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토픽] 인공지능도 우울증을 피해갈 수 없다 - 세로토닌의 핵심은 가소성
인공지능(AI)으로 인해 '인간에 더욱 가까운 머신(machine)'이 가능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머신이 환각(hallucination)이나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뒤틀림(psychological quirk)까지도 경험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게 바람직한 일일까?
지난달 뉴욕대학교가 개최한 「뇌와 머신의 정규적 컴퓨테이션(Canonical Computations in Brains and Machines)」이라는 이름의 심포지엄에서(참고 2), 신경과학자와 AI 전문가들은 '인간과 머신의 사고방식의 오버랩'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샴팔리마우드 센터(CCU: Champalimaud Centre for the Unknown)의 자크 메이넨 박사(신경과학)는 "지능적 머신이 인간과 동일한 정신문제 중 일부를 겪는다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Science》는 심포지엄 후 인터뷰를 통해, 메이넨 박사의 생각을 자세히 알아봤다. 인터뷰 내용은 간결성과 명료함을 위해 편집되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Q: AI가 우울증과 환각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A: 나는 계산정신의학(computational psychiatry)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참고 3)과 같은 AI 알고리즘을 연구함으로써, 우울증이나 환각으로 고통받는 환자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각의 방향을 바꿔, AI가 인간 환자에게서 배울 게 있지 않을까?
Q: AI의 정신병리학 메커니즘이 인간과 똑같을까?
A: 우울증과 환각은 세로토닌이라는 뇌 속의 화학물질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로토닌은 생물학적 농간꾼(biological quirk)인지도 모른다.
만약 세로토닌이 지능적 시스템(intelligent system)의 좀 더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와 비슷한 기능을 머신에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세로토닌이 농간을 부려 인간에게 잘못을 초래한다면, 머신에서도 그와 상응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Q: 세로토닌이 AI 연구자들의 사고(思考)를 어떤 식으로 도와줄까?
A: 세로토닌이란 신경조절물질(neuromodulator), 즉 일종의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로, 어떤 메시지를 뇌의 커다란 부분에 신속하게 전파한다. 예컨대, 신경조절물질인 도파민은 전체적인 보상신호(global reward signal)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뭔가 좋은 일이 방금 일어났다면, 뇌 전체가 그 소식을 알 필요가 있다.
신경과학에 대한 계산학적 접근에서는 상이한 신경조절물질들을 상이한 유형의 '제어용 노브(control knob)'으로 간주한다. 이 노브는 AI에서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데, 예컨대 AI에서 중요한 노브 중 하나는 학습속도다.
Q: 당신이 AI나 뇌에서 학습속도를 조절하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
A: 세상이 갑자기 변해서 모든 것들이 종전보다 불확실하고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당신이 외국의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고 가정하자. 그런 상황에서는 당신의 오래된 지식(세상에 대한 일반적 모델)이 구식이 되므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옆으로 제쳐놓거나 다시 공부해야 한다.
우리는 실험실에서 생쥐나 사람에게 특정한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게 하다가, 갑자기 규칙을 바꿈으로써 그런 상황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뇌영상을 살펴보면, 세로토닌 뉴런이 밝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세로토닌을 행복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세로토닌 뉴런은 '좋거나 나쁘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놀랍다(내 예상이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Q: 세로토닌이 행복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신호를 주로 보낸다면, 그게 우울증에서 중요한 이유가 뭘까?
A: 우리의 실험연구 결과는, 세로토닌이 '뇌의 가소성(plasticity)'과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세로토닌은 낡은 신념을 파괴하거나 억제하는 데 특히 중요한 것 같다.
이 결과가 시사하는 것은, 약물이 우울증을 치료해 주는 메커니즘은 '기분 향상'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대응 향상'이라는 것이다.
우울증은 '변화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모델 속에 갇혀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례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자기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관점 전환에 실패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이 경우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예: 흔한 항우울제 중 하나인 푸로작)를 복용하면 뇌의 가소성이 향상된다. LSD, 실로시빈(psilocybin), DMT와 같은 환각제(psychedelics)들도 비슷한 작용을 하지만 작용기간이 짧다. 실로시빈은 현재 우울증 치료제 임상시험에 계류되어 있다.
Q: 그렇다면 AI도 감정이 있거나, 심지어 우울증을 겪을 수 있을까?
A: 물론이다. 나는 로봇도 감정 비슷한 것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했을 때, 세로토닌(또는 그 등가물)이 부족한 인간이나 머신은 다시쓰기(rewiring)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소위 우울증이라는 틀 속에 갇힐 수 있다.
※ 참고문헌
2. http://gias.nyu.edu/canonical-computation-brains-machines-2018/
3.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686146&cid=42346&categoryId=42346
※ 출처: Science
글쓴이_양병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기업에서 근무하다 진로를 바꿔 중앙대 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일하며 틈틈이 의약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글을 번역했다. 포항공과대학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에 가면 매일 아침 최신 과학기사를 접할 수 있다.
https://www.facebook.com/OccucySesamelStr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