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어릴 적 성추행을 당한 상처가 있어요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어린 시절 친척에게 성추행을 당했었습니다. 아직도 그 기억 때문에 힘이 많이 듭니다.
어머니도 우울증을 앓고 계시다 보니, 저에게 아무런 힘도 도움도 되어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더욱 원망스럽습니다.
아무도 저를 보살펴주지 않고, 지켜주지 않은 것만 같아 원망스럽고 외롭습니다. 어렸을 때 겪었던 상처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A) 안녕하세요. 어렸을 때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그 상처의 크기는 무척이나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아무 힘도 없을 때 그런 모진 일을 겪으셨으니 그 상처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라 생각합니다.
일단,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처의 크기가 큰 만큼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긴 호흡을 가지고, 장기간에 걸쳐 치료를 받으셔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쉽게,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늘 그 마음은 실패하게 되고, 부정적인 감정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꼭 긴 호흡을 가지고 접근하셔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질문자 분께서는 꼭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불행한 기억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여러모로 장애를 준다면, 약물치료로 충분히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큰 상처를 받고 나서 생기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도 뇌의 변화로 인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약물)로 그 변화를 조정한다면 충분히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상담을 받는 것도 질문자 분께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보살펴주지 않고 지켜주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힘드시다고 추측이 됩니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된 지금은 '나'를 보살피고 지켜주는 존재는 '나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담 치료를 받게 되면 이런 과정을 밟을 수 있습니다.
저랑 상담했던 내담자가 하셨던 말씀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상담 치료 중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과거에는 누가 내 편이 되어줬으면 이런 마음이 컸었고, 늘 그게 실패를 하고 힘들었었는데, 이제는 그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아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적어도 나 하나는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안전한 동굴 속에 들어간 느낌입니다."
질문자 분도 긴 호흡을 가지고 상담을 받아보시면 분명 이 지점으로 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은 사실, 쉽게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누구도 내 바람만큼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적어도 나 하나는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에 가시면 분명 삶이 훨씬 편해지실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반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명심하시고, 가까운 전문가 분을 찾아뵙기를 권유드립니다.
아무쪼록 어렸을 때 겪었던 상처에서 벗어나셔서 더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