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변성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아이인데 다이어트를 한다고 밥을 안 먹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트레스를 받고 밥을 못 먹거나 혹은 너무 많이 먹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365일, 매일매일 섭취하는 식사의 양과 종류가 일정하신가요? 우리는 닭장에 갇혀서 사육을 당하는 존재가 아니고 먹고 마시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프리카 사자처럼 먹잇감이 없어 며칠을 굶어야 하거나 초원의 사슴들처럼 가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죠. 자유로운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식사에서 누구보다 자유롭지 못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게 인간입니다.
학생 시절 뇌에 대한 해부학적 구조를 배울 때 식이 조절 중추가 뇌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밥을 먹는 조절 시스템이 배나 입이 아닌 뇌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힘든 일을 겪고 "식음을 전폐한다."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입맛을 잃었던 경험을 한 적이 있었을 겁니다. 또한, 독한 감기나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도 밥맛이 없죠. 맹장염에 걸린 환자들은 대부분 밥을 못 먹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욕 감퇴는 정신질환뿐 아니라 내과적 질환의 진단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증상입니다. 건강과 식욕은 아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섭식장애는 흔한 질환이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질환입니다.
"식음을 전폐한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갑작스러운 식욕의 변화는 인간의 전 생애를 통틀어 대부분 여러 차례 경험하는 증상입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식문화가 맞지 않거나, 신체적인 질환 등의 이유로 섭식의 문제가 생길 수 있을 만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흔한 증상입니다. 전 인류의 2%, 젊은 여성의 경우 10%까지 있을 정도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y Association)에서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Fifth version, DSM-5)에서 섭식장애에 속하는 질환들은 급식 및 섭식장애(feeding and eating disorders)로 통합되어 제시했습니다. 섭식장애에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거식증), 신경성 폭식증 및 폭식장애 및 회피 제한적 섭취장애 등이 있습니다. 섭식장애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신체 건강과 직결되는 음식 섭취와는 관련된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모든 정신질환 중 사망률이 가장 높습니다.
▷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진단 기준
미국 정신의학 진단 편람의 신경성 식욕부진증 진단 기준에는 현저한 체중의 감소(개인의 성별, 나이, 발달 추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체중 증가와 관련된 극심한 두려움 등을 포함합니다. DSM-4와 달라진 진단 기준은 무월경 요소를 삭제하여 좀 더 진단 기준이 확대되었습니다.
▷ 왜곡된 자아상에 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2012년도 한국 질병관리본부 연구에 따르면, 정상 체중 여자 청소년의 35.6%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이 중 20.1%는 구토나 하제 복용을, 19.5%는 과도한 운동 집착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하였습니다.
▷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또래 집단 특징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해주세요.
10대 때는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나이입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외모에 관심을 가지지만 그때는 다른 요소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나이이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집착이 좀 더 작아질 수 있습니다. 아이가 외모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을 비난하고 나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자연스러운 대화로 아이와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곡된 부분이나 건강하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 ㅇㅇ이는 어떤 사람이 이쁜 거 같아?" "그 사람이 이뻐보이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사람이 이뻐 보이는 이유에는 어떤 게 있을까?" 이렇게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외모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고 수정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은 마른 몸과 저체중이 아닌 여러 요소가 작용하니까요. 건강한 자아에서 나오는 자신감, 온화하고 다정한 말투, 친밀하고 유연한 대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오는 여유 등등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섭식장애는 다차원적인 치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1. 내·외과적인 치료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섭식 장애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음식 섭취와 관련된 장애이기 때문에 내· 외과적인 합병증이 많이 동반됩니다. 따라서, 내과적인 치료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섭식장애가 성장 발달이 이루어져야 하는 10대에 생기는 경우, 발달과 성장에 대한 치료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무월경이 있는 경우, 산부인과 진료가 필요합니다. 골다공증에 대한 검진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2. 식습관에 대한 가족치료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식습관 형성을 위해 가족 전체가 노력해야 합니다. 규칙적인 시간에 먹는 연습, 과식이나 외식을 자주 하지 않는 식문화를 가족 전체가 다 함께 형성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먹는 식사, 식사 시간 중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먹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생각보다 식사 시간이 즐겁지 않은 10대들이 많습니다.
식사 시간에 잔소리만 듣다 끝나거나,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만 듣거나, 반찬 투정과 비난이 오고 가는 식사 시간도 많습니다. 이러한 경험 하나하나가 밥을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한 외모에 대한 언급도 주의해야 합니다.
직접적으로 아이에게 외모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더라고 TV를 보면서 연예인을 향한 외모에 대한 평가와 언급 등도 은연중에 아이들의 무의식에 각인될 수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형성된 자아상이 10대에는 왜곡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타인에 대한 외모에 대한 언급과 평가는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들 앞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외모를 평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3. 정신과적인 치료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낮은 자존감, 강박적 성향, 충동성, 우울감 등에 대한 치료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섭식장애는 다른 정신과적 질환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우울장애, 강박장애 등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한 치료가 병행되면 섭식장애가 자연스럽게 치료되기도 합니다.
뉴브레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변성혜 원장
국립중앙의료원 인턴,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 강동구, 마포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촉탁의
(전) 상주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
드림스타트 사례결정위원회 위원, 교육청 Wee센터 자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