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유전인가요?
정신의학신문 ㅣ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가족 내에서 우울증을 겪는 분들이 여러 명 있는 경우, 자연스럽게 우울증은 유전인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우울증은 단순히 '유전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지만 유전적 요인이 분명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우울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 그리고 심리사회적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여 발생합니다. 이 중 유전적 요인은 개인이 우울증에 걸릴 취약성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은 고혈압에 대한 유전적 소인이 있어도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 발병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유전적 소인이 없어도 나쁜 생활 습관으로 인해 발병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연구 결과들을 보면, 부모나 형제자매 등 직계 가족 중에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3배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서는 한 명이 우울증을 앓을 경우 다른 한 명도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이란성 쌍둥이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 유전적 요인의 중요성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유전자들이 뇌 기능이나 스트레스 반응 방식에 영향을 미쳐, 우울증 발생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유전적 요인만으로 우울증이 100% 발병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전자는 일종의 '설계도'와 같아서,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환경에 놓였을 때 발현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에 대한 유전적 취약성을 가진 사람이 극심한 스트레스, 외상 경험,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 등과 같은 환경적 요인에 노출될 때 우울증이 발병할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유전적 소인이 있더라도, 지지적인 환경과 건강한 대처 방식을 통해 우울증 발병을 예방하거나 그 영향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울증은 유전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울증은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환경적 요인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하는 질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유전은 우리가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하나의 위험 요소인 것입니다.
가족력이 있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유전적 취약성을 인지하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 등은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자신의 감정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고, 우울감을 느낄 때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조기 진단과 치료는 우울증의 만성화를 막고 회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유전적 요인이 우울증의 발병에 기여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우울증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예방과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현대 의학은 우울증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본인이 우울감을 자주 느낀다면 적극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정희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