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은 잠재범죄 아닌가요?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얼마 전 미국 오리건 주의 한 대학 강의실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10명이 사망했다. 한 학생의 잔인한 묻지마 총격 살인 사건으로 미국은 큰 공황에 휩싸였고, 늘 총기류 사건이 발생할 때면 불거지는 미국 내 총기소지 규제에 관한 문제가 다시금 들쑤셔지고 있다. 총기 규제가 무척 엄격하고, 총기류 범죄 사건이 무척 드문 우리나라로서는 그 심각성이 다소 와닿지 않지만, 매번 터져나오는 이 사건은 무척 복잡하고 큰 미국사회의 근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항상 각종 언론 지면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 공화당 대권 주자 중 한명인 도널드 트럼프는 다소 도발적인 표현과 함께 총기소지 규제를 반대하며 “총기 제한이 아니라, 정신과 치료를 확대함으로써 장래의 총격사건을 막아야 한다. 유지비용이 모자란다며 정신과 수용시설의 문을 닫는 대신에 이를 확충해야한다”고 이야기했다. “무슨 일을 하든 문제는 있기 마련이지, 그렇다고 소지를 제한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며, 무기가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병든 인간들이 문제다”라며 거침 없이 총기 규제 반대에 목소리를 높인 도널드 트럼프는 안 그래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 논쟁에 불을 당기고 있다.
물론 트럼프가 공격적으로 이야기한 숨은 배경에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이권이 얽혀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다만, 그것이 그가 본인 세력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갖다 붙인 핑계일런지는 몰라도 정말 그의 이야기처럼 이러한 엽기적인 사건은 정신적으로 병든 인간들이 문제인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말처럼 수용시설에 그들을 수용해 두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을까.
2000년 대검찰청 범죄백서에 따른 일반인의 범죄 발생률은 10만명 당 2545명으로 2.5%인 반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전체 17만6396명 중 3201명인 1.8%로 일반인 전체 통계보다 낮다고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또, 법무연수원이 최근 발간한 '범죄백서 2014'와 대검찰청의 '2014 범죄분석'을 보면 정신질환 범죄자는 2010년 5천391명, 2011년 5천379명, 2012년 5천428명, 2013년 6천1명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 엽기적이거나 피해가 큰 범행들일수록 범인들의 정신과적 과거력이 밝혀지며 정신질환자의 중범죄가 나날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02년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을 통해 범죄를 예고하고 범행이 발생하기 전, 예비 범죄자를 찾아 감호소에 가두어 둔다. 영화에서도 문제시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범행의 예측이 100%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그리고 이를 예방하는 것이 가능하다면야 이는 정말 꿈 같은 일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영화나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무시무시한 정신병원의 이미지는 대중들로 하여금 은연 중에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감옥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질환의 잠재적 범죄 이미지는 정신과 질환의 사회적 낙인을 한층 더 뜨거운 인두로 눌러 새긴다.
작년 저명한 의학잡지인 Lancet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정신 치료제가 범죄율 저하에도 주목할만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정신질환 치료 약물인 항정신병 제제나 기분조절제 등이 단순히 질환의 재발이나 증상의 완화 뿐만 아니라 폭력범죄에 발생률의 저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8만명 이상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밝혀진 것이다. 이는 아마 질환의 전형적인 증상 외에 공격성이나 불안정성, 충동조절 장애 등의 증상이 두드러지는 환자들에게 주로 투여되는 약물이 항정신병 약물이나 기분 조절제임을 반영한 결과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제외한다면 공격성과 잠재적 범죄를 ‘일반적인 증상’으로 하는 정신질환은 없다. 여러 정신질환들 중 일부 질환의 일부 환자들이 일시적으로 조절되지 않은 공격성과 충동성으로 자타해 위험성을 보임이 정신 질환 전체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급한 일부 환자들의 일시적인 공격적 증상은 앞의 연구에서 증명하였듯 약물과 입원치료로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
작년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에 실린 M.J Hompton 등의 연구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들에서 보여지는 충동성과 공격성은 질환 자체의 망상이나 환청 등의 내용보다 감정적인 충동성, 즉 욱하는 마음의 조절장애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부 공격성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소위 ‘미쳐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말처럼 오리건의 그 대학 강의실에서 교사도, 교장도, 다른 학생들도 모두 총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총은 아무 잘못이 없고 단지 그 학생이 미쳤었던 것이기 때문에, 미친 사람들을 가둬두기만 하면 된다는 그의 논리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의 언사로 인해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상처받을지,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눈총이 더해질지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일반적인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 역시 병에 걸리고 싶어 걸린 환자들은 없다. 전염성 신체질환의 환자들이 의도치 않게 타해를 일으키듯, 일부 정신질환 환자들도 마찬가지일 뿐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일시적으로 격리를 해야할 수도 있고, 질서를 위해 국가나 병원이 강제로 치료를 유지시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감기도 우울증도, 메르스도 조현병도, 모두가 안타까움과 연민의 시선으로 이해하고 돌봐줄 대상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의 따스한 눈길이야 오히려 엽기적 범죄를 막을 열쇠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출처 : Antipsychotics, mood stabilisers, and risk of violent crime/Seena Fazel, Johan Zetterqvist, Henrik Larsson, Niklas Långström, Paul Lichtenstein/Lancet 2014; 384: 1206–14
Cortical Thinning, Functional Connectivity, and Mood-Related Impulsivity in Schizophrenia: Relationship to Aggressive Attitudes and Behavior/Matthew J. Hoptman, Ph.D. Daniel Antonius, Ph.D.Cristina J. Mauro, Ph.D. Emily M. Parker, B.A. Daniel C. Javitt, M.D., Ph.D./Am J Psychiatry 2014; 171:939–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