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통통샤인 정신과, 이상수 전문의] 

 

한줄평: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 그래도 폴의 도박중독을 이해해 보자.

 

오래전 영화다. 무려 1992년도. SBS 오석태의 생활영어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를 보여주며 영어공부를 했었던 기억은 있지만, 영화를 직접 보진 못했었다. 오래된 영화는 그때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몇 년 후 청담동 재수학원을 다닐 때, 비디오방 창문에 붙어 있었던 포스터를 보며 ‘언젠가 보겠지’라며 지나쳤었는데. 거의 30년이 흐른 이제야 보게 되다니. 솔직히 넷플릭스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오래된 작품을 좋은 화질로 제공해 준 것과 '응답하라급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소환시켜 주어서. 무엇보다 오래된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줘서.

 

브래드 피트의 리즈 시절

브래드 피트의 젊은 시절 피지컬은 생각보다 정말 눈이 부시게 멋졌다. 특히 환하게 웃는 그의 표정은 압권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의 인기는 아마 BTS급보다 조금 못하는 수준일지 모르겠다. 영화인들이 자신의 빛나는 시절의 모습을 스크린에 담아 두고, 대중과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 부러울 때가 있다. 한국 나이로 59세(63년생. 토끼띠)로 접어든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사진 출처: Columbia Pictures
사진 출처: Columbia Pictures


영화를 통해 브래드 피트의 환한 웃음이 불러오는 안구 정화와 역대급 심쿵 효과를 경험해 보는 것도 즐겁다.

 

짧은 줄거리는 이렇다.

장로교 목사님 가정의 두 아들이 몬태나 주의 자연을 배경으로 낚시를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 삶에 관한 성찰을 담아낸 인생영화인데, 수작이라 손꼽힐만하다. 명작이 으레 그렇듯 흥행성적은 별로였다고 하나, 영화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자연의 영상미로 오스카 촬영상을 거머쥔 작품이다.
 

노먼 형, 동생 폴, 아버지 맥클레인 목사님. 그들은 이 인생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얻었을까? ©Columbia Pictures
노먼 형, 동생 폴, 아버지 맥클레인 목사님. 그들은 이 인생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얻었을까? ©Columbia Pictures


낚시를 통해 삶의 철학과 자신만의 리듬을 배우고 그것을 즐기면서 아버지와 두 아들이 낚시를 하며 대화하는 훈훈한 장면들이 무척 정겹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플라잉 낚시를 10시와 2시 사이의 4박자 리듬의 순수한 형태의 예술로 가르친다.

“아주 옛날 비가 진흙에 떨어져 바위가 되었다. 5억 년 전에. 하지만 그전에 이미 바위들 밑에는 신의 말씀이 들어있다. 들어봐라.”

영화는 큰아들인 노먼의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작 목소리는 레드포드 감독의 내레이션이라고 한다. 큰아들 노먼은 명문 시카고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 이후 사랑했던 가족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소설로 그려냈다.

노먼이 아버지로부터 글쓰기 수업을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문장을 간결하게 요약하는 것을 요구받으며 절제의 미를 배운다. 줄였지만 거기서 다시 반으로 줄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묵묵히 응하면서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는 장면.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래도 그것을 다 해내는구나. 멋지네!' (노먼의 아역은 조셉 고든 레빗. 그는 이 영화로 데뷔했다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로부터 '됐다.' 합격을 받고, 의아하게도 에세이를 아무 미련 없이 휴지통에 집어던지며, 낚싯대를 들고 강가로 뛰어간다.

 

어린 시절 노먼(조셉 고든 레빗, 왼쪽)과 폴, 빅 블랙풋 강가에서
어린 시절 노먼(조셉 고든 레빗, 왼쪽)과 폴, 빅 블랙풋 강가에서

 

동생인 폴(브래드 피트)은 형의 수업이 언제 끝날지를 기다린다. 기다리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형한테 복싱을 해보라고 권하면서 강인한 형을 동경하는 듯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문 낚시꾼이 되겠다며 자신만의 포부를 가지고 성장한다. 노먼은 동부의 IVY리그 다트머스 대학교 진학을 위해서 6년간 집을 떠나 있었고, 그 사이 동생은 고향에서 대학 졸업 후 지역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낚시를 즐긴다. 언뜻 보면 폴이야말로 안빈낙도를 즐기면서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안타깝게는 폴에게는 다른 정신건강 문제가 있었다.

