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문득 공허함이 찾아오거나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때 많은 분은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해보고 싶어 하며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통로가 바로 '우울증테스트’입니다. 스스로 질문에 답하며 점수를 매겨보는 행위는 막연한 불안감을 수치화하여 확인하고 싶은 본능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가 검진은 현재의 심리적 좌표를 파악하는 기초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에 나타난 높은 점수가 곧바로 우울증이라는 최종 진단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울증은 뇌의 전두엽 기능과 신경전달물질의 체계가 생물학적인 불균형 상태에 빠진 복합적인 현상입니다. 테스트 점수는 ‘현재 마음의 항상성이 무너졌음을 알리는 일종의 경고등‘으로 이해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적절합니다.
실제로 임상현장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준 선별도구인 PHQ-9(Patient Health Questionnaire-9)의 주요 항목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명확해집니다. 이 테스트는 지난 2주 동안 다음과 같은 증상들이 얼마나 자주 나타났는지 묻습니다.
첫째는 하는 일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이 거의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는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하고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감정적 소모입니다.
셋째는 잠들기가 어렵거나 자꾸 깨는 현상 혹은 반대로 너무 많이 자는 수면의 불균형입니다.
넷째는 평소보다 기운이 없고 피로감을 느끼는 신체적 에너지의 저하입니다.
다섯째는 입맛이 없거나 반대로 너무 많이 먹게 되는 식욕의 변화입니다.
여섯째는 자신이 실패자라고 느껴지거나 자신이나 가족을 실망시켰다는 자책감입니다.
일곱째는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여덟째는 남이 알아챌 정도로 거동이나 말이 느려지거나 반대로 너무 안절부절못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증상입니다.
마지막 아홉째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나 자해에 대한 위험한 충동입니다.
이러한 항목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울증의 핵심 기제는 뇌 내부의 에너지 대사 효율이 급격히 저하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에서 즐거움과 동기를 담당하는 도파민이나 정서적 안정을 돕는 세로토닌 그리고 의욕을 고취하는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위에서 언급한 테스트 항목들처럼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해내던 일상적인 과업들이 감당하기 힘든 짐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마치 고성능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가 과열되어 전체적인 시스템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추는 현상과 유사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억지로 힘을 내라고 다독이는 것보다 생물학적인 회복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치료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우울증테스트' 문항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지점은 수면의 질과 식욕의 변화 그리고 집중력의 현저한 저하입니다. 마음의 병이 몸의 생체 리듬을 먼저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뇌의 산물인 만큼 신체적인 징후들은 현재 뇌 회로가 과부하 상태임을 나타내는 가장 정직한 생체 지표가 됩니다. 만약 2주 이상의 기간 동안 일상 기능을 수행하는 데 명확한 지장이 생겼거나 수면 장애와 식이 문제가 동반된다면, 전문적인 의학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임상적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시행하는 정밀 진단 과정에서는 환자의 유전적 배경과 환경적 스트레스 요인 그리고 뇌의 기능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우울증은 뇌의 해마 부위가 위축되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등 물리적인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는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대 정신의학은 신경 가소성을 활용하여 뇌 세포 간의 연결망을 다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료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약물치료는 신경세포 사이의 전달 체계를 정상화하고 뇌 내의 염증 반응을 감소시키며 신경 성장 인자의 생성을 촉진하여 뇌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정밀한 과정입니다. 또한 인지 행동 치료는 부정적인 사고 회로가 뇌에 고착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정서적 자극에 대한 전두엽의 통제력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통합적인 치료방식은 뇌의 유연성과 회복 탄력성을 재건하여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재발의 위험을 낮추도록 도와줍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장승용 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