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이 공포증에 대한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어 ‘침입 공포증’이라고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름 붙인 이유는 제 자취방에 누군가 침입해 저를 해칠 것 같은 불안감이 계속해서 들기 때문이에요.

평소 생활할 때는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다가 잠들려고만 하면 이런 공포가 저를 잠 못들게 합니다. 어떤 공포증을 대면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지만, 저는 매번 잠잘 때마다 냉장고 소리, 옆집 문 닫는 소리에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공포가 들어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숙면이 어렵고 종일 멍합니다. 어떤 때는 환청 같은 소리에 놀라 일어나기도 해요. 자는 내내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양상이 처음 시작된 건 약 2년 전이었어요. 평소처럼 생활하다가 강도에 대한 글을 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잠을 전혀 잘 수가 없었어요. 저는 단순히 하루 무서운 이야기를 본 데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날 이후 제 수면은 완전히 이상해져 버렸습니다. 초기 심각할 때는 몇 번이고 몸을 일으켜 문이 잘 닫혔는지, 창문이 닫혔는지, 옷장과 화장실, 세면대 밑에 누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했고 저를 보호하기 위해 옆에 칼을 놓고 자기도 했어요. 그 당시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를 받고 있던지라 단순히 이런 식으로 공포가 발현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치료되며 이런 문제는 서서히 사라져갔습니다. 하지만 드문드문 이에 대한 불안감은 조금씩 남아있었어요.

그러던 요즘, 이런 공포감이 다시 심해지고 있습니다. 벽을 등지지 않으면 뒤에 누가 서 있을 것만 같고, 누군가가 당연하다는 듯 제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요. 이어플러그를 끼고 자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신경이 곤두서고, 끼지 않으면 소리에 놀라 깹니다. 

매번 수면에 문제가 생기니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우울감이나 불안감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오직 잠들 때만 이런 증상이 나타나요. 이런 공포증을 혼자 치료할 수 있나요? 그렇다고 수면제를 처방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상담 치료만이 답일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잠들 때마다 느끼시는 불안감과 수면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점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군요. 몸과 마음의 휴식과 충전을 위해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수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불편감이 상당히 크시겠습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면은 몸과 마음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자는 동안 우리 몸은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합니다. 뇌에서는 기억의 통합과 일상에서 접한 다양한 자극에 대한 정보처리와 같은 활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수면시간을 지키고 규칙적인 수면을 통해 수면주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번 깨어진 수면사이클을 다시 돌리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도 현재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사연에서 남겨주신 것처럼 지금 경험하시는 수면의 어려움은 수면주기가 깨어진 것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불안감, 수면 시 느끼는 안전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입니다. 2년 전 강도에 대한 글을 접한 것이 트리거(trigger)가 되어 그 후 지속적으로 잠을 잘 때마다 불안을 느끼고 계십니다. 이전에 우울과 불안에 대한 치료를 받으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사연에서 남겨주신 내용만으로 어떤 종류의 불안이었는지까지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느끼시는 수면 시 낯선 외부인의 침입 혹은 안전에 대한 불안과 같이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것보다는 더 일반적인 종류의 불안이 아니셨을까 짐작해봅니다. 혹은 지금 수면 시 느끼시는 것처럼 또 다른 특정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공포, 불안을 경험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불안이나 걱정이 일상의 대부분 상황이나 대상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면 범불안장애로 볼 수 있고,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국한하여 나타난다면 특정 공포증에 해당합니다. 물론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심리검사와 면담 등을 거쳐야겠지만, 현재 경험하시는 수면 시의 어려움은 특정 공포증의 증상에 가깝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대처하기 위해 잠들 때 불안을 느끼시는 이유에 대해 먼저 탐색해 보시는 과정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깨어 있고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행동이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데 반해 수면시간에는 상대적으로 사연자님께서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고 위험한 상황이 왔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욱 불안을 느끼시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강도 이야기를 처음 접한 이후 그에 대한 이미지나 비슷한 사건, 사례를 계속 떠올리며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반복하며 반추(rumination)하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울과 불안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고 해주셨는데, 치료를 중단하며 이전에 느끼셨던 불안이 현재의 특정 공포증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치료 후에도 잔존 해 있던 불안감이 강도 이야기로 인해 더 촉발되면서 잠들 때마다 불안을 느끼시는 것이지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느끼는 불안이 실제적인 위협에 근거한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이 아닌, 실제보다 더 심한 정도의 불안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불안이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일어날 가능성은 현저히 낮으며, 그때도 사연자님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통제감을 기르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불안을 다루는 연습을 하시면서 수면사이클이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적절한 운동과 일상생활에서의 활동량 유지,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개인적인 노력과 함께 정신과 혹은 상담센터 등을 통해 전문가와의 치료를 병행하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우울과 불안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해주셨고,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색과 효과적인 대처를 위해 현재 느끼시는 특정공포증이 예전에 경험하셨던 불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며 특정공포증을 위한 치료적 개입이 이루어지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정공포증의 치료를 위해서는 공포를 느끼는 대상을 단계적,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단계적 노출치료, 또는 처음부터 매우 강한 자극에 노출하여 공포반응이 없어질 때까지 치료를 반복하는 홍수법,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대한 인지적 재평가와 행동수정을 통해 불안을 다루도록 하는 인지행동치료, 불안이나 공포의 원인을 탐색하며 무의식이나 갈등 상황을 다루도록 돕는 면담 치료 등이 주로 활용됩니다. 또, 항불안제나 항우울제 등의 약물치료를 병행할 수도 있습니다. 불안을 다루기 위한 이런 치료를 진행하면서 수면 상태가 호전되는지를 살펴보면서 필요할 경우 수면치료를 위한 개입을 함께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 노력과 함께 전문가와 함께 사연자님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 방법을 탐색하여 도움을 받으셔서 잠드는 시간이 불안과 공포가 아닌, 편안하고 이완할 수 있는 시간으로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수면센터
대한민국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