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yours,] 실수 없이 해내려 애쓰는 ‘완벽주의자’ 분들에게

2025-09-30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ㅣ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끝없이 미루다 결국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경험이 반복되거나, 세부 사항을 고치고 또 고치느라 제때 일을 마치지 못해 스스로를 자책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남에게 일을 맡기면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아, 결국 많은 일을 혼자 떠안게 되신 적은 없으신가요? 그렇게 쌓인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져 지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읽고 계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여겨온 분들께 이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와 함께 소개해 드릴 책이 실수 없이 해내려 애쓰다 지쳐버린 마음에 잠시 숨 고를 여유를 드리고, 흠 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가 우리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함께 돌아볼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완벽주의자는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에 도달했어도

그것을 성공으로 치지 않는다.

도달할 수 있었다면 그 목표는 애초부터 너무 쉬운 목표였기 때문이다.”

 

 완벽주의(perfectionism)는 매우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성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범위는 성취에 힘을 보태는 건강한 완벽주의부터, 삶에 부담을 주는 병적인 완벽주의까지 연속선 위에 존재하지요. 누구도 일부러 실수를 반복하거나 허점투성이 결과를 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완벽을 바라고 살아가며,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을 때는 성취와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완벽을 향한 마음 자체를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지거나 엄격해질 때는 불안이 커지고 자기비난이 잦아지며, 관계 속에서도 갈등이 늘어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높은 기준 자체가 아니라, 그 기준이 절대적 진리처럼 굳어져 유연성을 잃는 순간이에요. 이를 ‘경직된 완벽주의(rigid perfectionism)’라고 부릅니다. 경직된 완벽주의는 일상과 관계를 옥죄며, 결국 삶의 자유로움까지 해치게 되지요. 정신의학의 진단 체계인 DSM-5에서는 강박성 성격장애의 핵심 기준 중 하나로 완벽주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 성격장애 대안 모델(AMPD)에서는 이를 병적 성격 특성 중 하나로 세분화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완벽주의는 누구에게나 조금씩 존재하는 보편적인 성향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경직되어 삶을 방해하는 순간이 온다면, 혼자 감당하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_freepik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의 공동 저자인 미국 심리학과 교수 마이클 투히그와, 불안장애 센터 연구원인 클라리사 옹은 자신들의 연구와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완벽주의가 어떻게 불안을 증폭시키는지 그 구조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불안을 다루기 위해 누구나 시도해 볼 수 있는 10가지 실용적인 기술을 제안하지요. 이 기술들은 단순히 잘못된 믿음을 고쳐야 하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그 믿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 적인 접근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완벽주의가 사실은 개인이 불안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핵심 동력이 되다 보니, 우리는 더 많은 준비와 끝없는 검증, 때로는 회피로 달려가게 되고, 결국 그 과정 속에서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마주하게 되지요. 완벽주의는 이렇게 역설적인 고리 속에서 우리를 붙잡아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는 일이에요.

 

 사실 완벽주의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이전과 달리 완벽주의를 단순한 성격의 일부로만 보지 않고, 불안, 우울, 강박과 같은 정신질환과 밀접하게 관련된 독립적인 개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지요. 이 흐름을 본격화한 연구가 바로 캐나다의 심리학자 폴 휴잇(Paul Hewitt)과 고든 플렛(Gordon Flett)의 작업입니다. 두 학자는 완벽주의가 단순히 높은 기준을 세우는 차원을 넘어, 대인관계적 맥락 속에서 발생하고 강화되는 현상임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은 완벽주의를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스스로에게 과도하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자기지향적 완벽주의(Self-oriented perfectionism), 타인에게 완벽함을 기대하며 실수에 가혹한 태도를 보이는 타인지향적 완벽주의(Other-oriented perfectionism), 그리고 사회, 부모, 직장 등 외부가 자신에게 완벽을 요구하고 기대한다고 느끼는 사회부과적 완벽주의(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m)가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특히 사회부과적 완벽주의는 여러 연구를 통해 높은 불안과 우울, 그리고 자살사고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하거나 가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지배하면서, 정신건강에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중에 그만두는 것은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지혜와 자기 친절의 상징일 수 있다.

폭설 속에 운전하고 있는 가족에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차를 세우거나 되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신의 필요와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그만두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 불완전함을 포용하지 못한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고

경로에서 이탈했을 땐 가치를 향해 돌아서고 여정을 재개 하라.”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심리학자 랜디 프로스트(Randy Frost)를 중심으로, 완벽주의를 이루는 세부 요소들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완벽주의를 설명하는 구성 요소로 높은 개인적 기준(Personal standards), 실수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Concern over mistakes), 부모의 기대와 비판(Parental expectations/criticisms), 행동의 조직화 성향(Organization and order)을 제시했지요. 또한 그는 완벽주의가 언제나 동일한 모습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높은 성취를 이루고 자기 관리에 도움이 되는 적응적인 완벽주의(Perfectionistic strivings)와, 실수에 집착하고 자기비난으로 이어지는 부적응적 완벽주의(Perfectionistic concerns)라는 두 가지 하위 유형을 제안했습니다.

 

 비슷한 두 단어인 ‘완벽(perfection)’과 ‘완전(wholeness)’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완벽’은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기준처럼 외부의 잣대에 맞추어 흠잡을 데 없이 해내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결과가 기준이 되고, 그 결과에 따라 마음이 크게 흔들리곤 하지요. 반면에 ‘완전’은 부족함이 조금 있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전체로서 충분히 괜찮다고 느끼게 해주는 내적인 충만감에 더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완벽은 “결과가 흠 없어야 한다”라는 외부의 시선으로 향하고, 완전은 “부족해도 나는 나로 충분하다”라는 자기 수용(self-acceptance)과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의 태도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태도의 차이는 결국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지요.

 

“결과를 성공의 척도로 생각한다면

성공은 당신의 통제권 밖에 있다.

그러나 특정한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이나 방식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면

성공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 소중한 가치를 알고, 가치를 기준으로

삶의 질을 평가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좋은’ 삶이란 가치에 부합하는 삶이고,

‘좋은’ 행동은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행동이다.”

 

우리가 ‘완벽’을 좇을 때는 작은 실수에도 쉽게 마음이 요동치고, 피로와 불안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완전’을 향할 때는 부족함까지 함께 품으면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과정을 기준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지요. 결국 ‘좋은’ 삶이란 흠 없는 결과를 하나하나 쌓아 올리려 애쓰다 지쳐버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 마음의 안온함을 경험하는 삶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완벽을 향한 긴장 속에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완전을 향한 평온 속에서 채워지시길 바랍니다.

 

+

 

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예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