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스 하이- 몸과 마음, 뇌를 지키는 시간
정신의학신문 ㅣ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거리에서, 공원에서, 심지어는 새벽녘 강변에서도 러닝을 하는 분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운동’의 대표 주자로 러닝이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유행을 넘어 하나의 생활 습관, 혹은 자기돌봄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땀을 흘리며 달리는 그 순간, 몸은 고단할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은 상쾌해지고, 생각도 정리되며,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되지요. 이런 상태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합니다.
러너스 하이는 기분 좋은 느낌을 넘어 실제로 심리적, 신체적, 그리고 뇌신경학적 변화를 수반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 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러닝은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의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첫째는, 몸의 건강입니다. 달리기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으로, 심폐 기능을 강화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체지방을 감소시키고 근육의 지구력을 키워줍니다. 특히, 규칙적인 러닝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성 질환의 예방과 관리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마음의 건강입니다. 달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을 흔히들 합니다. 실제로 운동 중에는 뇌에서 엔도르핀과 같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됩니다. 더 최근 연구들에서는 러닝이 불안과 우울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내인성 칸나비노이드라는 물질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뇌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이 물질은 통증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며, 감정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셋째는 뇌의 건강입니다. 꾸준한 러닝은 기억력, 집중력, 실행기능 같은 인지능력에도 영향을 줍니다. 운동을 하면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라는 신경영양인자가 증가하는데, 이 물질은 뇌세포의 성장과 회복, 시냅스 간 연결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중장년층 이후에는 인지기능 저하나 치매 예방의 측면에서도 운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점을 가지는 러너스 하이는 일정 시간 이상의 유산소 운동을 지속할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때 뇌에서는 엔도르핀뿐 아니라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활발하게 분비됩니다. 이런 화학물질들은 우리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고, 불안을 완화하며,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낮춰줍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어디까지고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정서적 평온이나 몰입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운동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운동 몰입(exercise flow)’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운동을 하면서 복잡한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상태이지요. 현대인의 뇌가 늘 과포화된 정보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니, 오히려 러닝을 통해 ‘비움’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러닝은 우리 몸과 마음, 뇌에 모두 유익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오래, 빠르게 달린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과도한 운동은 부상의 위험뿐 아니라 신체적 소진, 감정 기복, 운동 중독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러닝을 즐기기 위해 몇 가지를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 천천히, 꾸준히 달리기
러닝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이라면 주 2~3회, 20~30분 정도 가벼운 조깅이나 빠른 걷기로 시작해 보세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와 시간을 늘려가는 방식이 몸에 무리가 덜 갑니다.
2. 회복도 훈련의 일부
러닝 이후 스트레칭과 수분 섭취, 충분한 수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몸은 회복 과정에서 성장합니다. 특히 근육통이나 피로가 지속된다면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3. 내 몸에 귀 기울이기
러닝 중 무릎, 발목, 허리 등에 통증이 느껴지면 일단 운동을 멈추고 몸의 반응을 관찰해야 합니다. 통증을 무시하고 계속 달리면 만성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4. 나 자신과의 대화 시간으로 활용하기
러닝은 운동을 넘어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어폰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의 자연을 느끼며 ‘지금 내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요즘 어떤 생각에 많이 머물고 있는지’를 느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5. 그룹 러닝을 통한 연결감 느끼기
혼자 달리는 러닝도 좋지만, 함께 뛰는 러닝은 또 다른 의미를 줍니다. 정기적인 러닝 모임에 참여하거나 친구와 함께 달리면, 운동에 대한 지속성과 재미가 훨씬 높아집니다. 심리적으로도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경험은 자존감을 높이고 관계적 안정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는 러닝 인구가 늘어나면서 3인 이상 단체 러닝을 금하거나 행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책들도 등장하고 있는데요. 그룹 러닝을 할 때는 가급적 사람이 많이 없고, 주변에 피해가 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진행되도록 해야겠습니다.
러닝은 특별한 장비나 장소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인데요. 신체 조건이나 경제적 부담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리듬으로 즐길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꾸준한 러닝은 체력을 기르는 것 이상으로 삶의 활력을 회복하고 내면과 연결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뇌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잠깐이라도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요? 숨이 차오르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어느 순간 문득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러너스 하이가 주는 선물 같은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강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