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하게 불규칙한 심방세동

손바닥을 가슴에 대보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심장에서 뻗어 나온 동맥중 비교적 쉽게 맥박이 느껴지는 동맥은 엄지손가락 쪽 손목에 위치한 요골동맥이나 목동맥인데, 이 곳을 만질 수 있다면 만져보라. 당신이 특별한 심장질환이 없다면 신기하게도 거의 일정한 리듬으로 규칙적으로 뛰고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번지점프대에 올라있거나 스포츠 경기에서 박빙의 승부를 치르고 있다면 심장은 더욱더 격렬하고 빠르게 뛴다.
심장은 이렇게 언제나 뛰고 있다. 그것도 당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맞춰서, 일정한 리듬에 따라 일련의 규칙성을 가지고 심방에서 심실로 혈액을 채우고 그 후 심실에서 온몸으로 혈액을 뿜어준다. 기특하지 않은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으니.
그런데 고혈압, 갑상선질환, 심장판막질환, 관상동맥질환 등 심장에 무리를 줄만한 병들을 오랫동안 앓게 되면 이런 규칙적 리듬이 변하기 시작한다. 심방이 규칙적으로 뛰면서 심실을 채워줘야 하는데 부르르 떨기만 하면서 효과적으로 혈액을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심방에서 내려오는 전기자극도 일정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심실도 매우 불규칙하게 뛰게 된다. 즉, 심방세동(Atrial fibrillation)이 발병한다.
심방세동은 치료를 필요로 하는 부정맥 중 가장 흔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고령일수록 흔하고 심장이 뛰는 것이 불규칙하게 되어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맥박이 빠지는 듯한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다른 부정맥들은 심전도검사를 해보면 대개 맥박의 이상이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심방세동은 신기하게도 불규칙한 맥박의 반복성이나 규칙성조차 불규칙하다. 그저 부르르 떨리고 있는 심방에서 어쩌다 한 번씩 불규칙한 심실의 박동이 만들어지고 이 박동에 대해 우리는 ‘아, 심장이 불규칙하게 제멋대로 뛰고 있구나’ 하고 인지하게 된다.
다른 증상으로는 호흡곤란,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불규칙한 맥박 외에 아무런 증상이 없는 환자도 있다.
증상의 유무와 관계없이 심방세동이 환자와 의료진을 긴장하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합병증 때문이다. 심방이 부르르 떨고 있어 혈액이 심방에서 소용돌이치는 와류(渦流, turbulance)를 형성 하고 이는 색전(emboli) 즉, 피떡을 만들어 몸 곳곳에 색전증(embolism)을 유발한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흔히 잘 알려진 뇌졸중이다. 그래서 심방세동의 치료는 피를 잘 굳지 않게 해 색전 형성을 억제하는 약을 복용하여 뇌줄중을 예방하는 것이 핵심이다. 항응고제라고도 하는 이러한 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해야 뇌줄증의 위험도를 상당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된다. 단, 주의할 점은 피가 잘 굳지 않게 되는 약이므로 상처가 나면 피가 잘 멈추지 않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출혈로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그래서 이런 약제를 복용할 때 주의할 점이나 합병증은 주치의에게 꼭 자세히 물어보고 설명 듣길 바란다.
많은 질병들이 그렇듯이 증상이 심하게 불편하지 않고, 또 주위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병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간과하기 쉽다. 심방세동도 그런 병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뇌줄중, 심부전, 말초혈관색전증 등 다양하고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진단하고 치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제나 변함없이 규칙적이던 기특한 심장이 어느 순간 성격이 변하고 제멋대로 뛴다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조기에 바로잡아, 더 큰 병을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