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응시와 가장 가까운 곳
진흙탕에서 치열하게 피어나는 연꽃을 보라
정신의학신문 ㅣ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정신과 치료, 그 지루한 싸움
정신과 치료를 참으로 지루합니다. 좋아질 듯 하다가, 다시 고꾸라지며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다시 다짐을 하고 치료를 시작하지만, 그 굳은 결심을 며칠 가지 못합니다. 결말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싸움을 과연 언제까지 이어나갈지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치료는 허무함과 희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왕복하면서 한 발자국씩 뚜벅뚜벅 나아갑니다.
# 글쓰기를 통한 종교적 해탈, 그리고 정신의학적 자아 통합과 성숙
승한 스님은 불교 종교인이자, 작가입니다. 40여 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수차례 유명 신춘문예에 당선되셨고, 꾸준히 시집, 산문집을 출간하셨습니다. 4년 전에는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에 입원한 경험을 토대로 시집을 발표하시기도 했습니다.
승한 스님께서는 오랫동안 저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며칠 전, 승한 스님께서는 시집을 출간하며 저에게 몇 권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 시집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뇌가 있었는지, 주치의인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지지부진한 치료 효과 때문에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는지 승한 스님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승한 스님께서는 무기력감, 허무와 나태와 끊임없이 싸워가며 한 편씩 시를 썼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을 극복하며 한 글자씩 빈 종이를 채워나가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산모가 힘겹게 아이를 출산하 듯, 시집이 출판됐습니다.
시집, <응시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는 안과 밖, 내부와 외부, 존재와 소멸, 색(色)과 공(空)의 대조 그리고 통합 과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불교 철학에서 깨달음, 해탈의 과정입니다. 동시에 정신의학에서 자아의 성숙, 삶에 대한 통찰과 수용 과정이기도 합니다. 승한 시인께서는 삶의 초기 시절 상처와 좌절, 분노를 딛고 글쓰기를 통해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승한 시인께서는 허무함이 가득한 세상에서, 존재의 이유를 글쓰기에서 처절하게 찾는지도 모릅니다.
# 존재의 가치, 과연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삶은 진흙탕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더러움 속에서도 연꽃은 치열하게 피어납니다. 연꽃은 그렇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지 모릅니다. 당신의 존재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외부에서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창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승한 스님께서는 글쓰기에서 그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유길상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