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당신에게] 외현적 자존감, 내현적 자존감
[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자기선호, 자기수용, 자기가치감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외현적 자존감과, 비의식적이고 자동적이며 암묵적으로 누적되어 온 내현적 자존감이 동시에 모두 높을 수 있을까요?
이 둘 모두가 높은 '안정적 자존감' 유형의 사람이, 성인군자 반열에 든 그런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게 저를 포함해서, 우리 대부분은 아닐 겁니다.
반면 이 둘 모두가 일관되게 낮은 경우는 여러 미디어들에서 익히 접한 전통적 의미의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며, 만성적으로 열패감을 경험하고 타인의 칭찬에 어색해하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 피드백을 차마 못 주게 만드는 사람들이지요. 이런 유형은 곳곳에 분포해있고요.
이런 자존감 유형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이 다룰 예정이어서, 여기에서는 먼저 '외현적 자존감 vs 내현적 자존감의 차이'에 기반한 분류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또한 '어떻게' 다루는지 보다는 일단은 그 정체에 대해서 파악하고자 합니다. 내 안의 적을 알아야 이기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으니까요.
현재 외현적 자존감이 바닥인 것으로 보이지만, 웬일인지 내현적 자존감은 꽤나 높은 <손상된 자존감> 유형, 그리고 드러나는 모습은 꽤 괜찮아 보이지만, 의외로 내적 자존감이 형편없는 <취약한 자존감> 유형은 같은 듯 다릅니다. 상당한 분노를 마음 깊이 품고 억압해 온 것은 이들의 공통점이라 할 만합니다.
따돌림, 시험 실패 등 특정한 이유로 자기가치감에 흠집이 생겨 주눅 들어있는 <손상된 자존감> 유형에게도 내면의 분노는 넘실대고, 그럭저럭 잘 덮고 살아왔지만 오랜 기간 차곡차곡 형성된 자동적인 부정적 자존감을 어찌할 줄 몰라 사소한 일에도 휘청하는 <취약한 자존감 유형>에게도 역시 많은 분노가 내면에 꼭꼭 들어차 있습니다.
일이나 사랑에서 실패한 경우 이를 내적(internal), 안정적(stable), 전반적(global)으로 귀인하는 우울한 귀인 양식(*) 역시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입니다. 두 그룹 모두에게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가 빈번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 우울한 귀인 양식(depressive attributional style)의 세 가지 특성.
- 내적(internal) 귀인 : 다른 이유가 아니라 모조리 다 내가 못나서...
- 안정적(stable) 귀인 : 다음번 연애에도 계속 안정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 전반적(global) 귀인 : 연애도 못하는데 뭐는 잘 하겠냐...
그러나 각각의 자존감 유형이 발현되는 과정이나 드러나는 문제 양상은 분명 다릅니다.
'손상된 자존감 유형'의 경우 내적인 자존감이 그나마 높으니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겠지만, 실제로 자살 충동이 있는 우울증 환자분, 혹은 신경성 폭식증 환자분들 중 오히려 높은 내현적 자존감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외현적 자존감이 손상된 이들에게, 이 높은 내현적 자존감은 사실은 스스로를 살리기 위한 방어책이자 자구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상적인 자기상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시궁창 같은 현실 혹은 반복되는 실패에 지속적으로 외현적 자존감이 낮아질지언정, 어떻게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장착하는 것입니다.
불안과 우울로 마음이 짓눌려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불필요하게 높이 유지되는 이 높은 내현적 자존감은, '내가' 이 정도는 달성해야지, 이 정도 체중은 유지해야지, 하는 완벽주의라든지, 세상의 비난은 내가 더 잘 되기 위한 밑거름, 따위의 정신승리 등으로 표현됩니다.
결국 개인은 높은 내현적 자존감에 상응하여 한없이 높이 설정한 자기 기준의 허들을 넘지 못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겠고요.
연구에 따르면, 과거의 유의한 우울 증상이 이제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분들에게서도 이 '손상된 자존감' 특성은 자잘자잘하게 남아있는 우울감과 함께 마음 밑바닥을 부유합니다.
'취약한 자존감 유형'은 다른 장에서 다룰 '자기애성 성격장애'에서 흔합니다.
방어적이며 불안정하고 뼈대 없이 와들와들 움직이는 가냘픈 자존감은 변덕스럽고 비일관된 양육방식과 같은 부정적 대인관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여러 성취를 해오며 외현적 자존감을 그나마 차츰 높여왔다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외부의 위협에 직면하면 자신을 지켜내고자 타인을 경멸하고 무시하며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세계가 자신의 태도에 반응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외현적 자기애는 점점 높아지고, 자아는 팽창하고 고양되며 과대해집니다.
정신분석학자 O. F. Kernberg는 이런 자기애적 과대성을 '허기지고 분노하고 비어있는 자아'에서 벗어나려는 학습된 방어 태세라 말합니다.
이런 '취약한 자존감 유형'은 결국 그 어느 유형보다도 더욱 외부 평판에 예민해져 본인에 대한 피드백에(그것이 긍정적 평가이건 부정적 평가이건) 가능한 모두 반응하려 애씁니다.
두 유형에서 각기 파생되는 문제들은 꽃처럼 화려하고 다양하지만 이 장에서는 너무나 고질적인 문제들 하나씩만 이야기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지난 사례의 A 씨와 같이, 내현적 자존감은 높고 외현적 자존감이 낮아 생의 에너지가 저하되어 있고 과잉 순응적인 <손상된 유형>들은 내면의 분노감을 숨기려는 시도로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저 사람이 너무 좋은데 이를 숨기려 괜히 장난을 심하게 한다거나, 저 선배가 미워 죽겠어도 이를 은폐하려 과도한 칭찬을 하거나 복종적 태도를 취하는 식이죠.
그러나 이런 태도, 생각보다 상당히 금세 읽힙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편안하지 않거든요.
늘 '네네' 하는 말버릇, 지나치게 조아리는 머리, 입에 발린 칭찬들, 내가 갖고 있는 습관들이라면 다시 한번 그 근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로 상대가 그렇게나 존경스럽고 맞는 말만 하고 있나요? 상대가 그 정도로 칭찬을 들을만했나요?
그렇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까지 자기비하를 하며 상대의 비위를 맞추고는 또다시 불쾌해하고 있나요?
한편, 내현적 자존감은 낮지만 외현적 자존감이 높아 누군가의 눈에는 굉장한 일을 해 온 듯 보이는 <취약한 유형>들은, 내면의 분노감을 곧잘 숨기다가도 타인의 행동이나 중립적인 질문들이 자신을 뒤흔들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는 근거 없는 의심에 꽂히는 즉시 '언젠가는 후회할만한' 혼자만의 반격을 시작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서 '왜 그렇게 갑자기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두세 차례 이상 들어봤다면, 본인의 지나친 분개와 격노가 시작되려는 그 타이밍에 자신의 분노가 적절한 것인지를 부디 곱씹어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안팎으로 높은 자존감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이 타이밍에 과연 화를 내었을지 꼭 한 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후에 분노의 수위 혹은 분노의 개시 유무를 결정해야 합니다.
아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연습해야 합니다. 이런 전의식적이며 습관적인 문제패턴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익숙해져 버리면 그때엔 Kernberg가 아니라 Kernberg 할아버지도 우리를 못 구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마무리는 다음의 질문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자존감은, 어떻습니까?'
저자 약력_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젊은연구자상 수상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CBT기반 어플- 마성의 토닥토닥" 연구 책임자
한국연구재단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정서조절 인공지능 모델 개발 II" 연구 책임자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해당 글들을 책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 허지원)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무너진 마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