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자기자비와 강박증 - 자신에게 더 친절해지기
정신의학신문 ㅣ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 글은 강박증(OCD)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임상적·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치료는 반드시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강박증과 자기비판의 악순환
강박증을 겪는 많은 분들은 “왜 이런 생각을 멈추지 못할까”라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곤 합니다. 오염이 무서워 손을 씻을 때도, 침투적 사고를 떨치지 못해 확인을 반복할 때도, 그 행동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한심하다”, “내가 왜 이렇게 약할까”라는 생각에 빠지는 악순환을 경험하곤 합니다.
이런 자기비판은 강박적 불안을 오히려 더 키워서 “수치심과 죄책감은 더욱 커지고, 불안도 더욱 커진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그래서 강박증을 다룰 때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태도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도 친절해질 여지”를 마련해보는 일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가 제안한 ‘자기자비(self-compassion)’ 개념은 강박증 환자분들께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효과적인 접근법입니다(Neff, 2011).
자기자비의 세 가지 요소
자기자비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자신을 대하되 “친한 친구 혹은 사랑하는 가족을 대하듯” 온정과 따뜻함을 유지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네프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자비에는 크게 세 가지 축이 있습니다(Neff, 2011).
첫째는 자기친절(self-kindness)입니다. 내가 고통을 겪을 때, 그 고통을 억압하거나 나 자신을 비난하기보다, “지금 많이 힘들구나”라고 다정하게 바라봐주는 심리적 태도입니다.
둘째는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입니다. 내가 겪는 이 불안이나 실패, 두려움이 ‘나만의 잘못’이라기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간적 경험임을 인식함으로써,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나는 이상한 사람이야” 하고 몰아붙이지 않는 관점입니다.
마지막은 마음챙김(mindfulness)입니다. 불안을 비롯한 부정적 감정을 외면하거나 과잉 동일시하지 않고, “아, 이런 감정이 올라오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며 그 순간의 경험을 관찰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루면, 내가 힘든 상황에서 자기비판의 수렁에 빠지는 대신, 보다 따뜻하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불안을 직면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자비에 대한 흔한 오해 풀기
자기 자비는 종종 ‘나 자신에게 관대해져서 나태해지는 것’으로 오해됩니다. 하지만 자기자비는 방임이나 합리화가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돕는 정서적 기반입니다.
‘자기연민(self-pity)’이 “왜 나만…”에 머문다면, ‘자기자비(self-compassion)’는 공통 인간성을 통해 “누구나 이런 순간이 있다”로 시야를 넓히고(Neff, 2011), 마음챙김으로 감정을 왜곡 없이 바라보게 합니다. 그 결과 과잉 동일시로 인한 압도감이 줄고, 상황을 더 현실적으로 다루는 에너지가 생깁니다. 강박증 맥락에서도 자기자비는 강박행동을 용인하는 태도가 아니라, 수치심과 자기비난으로 인한 회피를 줄여 ERP나 ACT 같은 치료적 행동을 더 일관되게 이어가도록 지지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자비는 ‘따뜻함’으로 행동의 ‘책임감’을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에 가깝습니다.
일상에서 자기 자비를 간단하게 실천하는 방법
자기 자비는 길고 거창한 의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30~60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습니다. 강박적 불안이 올라올 때 다음의 세 문장을 천천히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세요(Neff & Germer, 2018).
첫째, 알아차리기 : “지금 내 안에 불안과 긴장이 올라오고 있구나.”
둘째, 공통 인간성을 기억하기 :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
셋째, 자기친절을 선택하기 : “괜찮아, 지금 이 순간만 잘 버텨보자. 한 걸음씩 가자.”
이 짧은 순서를 반복하면 감정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잠깐의 여유가 생깁니다. 필요하다면 손을 가슴 위에 가볍게 올려 두어 심장이 뛰는 것을 느껴 보세요. 몸의 감각이 “괜찮다, 지금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불안의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힘이 커집니다.
자기자비와 ACT, ERP 치료와의 연관성
자기 자비는 수용전념치료(ACT)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ACT는 불편한 감정과 생각을 제거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을 강조합니다. 자기자비는 이 수용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신에게 엄격하게 구는 대신, “내가 이 감정을 느끼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야”라는 관점으로 감정을 온전히 수용하도록 돕습니다. 이런 태도는 불안이나 두려움과 같은 강박적 감정이 있을 때 더욱 효과적입니다. 자기자비는 ACT의 핵심 원리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실천하는 데 중요한 심리적 자원이 됩니다.
또한, 자기자비는 ERP(노출 및 반응 방지) 치료와 상호 보완적입니다. ERP는 환자에게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키고, 강박행동을 하지 않고 버티는 연습을 통해 불안을 감소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환자들은 종종 실패나 좌절감을 겪게 됩니다. 이때 자기자비는 실패에 대한 비난을 줄이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합니다. 실패했을 때 "괜찮아, 누구라도 이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라는 자기자비적인 접근은 ERP 과제를 계속 수행할 수 있는 내적 동기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강박증 치료에서 자기자비가 중요한 이유
강박적 사고와 행동이 심화될 때, 동시에 “나는 왜 이런 걸 멈추지 못하지?”, “이렇게까지 확인해야만 안심하는 내가 정말 한심하지 않나”라는 자기비판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자책감과 수치심이 커지면서 불안이 더 악화되어 결국 강박 행동에 더욱 매달리게 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반대로 자기자비는 “내가 불안을 느끼는 건 일종의 뇌 경보 시스템이 과잉으로 작동하는 것이지, 의지가 부족하거나 내가 비정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게 도와줍니다. 또 “이런 강박적 불안을 단번에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건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인간적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을 마련해주므로, 더 이상 스스로를 죄인처럼 다루지 않게 됩니다. 자기자비는 강박증의 뿌리 깊은 자기비난을 점차 녹여주어 장기적으로 치료의 핵심적인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 : 자기자비로 강박증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결론적으로, 강박증에서 불안과 수치심에 시달리며 자신을 자꾸 깎아내리는 악순환을 경험하셨다면, 이제 스스로에게 조금 더 따뜻해져 보길 권합니다. 크리스틴 네프가 소개한 자기자비 명상은 “내가 얼마나 착한가”를 자랑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내가 고통스러운 순간에 나를 스스로 지지할 수 있는 긍정적 자원을 발견하도록 돕는 실질적 도구입니다(Neff, 2011). 강박증 치료에서 노출 및 반응 방지(ERP), 수용전념치료(ACT), 마음챙김 등의 방법을 이미 활용하고 있다면, 자기자비 연습을 병행하여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대신, 나를 적절히 돌보며 꾸준히 치료 과정을 지속하는” 기제를 강화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시도들이 쌓이다 보면, 강박적 불안을 다루는 길이 이전보다 훨씬 덜 고통스럽고, 때론 용감한 자기 대면의 경험으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조금 더 넉넉한 마음을 내어주는 순간, 강박증과 수치심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희망이 보다 선명해질 것입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신재현 원장
참고문헌
Neff, K. D. (2011). Self-Compassion: The Proven Power of Being Kind to Yourself. HarperCollins.
Neff, K. D., & Germer, C. K. (2018). The Mindful Self-Compassion Workbook. The Guilford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