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다툼 뒤에 숨은 마음들 – 가족 안의 감정과 갈등 풀어내기
정신의학신문 ㅣ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다툼, 소통의 단절, 말보다 큰 한숨이 늘어갈 때, 우리는 ‘성격 차이’나 ‘세대 갈등’으로 쉽게 넘기려 하고 합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갈등은 때로 더 깊은 감정의 골과 해결되지 않은 마음의 문제를 품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분이 “우리 아이가 갑자기 달라졌어요” 혹은 “이제는 무슨 말을 해도 전혀 통하지 않아요”라는 말로 가족의 어려움을 토로하곤 합니다. 그 한마디 속에는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정서적 거리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쌓인 상처, 그리고 어떻게든 가족이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절박한 마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은 대개 스마트폰 사용, 성적, 진로나 생활 태도 등 일상적인 문제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상담 장면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보다 보면, 그 이면에는 서운함, 외로움, 무시당했다는 느낌, 혹은 이해받지 못한다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는 “엄마는 항상 잔소리만 해요.”라고 말하고, 부모는 “저렇게 무기력하고 예민한 모습을 보면 화가 나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들 속에는 사실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 ‘사랑받고 싶은데 표현을 모르겠다’라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가족 갈등의 본질은 그 감정을 말할 수 없고, 표현한 감정이 이해받지 못하면서 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가족 상담의 필요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가족 상담은 ‘누가 문제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의 변화가 가족 전체의 균형을 흔들기도 하고, 반대로 가족 전체의 분위기가 한 사람의 정서적 어려움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족 상담은 특정한 누군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그 자체를 치료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상담이 시작되면 가족 구성원 각각의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오해와 단절이 반복되는지를 함께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점차 각자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며, 감정적으로 안전한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족 안의 문제는 어느 순간 갑자기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누적되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과 같은 신호가 있다면, 그 자체로 상담을 받아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 자녀가 예전과 달리 말이 줄고 방에만 있으려 하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예민한 반응을 자주 보일 때
• 부모로서 감정이 쉽게 폭발하거나, 자녀를 대할 때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자주 느낄 때
• 가족 간 대화가 거의 없고,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
• 같은 갈등이 반복되면서 점점 대화조차 어려워질 때
• 가족 중 누군가가 정서적으로 지쳐 있거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러한 신호들은 단순한 성격 차이로 보기보다는, 가족이 함께 감정의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는 징후일 수 있습니다. 가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들이 진행됩니다.
1. 정확한 진단 평가
자녀나 부모의 감정 변화가 단순한 성격이나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질환의 일부로 봐야 할지를 구분합니다. 이때 필요한 경우 심리검사와 면담이 함께 이루어집니다.
2. 가족 단위 면담
가족 간의 상호작용 패턴을 살펴보며, 특정 갈등이 어떻게 강화되거나 반복되고 있는지 구조적으로 파악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이 각자 개인 면담을 하거나 가족 단위로 면담을 진행하며, 각자의 역할과 감정 상태를 조율하게 됩니다.
3. 필요시 약물치료 병행
자녀가 수면을 못 자거나 불안이 심한 경우, 부모가 만성적인 우울 상태에 빠져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에는 단기적이고 안전한 약물치료가 병행될 수 있습니다. 이는 대화와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4. 심리치료 및 부모 교육 병행
문제행동의 수정을 위한 인지행동치료나 감정조절 훈련, 부모를 위한 양육 스트레스 관리, 효과적인 의사소통법, 감정조절 전략 등의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되기도 합니다.
가족 상담의 과정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로를 탓하는 말들이 오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씩 감정을 말하는 연습을 하고, 이해받는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조금씩 관계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상담 장면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미안하다”라고 말하고, 자녀가 “사실 나도 노력 중이었다”라고 답하는 그 순간, 바로 그 조용한 장면이 가족의 회복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누군가가 먼저 용기를 내어 자신을 돌아보고, 이해의 손을 내밀 때, 가족은 다시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게 됩니다.
가족 안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감정이고, 그래서 가장 깊이 상처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가족은 서로를 가장 깊이 치유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가족 안에서의 문제를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해결하기가 벅차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가족 상담을 받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건강한 가족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다시 서로를 믿고 기대어 설 수 있도록, 우리 가족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여정을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정희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