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인물 A>

- 1928년, 아르헨티나 출생으로, 시를 사랑하는 독서광

- 194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의학부 입학

- 1953년 6월 의과대학 졸업 및 의사 생활 시작 

 

<인물 B>

- 어릴 때부터 장난기가 많고 겁이 없던 아이, 청소년기에는 쉽게 ‘열폭’ 하고, 사고뭉치라는 평을 들음, 대학 재학 시절, ‘활달하고 무분별하고 사회성 좋은 놈’이라는 평판이 자자함

- 1950~1952, 대학교 재학 중 자전거와 오토바이 등을 이용해 아르헨티나,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 세계 각국을 여행, 남미 여행을 통행을 통해 남미 국가들이 서양 국가들에 착취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돕기 위해 무장투쟁을 하기로 결심

-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쿠바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며, 라틴아메리카의 민중혁명을 위해 싸우다가 볼리비아에서 만 39세의 나이로 사망 

 

여러분은 위의 A라는 인물과 B라는 인물의 간단한 이력 상항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혹시 A에게서는 차분하고 성실하며 모범적인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으셨나요? 그렇다면 B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놀랍게도 A와 B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라는 동일인입니다. 실제로 위에 서술한 두 약력 모두 ‘에스네스토(Ernesto)’라는 본명을 가진 ‘체 게바라’라는 인물의 주요 이력을 각각 서술해 놓은 것인데요, 언뜻 보기에도 독서와 학업에 골몰하는 학구적인 청년의 모습과 세계 각국을 횡단하며 혁명을 꿈꾸고 그 꿈을 무장투쟁으로 이뤄 낸 젊은 혁명가의 얼굴이 동일인이라고 짐작하기란 어렵습니다.

체 게바라의 주요 일대기를 살펴보면 한 인물 속에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몇 가지 특징이 엿보입니다. 바로 중학교 시절까지는 ‘사고뭉치’라는 평을 들을 만큼 행동화가 두드러지다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의과대학에 진학하기까지 진중하고 학구적인 면모를 보이고, 대학 시절에는 돌연히 학교를 휴학하고 세계 일주를 떠나는 등 다채롭고 때로는 모순적이기까지 한 면모들이 드러나는 것이죠.

비록 전문의가 그를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 섣불리 ADHD 진단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나 과도한 호기심과 광범위한 관심 분야에 대한 과몰입, 충동성을 추진력으로 발휘하는 모습 등에 비추어 ‘그가 혹시 ADHD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비단 체 게바라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훌륭하고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이들 또는 천재 중에는 현대의학의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ADHD가 의심되는 인물들이 꽤 많습니다. 발명왕 에디슨부터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어린이들의 꿈을 현실로 이뤄 낸 월트 디즈니, 세계적인 가구 회사 IKEA의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까지. 이들에게는 모두 비슷한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딴생각’의 대가였다는 점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어릴 적부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장난꾸러기였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학업에는 관심이 없고 대개 그림을 그리거나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등의 엉뚱한 행동을 해서 교사들은 그를 “엉뚱하고 멍청한” 학생이었다고 평가했을 정도라고 하죠.

그런 그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8세 되는 해 사업을 시작해서 여러 고비와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만화제작법’을 익히는 것으로 이어져  ‘디즈니 브라더스 스튜디오’를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그는 어릴 적 상상 속에서 꿈꿔 왔던 테마 파크 디즈니랜드를 세계 최초로 현실에서 실현시키는 등 무한한 시도와 실패 끝에 엉뚱한 상상력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하게 되죠.  

또 IKEA의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난독증이 있어 학교 공부를 어려워했지만, 가구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기발한 아이디어, 생각을 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실행력 덕분에 ‘조립 가구’라는 가구 형태의 혁신을 가져오며 세계 최대의 가구 업체를 키울 수 있었지요.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 건축, 과학, 해부학 등 다방면에 걸쳐 인류사에 큰 업적을 남긴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로 평가받는 인물인데요, 그런 그가 반복적인 일을 하기 싫어했고, 싫증을 잘 냈으며, 주의가 산만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쉽게 믿기시나요? 

다빈치는 늘 주위의 사소한 것에 주의를 빼앗기고, 하나의 작품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채 또다른 작품을 구상하거나 병행하는 등 작품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뒷심이 부족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물론 몇몇 세계적인 천재나 성공한 기업가들의 면모에서 ADHD 증상으로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ADHD와 천재성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정하는 것은 비약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에 대한 연관성이 밝혀진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마찬가지로 ADHD 환자들이 ‘지능이 낮다.’거나 ‘행실이 좋지 않다.’는 것 역시 잘못된 편견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ADHD 환자라고 해서 그 사람의 정신적 혹은 성격적 측면을 모두 ADHD로 설명하려 드는 것은, 고차원적 존재인 한 인간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편협하고 단편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발상을 한번 전환해 볼까요. ADHD 증상으로 지목되는 진단 기준 중에, 엉뚱하거나 딴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창의성으로, 높은 에너지 수준과 행동화 경향은 실행력으로 전환해 관심 분야에 집중한다면, 천재는 아니더라도 어느새 ‘평범’을 넘어선 ‘비범’한 능력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따라서 단지 ADHD 환자라는 사실에 너무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마시고, 생활에 불편감을 느끼는 증상은 전문의와 상담하에 잘 조절해 나가면서, 자신이 가진 ADHD 특성 중 나만의 강점과 개성으로 살릴 만한 부분은 없는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 참고문헌: 반건호(2022).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 라이프앤페이지.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