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가? 향기와 추억의 상관관계

2015-12-24     변준호 신경외과 의사
사진 픽사베이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전의 유명 화장품 광고의 대사이다. 특정 냄새를 맡고, 불현듯 떠올랐던 기억이 있는가? 드라이브 중 만난 한적한 시골의 장작 타는 향기를 맡고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고, 눈 내린 겨울 아침의 향기를 맡고 시험준비를 하며 독서실에 다니던 학생 때의 기억이 떠오른 적 있는가?
꼭 이 예시에는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구나 특정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냄새가 한 개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 맡았던 냄새와, 그 당시 문득 떠올랐던 내 생각의 단순한 일치일 뿐인 것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뇌 안에서 기억과 후각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람은 냄새를 통해 과거의 일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이 현상은 2001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 모넬화학 감각센터의 헤르츠 (Rachel Herz) 박사에 의해 입증되었고, 연구의 발상이 M. 프루스트라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했다 하여 ‘프루스트 현상’ (Proust phenomenon)이라 불리운다. 실제 연구에 의해 입증된 이론인 것이다.

이 현상의 원인에 대해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후각은 비강 점막의 후각세포의 수용체에 의해 인지되어, 후각신경-후각로를 통해 내측 측두엽에 도달하게 된다. 이후 시상을 거쳐 변연계 및 전두엽으로 전달되게 되는데, 이 중간 지점인 내측 측두엽이 중요한 구조물이다. 내측 측두엽은 해마, 편도체가 위치하는 곳으로, 우리 뇌에서 기억과 감정의 중추이다. 후각경로가 바로 기억과 감정을 관여하는 뇌의 부분과 구조적으로 밀접하게 위치하여 있어,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으로 입증된 후각과 기억의 관계를 이용하여,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병의 진단 등에 접목해 보려는 시도도 있다. 뇌과학의 발전이 더 이루어진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시도이다.

물론 특별한 장면을 보거나, 특정 음악을 들으면 떠오르는 기억도 있다. 하지만 후각과 관련되어 떠오르는 기억은 필자의 경우 불현듯 떠오르며, 아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후각은 시각, 청각, 촉각, 미각과 더불어 5대 감각으로 불린다. 하지만 다른 감각에 비해서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중요도가 낮게 인지되는 면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들리지 않는다면’ 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있지만, ‘냄새를 맡지 못한다면’ 을 생각해 본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후각이 없다면, 우리의 소중한 기억, 아름다운 추억 들에 대한 관련된 회상도 같이 없어질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여름보단 춥고 긴 겨울에 대한 추억이 많을 것이다. 오늘 문득 맡게 된 겨울 향기에 떠오르는 행복한 추억 하나쯤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