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올해 18세인 여학생입니다.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받은 지 9개월이 되어 가는데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그건 제가 시체를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시체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죽고 싶은 마음에 시체에 대한 정보와 자살 방법, 시체가 나오는 게임을 찾아보는 데 몰두했다면, 이제는 시체를 직접 만져 보고 먹어 보고 싶고 심지어 시체에 성욕을 가지기도 합니다. 최근에 이러한 생각이 더 커지면서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끊임없이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는 생각을 하고 목매달아 죽은 사람, 토막난 시체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심적으로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로 자기비하를 할 때면 직접 사람을 죽여 그 시체와 성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생각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시체의 피를 볼 때의 쾌감과 전율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문득 제가 시체성애자가 아닐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네크로필리아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원인이나 심리적 불안감으로 시체에 집착하는 걸까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답변) 안녕하세요. 현재 치료받고 계신 우울증의 증상과 함께 문의해 주신 성과 관련된 생각과 충동으로 인해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사연에서는 해당 생각이나 충동을 경험하신 기간 등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아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거나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답변드리는 내용들은 현재 상태를 이해하시는 참고 자료로 활용하시고, 정확한 진단 및 도움을 위해서는 정신과 전문의, 임상심리사와 같은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가를 통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남겨 주신 내용을 비춰 볼 때 변태성욕장애(paraphilic disorders)의 하위 유형 중 하나인 시체성애증(necrophilia)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증상들을 경험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변태성욕장애는 성행위 대상이나 방식에서 비정상성을 보이는 것이 특징으로, 1)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부적절한 대상이나 목표를 향해 강한 성적 환상이나 욕망, 행위를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보이며, 2) 이것이 사회. 직업적 영역을 비롯한 일상에서의 고통과 부적응을 야기할 경우 진단됩니다. 시체성애증은 변태성욕장애의 한 종류로서, 시체에 대해 성적 쾌감을 느끼며 시체와 성교를 맺고 싶어 하거나 실제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 주요 증상입니다. 

시체성애증을 경험하는 이들은 시체에 대한 강한 열망과 시체와의 성관계에 대한 판타지를 느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시체와의 성관계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피해자의 시신과 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시체성애증이 단순히 정신질환으로서뿐만 아니라 타인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실제적인 위해를 가하는 범죄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합니다. 

시체성애증의 원인으로는 사회적 거절감이나 소외감,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이나 불안, 우울 등으로 인해 살아 있거나 상호작용이 가능한 대상이 아닌, 반응이 없고 저항이나 거절할 수 없는 대상인 시체를 선호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존재합니다. 거절하지 않는 대상인 시체를 통해 욕구를 충족하며 지배감(dominance)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시체와의 성교가 아닌 살아 있는 성적 파트너와 관계를 맺는 경우에는 상대방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시체 역할을 하는 롤플레이를 통해 욕구를 충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때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반응을 하면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고 보고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깊은 애착이나 유대감, 사랑을 느꼈던 대상이 떠나간 후 잊지 못하거나 떠나보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시체에 대한 집착, 애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역사 속 인물들이나 소설, 신화 속 인물 중에서도 사랑했던 대상과 사별한 후 잊지 못하는 마음으로 시체와 성교를 했다는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우울, 불안과 같은 다른 정신장애의 영향 또는 공병(두 가지 이상의 정신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상태),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는 유년기 외상적 기억과의 연관성, 생물학적으로는 뇌 기능이나 구조에서의 이상, 호르몬의 기능 이상, 인지적 측면에서는 성에 대한 왜곡된 신념 등 다양한 요인들이 원인으로 고려됩니다. 정확한 원인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개인의 삶의 역사 및 과거 또는 현재 경험하고 있는 다른 정신장애와의 관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연자님의 경우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현재 경험하시는 성과 관련된 생각과 충동이 우울증과의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는 전문가를 통한 면밀한 상담과 관찰, 진단이 추가적으로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시체에 대한 성적 충동을 경험한 기간이 얼마나 되셨는지, 반복적으로 그런 생각과 충동, 관련 행동이 나타나고 기간이 6개월 이상 되셨는지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살 생각에서 비롯된 시체에 관한 관심이 현재는 시체와의 성관계, 타인에 대한 살인 충동과 살인 이후 시체와의 성관계 욕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살 사고 자체는 우울증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이후 현재까지 느끼고 계시는 시체에 대한 성적 욕구는 우울증의 연장선상으로 볼 것인지 독립적인 하나의 질환으로서 시체성애증으로 볼 것인지 전문가에 의한 보다 면밀한 평가가 요구됩니다.

특히 염려되는 부분은 단순히 시체에 대한 성적 욕구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체를 먹거나 타인을 찔러 보고 싶은 욕구 같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우며,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고 범죄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판타지와 열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체에 대한 욕구가 공격성과 결합되어 제대로 관리 및 통제되지 못할 경우에는 사연자님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기에 반드시 정확한 진단과 치료적 개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적으로는 현재 우울증 치료를 담당해 주고 계시는 전문가분께 이런 증상을 공유하시고 적절한 개입 방법을 논의해 보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성 관련 상담이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를 통해 도움을 받으시는 것도 효과적일 것입니다. 치료 방법으로는 개인 또는 집단상담과 같은 상담치료적 접근, 항우울제를 비롯한 약물치료적 접근, 비합리적 신념에 대한 탐색과 함께 실제적인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인지행동치료적 접근이 있습니다. 이 중 어떤 치료법을 선택하실지는 전문가와의 논의를 통해 결정하실 수 있으며, 하나 이상의 치료적 접근을 병행할 수도 있습니다. 

시체에 대한 성적 욕구를 느낀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기에 주변 분들에게 이를 알리거나 도움을 청하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혼자 고민도 많으셨을 것이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 계시는 전문가분께조차 이야기하기가 선뜻 쉽지는 않으셨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용기내어 사연을 남겨 주신 것만으로 일단 치료를 위한 한 발을 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연을 남길 때 그러셨던 것처럼, 용기를 내셔서 우울증 치료를 담당하고 계신 전문가분께 현재 느끼시는 어려움을 나누시고 전문적인 진단과 이후의 치료적 도움을 꼭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