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사람을 안 만나요
안녕하세요.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사연 남깁니다. 저는 가족들 외에 다른 사람들과 일절 교류를 안 합니다. 일은 하는데 짧은 시간 동안 응대만 합니다. 인간관계에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인간관계에만 미친 듯이 노력하던 때가 있었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절 피했고 싫어하는 티를 냈어요. 뒷통수도 맞아봤고 손절한 아이들이 제 앞에서 제 험담하는 것도 들어봤어요. 인간관계라는 게 참 생각해 보면 더러운 것 같아요. 저는 인간관계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람 안 만나면서 혼자 생각한 게 대화 기술이 떨어지나, 아니면 생각하는 방식이 이상한가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해봤는데, 저한테 취할 수 있는 이익이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저랑 멀어지려고 피하는 것도 느껴본 적 있어요. 저도 다양한 관계를 맺어봤고, 그 관계를 지금 돌아보면 미숙하지 못한 관계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주위에 가족밖에 없습니다. 무리 짓는 것도 싫어해요. 어릴 때는 무리 지어서 잘 놀았는데, 고등학교 때 무리에서 떨궈지고, 또 떨궈지고 한 기억이 있습니다. 일대일 개인으로 관계 맺는 게 훨씬 좋아요. 저도 ‘어떻게 사람들하고 관계 맺고 잘 이어가지?’ 이런 생각을 해요. 관계 유지도 잘 못하고요. 일정 기간 되면 그 관계가 다 끝납니다. 허무한 기분도 들어서 인간관계 포기 상태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제한적이고 단절된 인간관계로 인해서 고민이 많으시군요. 사연을 읽으며 과거의 관계 속에서 느끼셨던 좌절감과 실망, 상처와 함께 현재의 대인관계 양상이 이대로 괜찮은지 하는 생각에 복잡하신 사연자님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간관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민의 영역이 아닐까 싶은데요. 인간관계가 쌍방향적인 것이다 보니 누구 한 사람만 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조건 노력한다고 해서 내 마음처럼 되지도 않기에 그런 것이겠죠.
사연자님 역시 학창 시절을 비롯해 과거에 인간관계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하신 시기가 있으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노력한 만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싶으셨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실망스럽고 마음이 아프셨겠습니다. 친구들과의 무리에서도 떨어져 나가는 경험이 반복되고, 사람들이 피하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회의감도 들고,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겠다는 마음도 많이 드셨을 텐데요. 그런 상처와 배신감, 실망 같은 복합적인 마음들이 인간관계에 더 이상 힘을 쓰지 말자는 마음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되네. 결국 또 돌아오는 것은 상처고, 결국 나 혼자 남네.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네.’라는 생각을 갖게 되신 것 아닌지요. 그러면서 더 이상 마음을 다치기 싫어서 아예 관계를 맺지 않기로 결심하게 되신 것이지요. 내가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기 보호 심리의 발현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가족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어지고, 관계에 더 이상 애쓰지 말고 신경 쓰지 말자고 하면서도 지금 이런 모습이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상태입니다. 관계를 포기했다고 말씀하셨지만 이렇게 사연을 남겨주신 것도 여전히 관계에 대한 마음과 고민이 있으시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상처도 받았고 실망도 했지만 지금 이런 상태가 아닌, 관계를 잘 맺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도 마음 깊이 있지 않으신지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관계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관계에서 상처받고 버림받는 느낌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드시는 것 아닌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관계를 피하고 계시지만, 언젠가는 극복하고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사연자님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지만 과거의 경험들이 떠오르고, 다시 그런 부정적 경험을 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드는, 인간관계를 원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양가적 감정 상태인 것으로 보입니다.
관계에서 미숙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우리는 누구나 관계에서 성숙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고, 다양한 갈등을 겪고 싸우거나 멀어지기도 합니다. 또, 그런 후에도 다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가 회복되기도 합니다. 설사 관계에서 잘못한 부분이나 미성숙한 부분이 있었더라도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오해를 풀고 관계가 나아지기도 하고요. 물론 모든 관계에서 이렇게 갈등이나 오해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관계에서는 끝내 오해나 입장 차이가 해결되지 않기도 하고, 또 다른 관계에서는 특별히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서로의 생각이나 성향 차이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 중에서 어떤 관계는 흘러가는 인연으로, 또 다른 관계는 많은 갈등과 오해 속에서 멀어지는 인연으로, 또 소수의 관계는 그럼에도 서로 이해하며 오래 지속되는 관계로 남기도 합니다. 어떤 관계는 멀어지고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생각지 못한 계기로 다시 인연이 이어지기도 하고요.
모든 관계가 다 오래 지속될 수는 없으며, 아주 소수의 인연이라고 해도 마음과 생각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자체로 큰 축복임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관계에 대한 높은 기대나 이상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조금 더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사람이나 관계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오히려 작은 일에도 실망하거나 관계가 틀어지기 쉽습니다. 상대방도 나처럼 미성숙한 사람임을 전제로 하고, 처음부터 관계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바라보시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친구에 대해서도 단짝 친구, 모든 것을 공유하는 존재라기보다는 몇 달에 한 번 서로 안부를 묻고 식사를 함께하는 친구, 특정 주제나 공통 관심사에 관해 나누는 친구처럼 조금 기대치를 낮추고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관계에 너무 몰두하고 애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많은 것을 바라게 되고, 여유가 없거나 지나치게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 노력했던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죠. 상대방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생활과 생각을 존중할 때 오히려 관계가 더 건강하게 오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서로가 너무 가까워지다 보면 상대방과 내가 잘 분리되지 않고, 서로의 경계를 침범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지난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 멀어진 패턴을 한번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은 무엇인지, 그때 사연자님의 행동이나 생각은 무엇이었고,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한 번 정리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런 과정을 통해 말씀하신 미성숙했던 부분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탐색해 보고, 앞으로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대인관계에서의 사회적 기술(social skill)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요.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하고 공감하는 법,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법, 협력과 배려심처럼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 부족한 경우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상담을 통해 전문가와 함께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 도움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반적인 대인관계 패턴을 돌아보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시도해 보면서 피드백을 받고, 점진적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관계를 모두 포기했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연자님 마음 안에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다만 또다시 관계를 맺기가 두렵고, 또 다른 실패와 상처를 겪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염려가 있으신 것일 텐데요. 지금의 그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시면서도, 조금씩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을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을 혼자 해나가기가 어려우시다면 전문가를 통해 도움을 받아보시기를 권유합니다. 미성숙하고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누구나 관계 속에서 실수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성장하고, ‘완벽’하지 못해도 ‘더 나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용기를 내시면 좋겠습니다.
삼성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준배 원장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임의
전)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부교수
전)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마음건강클리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