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의 무게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으로 가슴 떨리게 하는 사람은 당신에게 누구인가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다 보면 누구나 잊지 못할 기억의 순간들을 경험하곤 한다. 병원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루한 나날들 가운데,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 갑자기,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 뭉치를 툭 던져주던 그 순간들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두고두고 되살아난다.
내과 인턴으로 근무하던 때였다. 치열한 내과병동의 온갖 잡일들을 도맡아하며 토막잠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듯 바삐 뛰어 다니던 그 때엔 환자들이 그저 ‘귀찮은 일거리’로만 여겨지기도 했었다. 환자들 한명 한명의 진단명이나 치료도 잘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소독이나 간단한 술기들을 해내는 입장에서, 환자란 그저 내게 그날 그날의 일거리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쓰러질 듯한 내 몸을 끌고다니다시피 일하는 와중에도, 의식 없는 환자들, 의식은 있더라도 온 정신이 전혀 없는 환자들을 볼 때면 늘 마음 한 켠이 복잡해지는 걸 느끼곤 했다.
내과나 신경과 병동에는 유독 그런 환자가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들이겠지만,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만 지르고 통나무처럼 굳어가는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젖히고 돌려가며 대소변, 피고름을 받아내고 있노라면 과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난 밤을 꼴딱 지새운 당직에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억지로 이끌다보니 든 짜증 섞인 불경스러운 생각이라고 스스로 변명을 하지만, 같은 일상이 반복될수록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인’ 저 환자들과 일하고 있는 게 과연 내가 사람을 앞에 두고 일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매일 하루에도 두세 차례씩 변을 지려 엉덩이 욕창 드레싱을 계속 갈아주어야 해서 나를 힘들게 하던 의식 없던 아저씨 한 분이 돌아가셔서 심전도를 찍으러 갔더랬다. 병동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주치의가 사망선고를 하기 전, 확실히 심정지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인턴이 심전도를 찍곤 했다. 심전도 기계를 끌고 터벅터벅 들어간 처치실 안은 이미 가족들로 둘러싸여 울음바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DNR(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기로 한 동의)을 받았던 환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에 나로선 평온한 병동 내 사망이었고, 이미 시신 앞에서 무감각해질대로 무감각해진 마음으로 무심하게 심전도 리드를 붙이고 있었던 것 같다. 울음소리 가득한 처치실 안에서 심전도 그래프 상에 간간이 나타나는 전기 신호가 완전히 사라지고 일자를 그리기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돌아가신 아저씨의 귓가에 아주머니가 머리를 맞대고 흐느끼며 속삭이는 말이 들렸다.
“숨 쉬느라 고생했어요 여보. 우리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어주려고 조금 더 숨 쉬어줘서 고마워요. 고생 많았어요. 사랑해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수많은 Expire(병동내 사망)환자들 시신정리를 했지만 그날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유독 잊혀지지 않는다.
빗방울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매순간 우리 곁을 스쳐간다. 그들 한방울 한방울이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인생의 무게를 짊어진 하나 하나의 인생들이다. 비바람이 흩날리듯 한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그 방울 방울들, 그 인생의 무게들은 얕은 숨결 한 줌에도 오롯한 삶을 무겁게 실어낸다. 다만 숨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무게는 순간을 더해간다.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으로 가슴 떨리게 하는 사람은 당신에게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