별하게 처리된 우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소화하지 못합니다. 체온도 혼자서는 조절하지 못합니다.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병이 납니다. 어머니 품에 꼭 안겨 지내는 것이, 즉 어머니의 체온조절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면역력도 아주 약합니다. 생후 6-12개월 간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면역인자, 그리고 모유에서 얻는 면역력에 기대야만 합니다.
아기만큼 연약한 어머니
도대체 왜 이렇게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일까요? 수백만 년 전, 우리의 조상은 두발로 서서 다니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골반이 작아졌습니다. 여성의 골반은 남성보다 크지만, 그래도 아주 작습니다. 인류의 수많은 어머니들은, 아기를 낳다가 숨졌습니다. 상당수의 모성사망은, 단지 태아의 머리가 골반에 비해서 너무 컸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기는, 모종의 타협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최대한 일찍 낳는 대신,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아기를 돌보아 주기로 한 것입니다. 진화적인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신생아는 사실 미숙아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출산 후의 산모는, 너무나도 연약한 아기를 하루 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돌봐야 합니다. 임신 중보다 더 고됩니다. 태반이나 자궁이 해주던 일을, 이제 직접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세상에 태어났지만, 사실상 태아와는 별 다를 바 없는 상태입니다. 만약 태아가 충분히 발달하기를 기다렸다면(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 지금보다 임신기간이 15-21개월 정도 길어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기간동안, 어머니는 아기를 돌보는 일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일에도 신경을 쓰기 어렵습니다. 아기를 대신 봐주던 혹은 다른 일을 대신해주던지 간에, 누군가가 도와줘야만 합니다. 가족, 특히 남편의 도움은 의무적입니다. 어머니가 된 아내에게, 가장 특별한 배려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분위기도 바뀌어야 합니다. 눈치보지 않고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충분한 기간동안,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아기에게 집중할 수 있으려면, 남편과 가족 그리고 사회 전체의 각별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핥아주기 혹은 어루만지기
젖먹이 동물, 즉 포유류에 속하는 동물들은, 출산 직후에 무엇을 할까요? 강아지를 키워본 분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미들은 열심히 혀로 새끼의 몸을 핥아줍니다. 몸을 정성껏 핥아서 체온을 유지하고, 호흡을 자극하며 배설을 촉진합니다. 또한 어미는 새끼의 냄새를 기억하며, 애착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핥기는 거의 강박적입니다. 핥기가 끝나기 전에는, 어미는 아무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드물게 새끼를 핥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핥아지지 못한 새끼는 곧 죽고 맙니다.
이러한 핥기의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인간, 그리고 돌고래같은 해양 포유류입니다. 돌고래야 물 속에서 핥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은 왜 핥지 않을까요? 인간은 양 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민족의 출산과정을 분석해 본 결과, 산모는 아기를 낳자마자 손으로 아기를 만지고 문지르며 껴안았습니다. 아기를 어루만지며, 달래고 아기의 얼굴과 손, 발 그리고 입을 토닥거립니다. 이러한 첫 한 시간의 어머니와 아기의 신체적 접촉은, 향후 아기의 정서적 발달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어머니는 아기를 처음에 왼쪽으로 감싸려고 합니다. 모든 문화권에서, 그리고 모든 민족에서 공통된 현상입니다. 어머니가 왼손잡이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갓 태어난 아기에게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들려주려고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실제로 아기를 왼쪽으로 안으면, 체중이 더 잘 증가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아기들은 주로 오른쪽을 보기 때문에, 엄마가 왼쪽으로 안으면 서로 마주보면서 더 깊은 교감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측 뇌와 좌측 뇌의 발달도, 아기를 안는 방향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첫 한 시간에 어머니와 아기가 살갗을 마주 대고, 눈을 마주 보는 것이, 이제 세상에 막 나와 힘겨워 하는 아기에게 정서적으로 얼마나 중요할 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특히 인간의 신생아는 아주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어머니의 손길과 체취, 그리고 심장소리와 목소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막 태어난 아기를 산모가 직접 안아주면, 보다 덜 울고, 보다 금방 체중이 늘고, 보다 오랫동안 수유를 하는 것으로 연구되었습니다. 그래서 경험이 많은 산파들은, 아기를 받으면 씻기지도 않은 상태에서, 바로 어머니에게 안깁니다. 게다가 현명한 산파는 태지를 아기의 몸에 고루 바르도록 합니다. 태지란 신생아의 몸에 묻어 있는, 하얀 크림같은 물질입니다. 언뜻 보면 좀 더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신생아의 호흡과 체온유지, 감염예방, 탈수를 막아주는 아주 중요한 물질입니다. 어머니의 손으로 문질러 바르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생애 첫 한 시간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면, 일단 아기를 씻깁니다. 물론 태지도 깨끗이 씻겨 나갑니다. 그리고 아기는 분만실을 떠나 신생아실로 향합니다. 수십년 이상 지속된 이러한 출산관행은, 이제 의학적으로 그다지 추천되지 않습니다. 생애 첫 한 시간은 어머니와 꼭 붙어서 보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갓난아기의 몸에 묻은 태지를 어루만지고,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아기와 대화해야 합니다. 또한 아기에게 첫 젖을 물리며, 서로의 체온과 체취를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출산 후 30분 이내에 모유수유를 시작하도록 하고, 출생 후 몇 시간 동안 아기를 씻기지 않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자동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많지 않습니다. 씻기지 않은 아기를 어머니에게 안겨주는 파격적인 병원도 거의 없습니다. 30분 이내에 첫 젖을 물리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닙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출산 초기 산모와 아기가 같이 있는 시간은 하루 2시간이 안되고, 출산 후 1시간 내에 모유를 주는 경우는 전체의 절반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병원이나 의사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산모들도 꺼립니다. 깨끗하게 씻겨서 배냇저고리와 보자기로 둘둘 싼, 포장지로 싼 선물 같은 아기를 좋아합니다. 모자동실을 해도, 아기는 요람에서 따로 잡니다. 이러한 관행은 산후조리원에서도 계속 됩니다. 심지어 아기를 확실하게 대신 봐주어, 어머니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산후조리원이 인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80%의 분만기관, 심지어 스웨덴은 모든 기관에서 모자동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4시간 모자동실을 경험한 산모도, 미국은 74%, 영국은 89%, 아일랜드는 무려 약 96%에 이릅니다. 모유수유에 대한 인식도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60년대 무렵, 미국 등 구미 선진국에서는 모유수유율이 무려 2% 수준까지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전세계 완전모유수유율(6개월 기준)은 평균 38%까지 높아졌습니다. 아직 한국은 모자동실율이 낮고, 완전모유수유율도 약 18%에 불과해서 갈 길이 멀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아기를 낳느라고 너무 힘들었는데, 바로 아기를 안고 수유하고 돌보는 것은 도무지 무리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아기 문제는 접어두고, 출산하느라 녹초가 된 산모를 잠시나마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지 않겠냐는 것이지요. 너무 산모를 혹사시키면, 자칫 산후 우울증이라 올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출산 후 첫 한 시간이 어머니의 건강, 특히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계속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생애 첫 한 시간- 어머니 편’에 계속)
호주국립대학교 인문사회대 석사
서울대학교 신경인류학 박사과정 수료,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강사
의생명연구원 연구원,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