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너질 때, 나를 잡아주는 사람- 회복탄력성과 관계복원력
정신의학신문 ㅣ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일, 도저히 못 해먹겠다’, ‘이 길이 맞는 걸까’, ‘그냥 포기해 버릴까?’ 하는 그런 순간들 말이죠. 성실하게 살아오던 삶의 여정 가운데 일터든 학교든, 관계든 삶의 여러 갈래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 앞에 부딪히고 멘탈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기에 더욱 절망감이 크고, 다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 혼자 버텨야 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단 한 사람, 그저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다정하게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한 걸음 내디딜 힘을 얻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멘탈이 흔들린다’라는 것은 감정 조절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자기 효능감과 동기, 인지적 판단력 등이 약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반복적인 실패나 압박, 과중한 책임감 속에서 뇌는 스트레스 반응을 강화하며, ‘전투-도피(fight or flight)’ 시스템이 과도하게 활성화됩니다.
이럴 때 전전두엽의 기능은 위축되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과민해지면서 부정적 감정이 더 증폭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판단이 흐려지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느껴지며, 어떤 선택도 자신 없어지는 순간들이 이어지게 되죠. 이럴 때 우리 뇌는 외부의 ‘안전 신호’를 간절히 원하게 되고, 심리적 안정, 감정적 지지, 관계적 연결이 마음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일 때 누군가 곁에 있어 주고, 지지의 말을 건네는 것, 가벼운 포옹과 같은 스킨십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눈에 띄게 낮아지고, 옥시토신과 같은 안정 호르몬이 분비되며 심박수와 호흡도 안정되기도 하는데요.
즉, 사람의 존재 자체가 약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꼭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듣고, 공감하고,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안정감을 얻습니다. 이럴 때가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지지(emotional support)’의 힘을 경험하는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일 앞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 친구, 멘토, 스승, 상사, 코치와 같은 ‘심리적 후원자’가 있다는 것은 목표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요인입니다.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즉 ‘내가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은 대개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의 존재를 통해 자신에 대한 확신과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진료실을 찾은 분들로부터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그 한 마디가 없었으면 저는 진짜 그만뒀을 거예요.”, “그 선생님 아니었으면 제가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지금 돌아보면, 그 친구가 제 얘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던 것 같아요.”와 같은 말들입니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나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이해, 공감받았던 경험은 우리의 삶을 계속 나아가게 하고,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원동력이 되곤 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과 ‘연결’되고 유대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연결감은 우리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핵심이기도 합니다.
특히 외상 후 회복이나 번아웃, 우울, 불안 같은 어려운 감정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관계 속에서의 회복 경험이 중요합니다. 이를 ‘관계적 복원력(relational resilience)’이라고 하는데요. 단단한 마음은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길러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힘들 때 서로 기대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어주거나 손을 내밀기도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신 적이 있으셨을 텐데요. 함부로 조언하기보다는 그저 들어주고,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주며, 조용히 옆에 있어 주었던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큰 지지였을 수 있습니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가보다 어떤 태도로 존재하느냐가 상대방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작은 마음과 태도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삶을 붙잡고, 지켜내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삶의 고비 앞에서 우리는 때로 혼자라고 느낍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무게를 품고, 애써 견디며 살아가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곁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주는 관계가 우리 삶을 지탱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도 지금 흔들리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눈빛과 응원의 한마디를 통해 절망적이라고 느꼈던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또, 반대로 누군가의 흔들리는 마음이 느껴진다면, 조용히 옆에 있어 주세요. 심리적인 지지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무너질 때, 그 마음을 함께 붙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의 여러 고비를 지나며 끝내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 아닐까요.
삼성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준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