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은퇴 이후의 진로가 고민입니다.

2025-09-14     황성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ㅣ 황성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러스트_freepik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40대 후반의 공무원이자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직장 일을 성실하게 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10년 정도까지는 큰 사고가 없고 건강하다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간 퇴근 후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살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용기가 없어서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50대에 대학원을 다시 가볼까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대학원 석사 과정을 하며 여러 일을 거친 후 받는 학위가 저에게 주는 만족이 얼마나 될지 고민이 됩니다. 석사를 하지 않고 그 시간을 운동, 취미활동, 친구들과의 만남 등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는 게 나을지 혼자 고민도 많이 해봤고요.

 퇴직 후에는 30년 이상 준비해 둔 연금으로 지낼 예정이라 아직까지는 별도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원 학위에 따야 할지 선택의 어려움과 아쉬움이 계속 남아 주저하게 됩니다. 대학원에 가게 되면 학비를 지불하고도 그 과정들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긴장하며 생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60대 퇴직 후 대학원 학위가 굳이 쓸모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굳이 쓸모가 없는 학위라면 안 하고 싶기도 하고요.

 혼자 몇 년을 고민하고 있지만, 나의 우선순위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사연을 보며 오랜 시간 고민해 오신 만큼 대학원 진학에 대한 갈망과 현실적인 고민이 깊으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껏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해오셨고, 두 아들을 돌보며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오신 삶에서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도전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학원 과정이 주는 배움과 성취감이 기대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후회로 남을까 걱정도 되실 것입니다.

 먼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시는 이유를 명확히 정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대학원에 가려는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전문성을 높이고 직업적으로 더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사연을 보면 이미 직장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계시고, 퇴직 후에도 별도로 일을 할 계획은 없으시기에 직업적 필요성보다는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둘째, 학문적 탐구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고 자기 계발을 이루려는 경우입니다. 대학원 과정이 새로운 지적 도전이자 성취감을 줄 수 있는 과정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새로운 도전을 통해 삶에 의미를 더하고 싶거나, 50대 이후의 삶을 더욱 활기차고 보람 있게 만들고 싶은 경우입니다. 대학원이라는 환경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이 후반기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고민하고 계신 선택지는 대학원 진학뿐만 아니라 운동, 취미활동, 친구들과의 만남 등 다양합니다. 이 중 어떤 것이 나에게 더 큰 만족감을 줄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학원 과정에서 얻을 배움과 성취감이 운동이나 취미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인가, 학위 과정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즐거움이 될 것인가, 졸업 후에 후회 없이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등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며 선택을 평가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취미와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 55세의 나를 떠올려 보세요. 만족감을 느낄 것 같은가요, 아니면 대학원에 가지 않은 것이 후회될 것 같으신가요? 반대로, 대학원을 졸업한 55세의 나를 떠올려 본다면 성취감이 클까요, 아니면 ‘굳이 필요 없는 학위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라는 생각이 들까요? 이렇게 미래의 자신을 떠올리며 선택을 고민해 보면, 어떤 선택이 나에게 더 의미 있는지 좀 더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면 작은 시도를 통해 대학원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온라인 강의나 단기 교육 프로그램을 먼저 들어보는 것도 학문적 탐구가 진짜 즐거운 경험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한, 실제 대학원 과정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장점을 고려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청강이나 단기 과정을 통해 대학원 강의를 직접 경험해보면서, 대학원 생활이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내 삶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지적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학위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자유로운 시간이 더 중요하다면, 대학원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 없이 만족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정직한 질문을 던지며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고민하시는 과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신중하고 멋진 여정입니다.

 

당산한결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황성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