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선고
의사 면허를 발급받고 의사가 되었을 때, 법적으로 할 수 있고 직종으로서 하게 되는 특수한 행위가 여럿 있다. 그 중 하나는 사망선고이다. TV 프로그램, 책, 블로그 등 수 많은 매체에서 의사들이 사망선고를 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많이 있다. 사망선고, 죽음을 확정한다는 것은 의사들 각각의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다른 모든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첫 사망선고의 기억은 깊게 남는다.
나의 첫 사망선고는 인턴이 시작되었을 때이다. 그 때 나는 비뇨기과 인턴이었고, 부족한 비뇨기과 전공의 숫자 탓에 인턴이지만 주치의 역할도 조금 하고 있을 때 였다. 당시 수십일 째 방광암 말기로 입원해 계셨던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온몸에 전이된 암세포가 주는 통증으로 힘들어하며 없는 기력탓에 하루종일 누워만 있는 분이셨다.
대부분의 말기암 환자 치료가 그렇듯, 병실에서 통증 조절과 영양 공급정도만 하며 특별한 처치 없이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던 할머니의 곁에는 매일매일 간병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곱고, 부드럽게 생긴 할머니의 딸과 아들들은 지극정성이었다. 그들은 해가 뜨는 어머니의 또 다른 하루를 기뻐하며 힘든 간병 생활도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가족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시는지, 할머니께서는 본인의 또 다른 하루의 아침마다 내 귀에 죽여달라며 속삭였고, 이런 사실을 아는 한 따님만이 아파하는 어머니를 보며 괜한 치료로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했다며 자책하고 울었다.
할머니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 의료진과 가족들은 죽음을 준비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한 자리로 모인 가족들은 30여명정도 되었고, 해외근무중이던 아들까지 돌아왔다. 몇 평 남짓한 병실에서 모니터의 각종 알람들이 조용하게 각각의 소리를 울리다가 할머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가족들은 점점 꺼져가는 모니터 속 숫자와 할머니와 의사인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죽음을 직감해갔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모니터상 리듬은 PEA였다(심장의 전기적인 리듬은 있으나, 수축은 없는 상태). 나는 심전도의 선이 반듯해 지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순간 전기적인 리듬마저 사라졌다. 나는 조용이 내뱉었다. ㅇㅇㅇ님, ㅇ시 0분 사망하셨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모두가 동시에 소리내며 울기 시작했다. 합을 맞춘 오케스트라도 아닌데, 갑자기 동시에 터져나오는 울음.
그 울음소리로 비좁게 말을 꺼냈다.
"그래도 마지막 3일은 아파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님도, 가족분들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어머니께서 아퍼하지 않으셨나요."
"네. 평안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게 나의 첫 사망선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