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yours,] 어젯밤 꿈이 머릿속을 맴도는 분들에게
정신의학신문 ㅣ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젯밤에는 어떤 꿈을 꾸셨나요? 너무 현실 같아 꿈인지 헷갈렸던 순간이 있었거나, 반대로 너무 기이해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악몽을 꾸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미 치른 시험을 다시 보는 꿈, 마감 기한에 쫓겨 결국 자료를 준비하지 못해 상사에게 혼나는 꿈, 헤어진 연인과 데이트를 하는 꿈, 돌아가신 부모님과 대화하는 꿈, 혹은 초록색 얼굴의 괴물에게 쫓기며 전력 질주하는 꿈처럼요. 이따금 어떤 분들은 아침에 일어나 “어제 꾼 꿈은 무슨 뜻이었을까?” 하고 궁금해하며, 인터넷에 해몽을 검색하거나 스스로 꿈풀이를 시도해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꿈들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오늘의 편지와 함께 소개해 드릴 책을 통해 ‘꿈’에 대한 궁금증을 차분히 풀어가보려 합니다.
“꿈들은 우수한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인도하는 지혜와 안내자의 영리함입니다.
꿈은 우리에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어디가 부적절한지 보여주고,
위험을 경고하며, 미래의 어떤 일들을 예언하고,
인생의 깊은 의미를 암시하며, 밝은 통찰을 가져다줍니다.
[...] 우리 안에 있는 꿈을 만들어 내는 기반은
내면의 영적인 안내자 혹은 정신의 내적 중심으로 불려 왔습니다.
[...] 인간의 꿈을 정신적인 삶의 과정으로서 관찰하고 나면,
아마도 이러한 기반이 자아의식으로 하여금 삶에 적응하고
현명한 태도를 갖도록 만든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꿈을 억압된 욕구가 검열을 피해 변형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았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러한 꿈의 위장된 상징을 분석함으로써, 억압되어 있던 성적 욕망이나 갈등을 드러내고 이를 해소하려는 치료적 접근을 시도합니다. 반면, 분석심리학자 융은 꿈을 억압의 산물로만 보지 않고, 무의식과 자아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상징적 소통 수단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융 학파에서는 꿈을 자기 이해와 심리적 통합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활용하지요.
이처럼 꿈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프로이트와 융 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두 학파 모두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꿈이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에서 비롯된 심리적 표현이라는 점이지요. 그렇기에 꿈을 잘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얻은 통찰이 곧 마음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역동적 해석과는 달리 생물학적,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는 꿈을 조금 다르게 봅니다. 꿈을 무의식의 메시지라기보다는, 외부 자극이나 낮 동안의 기억과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진 의미 없는 이미지의 조각들, 혹은 기억과 경험을 정리하고 강화하는 과정에서 뇌가 의도치 않게 만들어낸 결과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처럼 다양한 꿈에 대한 해석들 가운데서도, 자기 이해를 돕는 과정으로서의 꿈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 하는데요. <융학파의 꿈해석>의 저자인 프레이저 보아는 캐나다 출신의 분석심리학자입니다. 이 책은 스위스 출신으로 융의 핵심 제자이자 평생의 공동 연구자였던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와 나눈 깊이 있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분석심리학 전반은 물론 융 학파가 꿈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를 생생하게 풀어냅니다.
융은 ‘내가 나라고 여기는 의식 수준의 나’를 자아(Ego),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함한 훨씬 넓고 깊은 인격 전체’를 자기(Self)라고 구분하여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진짜 나’인 자기(Self)와 점차 가까워지고, 내면의 다양한 모습을 조화롭게 통합해가는 과정이 바로 자기실현(Self-realization) 또는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입니다. 융은 꿈을 이 과정 속에서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는 상징적 편지로 해석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을 때, 꿈은 균형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의 대화 시도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꿈이 단지 개인의 무의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집단 무의식과, 그 안에 존재하는 보편적 상징인 원형(archetype)의 개념 또한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심리적인 맹점은 등이나 엉덩이 같아서
그 위에 눕거나 앉을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지요.
때때로 꿈이 당신에게 명백한 것을 보여주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는 그것을 말해 줄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 대부분의 우리 꿈은 그렇게 명백하지 않습니다.
[...] 그것이 바로 스스로 자신의 꿈을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일반적인 이유입니다.
꿈은 보편적으로 우리의 맹점을 지적합니다.
꿈은 절대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말해 줍니다.
[...] 따라서 자신의 꿈을 해석하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융이 융 학파 분석가들에게 가끔씩 동료를 찾아가
꿈에 대한 견해를 교환하도록 권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꿈은 단순히 하나의 방식으로만 설명되기엔, 너무나도 풍부하고 복잡한 현상입니다. 뇌가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잔상일 수도 있지만, 반복되거나 강렬한 감정을 동반하는 꿈은 아직 처리되지 못한 감정이나 기억이 드러나는 방식일 수 있기에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지요. 꿈이라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 상황, 장소, 그리고 사소한 물건 하나까지도 사실은 모두 ‘나’라는 그 꿈의 감독이 스스로 선택해 등장시킨 것이라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그 꿈은 어쩌면, 내 마음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꿈을 통해 들려줄까요? 그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여보실 수 있는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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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예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