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고 2 딸아이 때문에 매일매일 힘든 엄마입니다. 회사에서 아이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애틋하고, 막상 아이를 보면 답답하고 화가 치밀고 그러네요.
맞벌이로 3세까지 낮에는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셨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하며 정성으로 키웠는데, 아이는 친구 관계도 어렵고, 중학교까지 상위 6%였는데 고등학교 와서는 6등급을 받고 있고, 한동안 자퇴니, 전학이니, 유학을 얘기하는 걸 지금은 겨우 달래 학교는 다니고 있습니다.
친구 관계, 외모에 대한 불만, 각종 SNS 등으로 정신이 산만해 보이는데, 그렇다고 마음 놓고 노는 성격도 아닙니다. 최근 들어 자기는 마음 터놓을 친구가 하나도 없고, 남친도 없다 하고, 제가 봐도 절친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한없이 안쓰러운데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저나 남편도 정이 안 갈 때가 많아 ‘저러니 친구가 없지.’ 싶기도 합니다.
1월생이고, 뭐든 빨랐던 아이라 어릴 때는 주도적이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쯤 그런 행동을 아이들이 싫어한다는 걸 알았는지 점점 소극적이 되어 가는 것 같았어요. 지금 담임선생님 말씀으로는 학교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하시는데, 본인은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힘이 들고, 그래서 학교에 가기 싫은 것 같아요.
아이는 작은 자극에 예민하고 뭐든 기준이 높아 본인이 힘든 것 같고, 동생과 비교해 보면, 눈치가 부족하고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져 보여요.
말로는 한없이 높은 대학과 과에, 유학을 꿈꾸면서 공부는 안 하고, 눈은 온갖 비싼 물건과 비싼 음식, 비싼 운동에만 가 있으니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이 모든 게 친구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문제는 저도 아이를 대하기가 점점 지친다는 데 있네요.
어릴 때도 엄마 껌딱지였는데, 지금도 같이 갈 친구가 없다고 영화 보러 가자 하고, 쇼핑도 엄마랑 하는 게 제일 좋다 하고, 맛있는 식당이 있다면서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래도 힘들 때 엄마를 찾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친구가 없어서 엄마한테 집착하는 걸로 보여 걱정되고 겁이 나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자꾸 왜 이럴까 싶고, 내 사랑이 부족해서 애정 결핍으로 밖에서도 사랑을 못 받나 싶고, 또 한편으론 나를 찾는 아이를 힘들어하는 제 모습에 나쁜 엄마인 것만 같아 힘도 듭니다.
기준이 높고 멘탈이 약한 아이라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를 못 가면 너무 좌절할까 봐 공부를 시켜야겠는데, 그러기엔 친구 관계로 또 너무 무너져 있는 멘탈이라 공부를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같네요. 또 그걸 다 받아 주기엔 저도 너무 지쳤고… 결국 그게 핵심이네요.
참고로, 학교에서 특별히 왕따라든지 학교폭력 등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다들 단짝이든 남자친구든 있는데 본인은 사소한 일이든 고민이든 전화할 친구가 없고, 매일 등하교를 함께할 친구나 자율학습, 학원에 같이 다닐 친구가 없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두서없는 글이 되어 버렸는데, 제가 상담을 받아야 할 문제일지, 아이한테 어떤 도움을 줘야 할 문제일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나쁜 엄마라면 그렇게 지적해 주세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고등학생인 따님분에 대한 걱정과 고민 때문에 이렇게 사연을 적어 주셨네요. 용기 내서 사연 올려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행여 어디가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아프면, 괜스레 미안해지면서 더 마음이 아파 오는 게 아마도 많은 부모님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연자님께서 따님분에 대해 걱정하시는 부분은 크게 두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현재 친구와의 관계에서 마음을 터놓을 만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두 번째는 학업 성적은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는데 이에 비해 노력은 부족한 것 같고, 목표와 이상은 높아서 실패나 좌절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세 번째는 이런 자녀를 받아 주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자녀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럼 하나하나 좀 더 상세히 말씀을 나눠 볼까 합니다.
