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 엄마를 본 적 있나요?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언제나와 같이 집중해서 뽀로로를 보고 있는 작은아이 옆을 지나며, 큰아이가 시크하게 말했다. “사실 쟤네는 고아지.” 자기도 작은아이와 같은 나이였을 때 뽀로로에 열광했으면서. 큰아이는 학령기의 연령대로 다양한 학습 기회를 맞아 이제는 뽀로로가 시시해진 것 같았다. ‘뽀로로는 학령기 전 아이들에게 왜 이리 인기가 많을까?’ 잠자코 집중한 작은아이를 따라 뽀로로를 보고 있으니,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뽀로로에는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구나.’
당신이 아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 어린이로 상징되는 주인공 외에 부모가 등장했던가? 물론 모든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그렇지는 않지만, 현대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일수록 보호자, 어른의 등장이 덜하다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대표 어린이 애니메이션에서 세계적인 유아용 TV 애니메이션으로 자리 잡은 일명 뽀로로를 살펴보자. <뽀롱뽀롱 뽀로로>는 2003년 처음 방영되기 시작한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이다. 2003년 시즌 1로 시작해, 현재(2021) 시즌 8을 건재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토록 아이들이 열광하는 뽀로로에는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 호기심 많은 꼬마 펭귄 뽀로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동물과 로봇 등 사물 캐릭터 모두 친구로 등장할 뿐이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일을 저질렀느냐고 잔소리하거나, 직접 나서 사건을 해치울 기회를 빼앗거나, 규칙과 약속을 운운하는 어른은 없다.
아이들은 뽀로로를 통해 행동을 제지당하거나 통제받지 않는 자유를 느끼는 것일까.
뽀로로의 주 시청 연령대는 만 3세~만 5세이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 발달 3단계와 같다. 즉 ‘주도성 대 죄의식(Initiative vs Guilt)’의 시기에 해당하는 초기 아동기이다. 초기 아동기에는 2단계(자율성 대 수치와 회의)에서 획득한 자율성에 자기 주도성을 더해가는 시기인 것이다.
주도성이란 대범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경쟁적인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주도성을 지닌 아동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한 후,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또래와 경쟁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주도성이 길러지게 된다.
뽀로로에는 호기심에 한계를 짓거나, 또래와의 경쟁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미리 나서서 정리하거나, 아이가 자신이 세운 계획에 성공하기 수월하게 수정해주려는 어른이 배제되어 있다. 어른의 배제는 아이가 자기 주도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단계이며, 자기주도 학습의 밑거름이다.
장난기가 많은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은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경험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어른의 중재 없이 스스로 해결한다.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왜 굳이 저런 일을 벌일까 싶은 사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등장하며, 아이들은 주인공들과 함께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재기를 발휘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유명한 에피소드 가운데 ‘하늘을 날고 싶어요’에서는 펭귄이라서 날 수 없는 주인공 뽀로로가 날기 위해 노력하는 고군분투 성장담이 그려진다. 뽀로로는 지붕 위에서 수없이 떨어지며 나는 연습을 하고, 가짜 날개를 만들어 달아보기도 하지만 실패한다. 홀로 수많은 시도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고민한 결과 뽀로로는 날 수 있게 된다. 바닷속을 마치 하늘처럼 훨훨.
어른 캐릭터가 등장했다면 뽀로로가 바다를 배경으로 날 수 있었을까.
‘자기 주도성’은 발달 시기에 해당하는 어린 아이가 아니더라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적용된다. 우리 주변에는 바로 앞만 보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만3세 ~ 만5세에 주요하게 발달시킨 주도성은 인생 전반에 거쳐 영향을 미치며 변화해간다. 눈앞에 주어진 길만 밟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기 주도성’은 어디에 멈춰있는 것일까? 조금 더 먼 미래를 고민하고 스스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도 뽀로로처럼 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