신중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지만,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형 노먼. 반면 동생은 폭포에 배를 타고 떨어져 보겠다고 그러면 신문에 기사가 나서 유명해지지 않겠냐며 철없는 모험을 감행하느라 보트를 훔치는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고, 지역교회 목사 아들과는 무색하게 충동적이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간다.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술과 담배를 즐기며, ‘손이 근질근질하다’며 포커판을 전전한다. 분위기를 띄우는 외향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은 동생. 늘 그런 동생을 걱정하며 웃지 못하는 형이 대비되어 나온다.

사고뭉치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지만, 강가에서만큼은 신선처럼 자신의 삶을 즐겼던 폴. 아마도 폴의 충동적이고 감각적인 기질을 균형적으로 안정화시켰던 것은 낚시였었던 듯싶다. 형과 아버지와 같이 나간 마지막 낚시에서 폴은 강물에 휩쓸리면서도 결국 큰 송어를 낚아채며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고, 아버지로부터 정말 훌륭한 낚시꾼이 다 되었다는 칭찬도 듣고 으쓱해한다. 아마도 승부사적인 폴의 내면이 꿈꾸었을지 모르는 아버지와 형을 뛰어넘은 최고의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뿌듯하고 아름다운 장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어지는 동생의 갑작스러운 사망의 소식은 황망하기 그지없다. 폴은 1938년 5월 이른 아침에 어두운 골목에서 구타당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노먼은 동생이 오른손의 뼈가 다 부러졌고 그의 두개골은 총기둥으로 분쇄되었다는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달하고, 가족은 조용히 슬픔을 참는다. 안타깝게도 폴의 당시 나이는 32세.

 

폴의 도박중독 온전히 이해하기

폴은 술을 먹은 상태에서 주변 상황에 아랑곳없이 뭔가에 홀리듯 포커판으로 갔었다. 밤새워서 도박판에 돈을 조금 따면 기분이 좋았다가, 도박판에서 그러하듯 큰돈을 다 잃었을 것이다. 상당한 도박 빚도 진 것으로 보아 큰 거 한 방으로 잃은 돈을 복구하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을 듯하다. 이제는 돈도 없어 한 번의 대박을 노리는 큰판에 '네가 낄 자리가 아니라며' 끼여 주지 않자,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꼈는지 몸싸움도 일어난다. 아마 그런 행동 패턴이 폭력적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론 폴은 고향이 아닌 시카고 시내의 어두운 뒷골목 길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폴이 문제성 도박에서 도박중독으로 가는 불행하면서도 비참한 최후를 맞는 과정은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시카고대학 교수직을 제안받은 형에게 그 운을 오늘 나에게 좀 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에서 과다 각성된 높은 갈망감이 엿보인다.

형이 동부로 떠난 후 홀로 남겨진 폴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족이 추구하는 가치와 다르게 본인의 성향은 너무 자유분방해서 폴은 청소년기 금지된 욕망을 느끼는 자신에게 실망했거나 우울감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충동적 기질은 목사인 아버지가 어쩌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모범생이고 바르게 자라는 형과는 달리 '난 이 모양이지' 부정적인 자아상에 좌절감을 느끼다 무심코 들어간 도박판에서 큰 횡재(Big win)를 경험해서 그렇게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도박에 빠지면, 조절력을 상실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판돈을 마련하느라 신용을 잃으며 가족과 친구와 멀어지게 된다. 형이 고향으로 돌아왔어도 집에 오지 않았던 폴, 문제는 그 무렵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폴의 죽음, 남겨진 가족들

가족들은 홀로 죽음을 맞은 그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상실감 속에서 살아가고, 아버지는 그를 아름다운 아이로 추억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 장면을 잠시 보여주며 노먼의 가족을 클로즈업하는 영화는 나에게 물음을 던지는 듯했다. ‘자네는 인생을 잘 즐기고 있는가?’ ‘누군가를 효과적으로 제대로 도와주었는가?’ 정신과 의사로 조절 가능한 문제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을지 늘 고민을 한다. 폴이 나한테 왔으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었을까? 도박중독의 대가 강북삼성병원 신영철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하신다. '도박한다고 고생이 많았구먼.'