우선 자녀분의 친구 관계, 즉 사회성에 대한 문제부터 이야기를 나눠 보지요.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자녀분이 마음 터놓을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말에 안쓰러움과 함께 걱정스러운 마음도 드실 겁니다. 어찌 안 그렇겠습니까. 사랑하는 우리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잘 지내고, 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님이나 비슷한 심정일 것입니다. 다만, 현재 따님이 가까운 친구가 없는 문제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이 계속해서 있어 온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일시적인 문제라면 크게 걱정하실 일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어느 정도 있고, 그동안 친구들과 별 문제없이 잘 지내 왔으며, 어느 시기엔 단짝도 있어서 우정을 나눠 온 경험이 쌓여 왔다면 지금 시기가 좀 그런 것일 뿐, 때가 되면 또 따님과 성격이 잘 맞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경우라면 걱정은 조금 내려놓으시고, 지금처럼 따님과 데이트 겸 좋은 시간도 보내시고 또 곁에서 친구처럼 고민을 들어 주시면서 딸에 대한 애정이나 필요한 조언, 그리고 지지와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어 왔고, 친한 친구가 없는 현재 상황에서 외로움을 크게 느끼면서 학업에까지 지장이 있는 상태라면, 따님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 좋을지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는 따님분의 솔직한 마음과 생각이 중요해 보입니다. 즉, 지금 단짝은 없지만 학교생활에 크게 불편감도 없고, 스스로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자녀분의 의사를 존중해서 사연자님께서도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 학창 시절 동안 교우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이 계속되어 왔고, 현재도 그런 문제 때문에 학업에 지장을 받을 만큼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느끼면서 사회성을 키우고 싶어 한다면, 특별히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는지 살펴보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조금씩 바꿔 나갈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연에 올려 주신 내용만으로는 현재 단짝 친구가 없다는 것 외에 따님분의 사회성이나 대인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말씀해 주신 내용으로 봐서는 자극에 예민한 기질이나 기준이 높은 성격적인 측면이 스스로는 물론 친밀한 관계를 맺고 형성하는 데 영향이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자극에 예민한 기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발현되면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배려심 있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게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민한 기질을 잘 조절하지 못하거나 부정적인 경향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지거나 긴장 수준이 높아지고,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관계에서 소극적이 되기 쉽습니다. 또 타인의 비판적인 의견이나 거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타인에 대한 수용도가 떨어지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굳어지면서 타인과 친밀해지거나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죠.
사연자님께서 따님분을 잘 이해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따님분의 성격과 기질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개인의 성격과 기질이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관점이 심리학에서는 지배적인데요, 기질은 사람의 행동이나 성격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성으로 쉽게 변화하지 않는 본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격은 각 개인에 지닌 특유한 성질이나 품성을 의미하는데요, 환경적 영향과의 관계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개성으로서,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평생에 걸쳐 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장 과정에서 가족이나 중요한 사람들에게 자기 고유의 기질을 충분히 존중받으며 긍정적인 상호작용과 공감, 지지를 많이 받는 것이 긍정적인 자기정체감 형성과 이후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도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따님분의 타고난 기질이 예민하다고 해서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또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을지 자녀분과 함께 대화를 나눠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자녀분께서 이전에 비해 학업 성적은 많이 떨어졌는데, 목표로 하는 대학이나 이상은 높은 데 반해 노력은 부족한 것 같아 걱정이 많으시네요. 사실 높은 목표와 이상을 가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사연자님 말씀대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또 성실히 노력하는 태도는 비단 학업이나 입시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자 성공적인 인생을 꿈꾸는 분들에게는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만, 꾸준한 노력과 성실한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기 어렵고, 그것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성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삶의 태도입니다. 한창 성장 중인 청소년 시기의 따님께서 학업이든, 관계에서든 너무 높은 기준을 설정해 둔다면, 항상 그것을 달성하기란 현실적이지도 않고 자신에게도 엄격한 잣대로 작용해서 자기 수용을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따라서 부모님은 물론 따님께서도 어떠한 목표를 설정한 다음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실천적 노력을 하는 것은 중요하나, 그 목표나 기준에 조금 못 미치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며, 나름의 성취를 이루었고 또 이를 위해 기울여 온 노력에 대한 인정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지금처럼 따님께서 흔들리고 외로울 때 곁에 있는 부모님께라도 속마음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그간 따님분과 유대 관계를 잘 쌓아 오시면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부모님의 역할을 해 오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인격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건강한 실패나 좌절의 경험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또 그럴 때는 누구든지 잠시 방황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게 될 수도 있고요. 혹시라도 따님분께 때때로 그런 좌절과 방황의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든든한 나무처럼 뒤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신다면, 길지 않은 방황의 끝에서 다시 일어나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사연자님과 따님의 꽃길 같은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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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피려는 노력을 하기, 그리고 작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의식적으로’ 목표에 대해 보상하기. 중요한 내용을 많이 배워갑니다!"
"근육을 키운다는 느낌으로 조금씩 실천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