플라잉 낚시를 하며 자연 속에서 조물주의 섭리를 발견하는 그의 구도자적인 삶의 태도는 정신과 의사로서 본받고 싶다. 이런 인생 영화를 통해서 문제 행동을 둘러싼 삶의 전체적 맥락을 배우고, 치료자로서의 자세를 다시 새긴다는 점에서 유용한 것 같다. 나는 막내이긴 하나, 지나친 책임감을 보이는 점에서 노먼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직업적으로 대부분 의사의 삶이 그러하듯 매 순간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개원을 하고 나서 폴의 웃음처럼 저렇게 환한 웃음을 지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나도 녹음방초의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무위자연을 느끼며, 풍월주인으로 덕업일치를 이루면서 삶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병원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를 잠시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주는 서사와 아름다운 영상이 주는 잔잔한 감동은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히 다가왔다.

 

내가 뽑은 명장면은 이렇다. 인생 영화 포인트 장면이기도 하다.


#1. 노먼이 제니에게 전화로 데이트를 신청하는 설레는 장면

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갔던 장면은 보는 이를 설레게 한다. 우리에게도 저런 순간이 있었지. 세상을 다 얻은 사랑의 순간들이 스쳐 간다.


#2. 노먼이 시카고 대학교에 교수로 취업허가서를 받고, 아버지 서재로 달려가, 함께 서로 시를 읊어주는 장면.

무슨 시인지는 모르나 좋아하는 시를 나누는 부자지간의 상호작용은 참 보기 좋은 장면이었다. 기분 좋게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3. 맥클레인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장면

도움이 필요하나 도움을 거절하는 자들도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울림을 준다.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이 가족의 인생에선 어떤 무게감으로 다가오는지 노먼의 눈물을 통해 보여준다. 동생이 그랬고, 제니의 오빠도 그랬다. 도움을 뿌리쳐서 슬펐던 아픈 역사를 공유했으며 그렇게 위로받고 있었다. 고통을 겪어낸 자가 해주는 말은 힘이 있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위로로 다가온다.


#4. 제니가 기찻길 선로에 자동차를 올려 가는 무모한 장면

'어~ 저러다 사고 나면 안 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나?' 아마 관객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폴과 제니가 심한 자극 추구형 기질에, 반응 억제가 잘 안 되고, 위험회피 기질은 아주 낮은 유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인생을 짧고 굵게 사는 이런 할리우드 기질의 사람들.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단번에 망설임 없이 거는 사람들. 정작 가족들은 힘들 때가 더 많지만, 이들은 이 순간만큼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명대사 리뷰


상실감과 애도에 관해

“이해는 못했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헛된 삶, 그곳에서 취할 인생의 가치, 영화의 마지막 대사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 블랙풋 강의 소리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든다. 그리고 강이 그것을 통해 흐른다. 강은 대홍수로부터 생겨나 태초의 시간부터 바위 위로 흐른다. 바위들 일부는 영겁의 빗방울이다. 바위들 아래에는 말씀이 있고, 말씀의 일부는 그들의 것이다. 난 강물에 사로 잡혀 있다.”


현재에 대한 삶의 태도

“인생은 예술품이 아니고, 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니란 걸.”
“내 초가 있는 힘을 다해 빛을 태우니 비록 이 밤을 다 밝히지는 못해도 내 적과 벗들을 모두 따사롭게 비추리라!”

(링크) 일상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심미안, 미학적 자존감 기르기

 

흐르는 강물처럼, 인생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하루 감사할 것을 찾아보며 좀 더 재미있게 살아가자 다짐했다. 인생 시간의 유한함 속에서 삶의 태도를 점검하는 지혜와 위로를 받으면서.

무엇보다 시인처럼 살아가는 예술적 삶의 태도는 본받고 싶다. 노먼의 고백처럼 누군가에게 그렇게 따사롭게 비추이는 존재가 되고 싶다. 있는 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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