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무기력증에 대처하는 법
정신의학신문 ㅣ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름철 더운 날씨로 인해 요즘 실내 생활이 길어지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그러면서 신체활동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무기력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무기력증에는 자신과 삶 전반에 대한 회의감, 피로감, 의욕 저하 등이 포함됩니다. 매일 하던 일도 귀찮아지거나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마냥 쉬고만 싶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거나 누워있으면 시간을 허비한 듯해 다시 후회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런 무기력감이 장기간 이어지면 우울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데요. 특히 낮 시간이 짧고 일조량이 적은 겨울철에는 계절성 우울증(SAD: Seasonal Affect Disorder)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겨울이 긴 북유럽에서는 계절성 우울증이 상당히 흔하게 발견되는데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겨울철이 되면 따뜻한 곳으로 휴양을 가거나 다양한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도 합니다.
꼭 계절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무기력증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나 학업,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 건강 악화, 심리적 문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피로감,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던 경험이 대표적입니다. 이와 함께 열심히 노력했는데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실패 경험이 누적될 때,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초라하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느껴질 때 무기력증을 경험합니다.
무기력증의 기저에는 ‘내가 노력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통제감 상실이 깔려있습니다. 해 봤는데 안 됐다는 좌절과 절망감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으로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학습된 무기력은 긍정심리학의 대가인 마틴 셀리그만의 동물실험을 통해 도출된 개념입니다. 개를 케이지 안에 넣고 반복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하면, 담을 넘어 도망치려고 하는 시도를 기울이지 되는 것입니다. 전기충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개들은 자신이 도망치려고 애써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되고 더 이상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케이지 한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전기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었죠. 반면 통제할 수 있는 전기충격을 받거나 전기충격을 전혀 받지 않았던 개들은 쉽게 담을 넘는 과제를 쉽게 학습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를 통해 셀리그만은 통제감 상실이 무기력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무기력감은 우울증과도 공통점을 가지는데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도전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 한번 각인된 부정적 신념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 어떤 행동을 시도하기 위한 의지를 잃어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평상시라면 관심갖고 열정적으로 했을 일상적 활동에 대한 흥미나 식욕 등이 저하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나 셀리그만은 무기력증이 학습되듯이 낙관주의 역시 학습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학습된 낙관주의’라고 합니다. 그는 개개인이 가진 약점보다 강점에 집중하면서 긍정심리학을 통해 개인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마음가짐이나 행동양식이 바뀔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언어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긍정적인 언어 습관을 통해 낙관적인 관점을 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셀리그만의 시각은 우리가 무기력증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좋은 결과를 상상하고,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좋은 면을 발견하는 것이 무기력증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셀리그만의 이런 긍정적 언어습관을 활용한 방법과 함께 무기력증을 대처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긍정적 자기 대화
자기 대화(self-talk)는 자기 내면과 이야기 나누는 것인데요. 다른 사람이 내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해 줄지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면서 자신감을 북돋고, 낙관적인 시각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실수했을 때 “너 왜 이것밖에 못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넌 실패자야.”라고 자책하며 자신을 비난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이런 자기대화를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이 실수도 배우는 과정이야. 이번 일을 계기로 다음번에는 다르게 해보자.”라고 이야기해 준다면 어떨까요? 실수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실수가 실패가 아닌 과정이 되고, ‘부족하고 못난 나’에서 ‘계속 노력하고 배우는 나, 성장하는 나’로 자기인식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2. 작은 성공 경험 쌓기
해 봤자 소용없다, 안되리라는 실패에 대한 예측은 우리를 무기력감 속에 가둬둡니다. 이런 틀을 깨기 위해서는 ‘해봤더니 된다’라고 깨달을 수 있는 성공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꼭 크고 거창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집 앞 5분 산책하기, 책 20페이지 읽기처럼 쉽게 실천하고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해 보세요. 성공할 때마다 기록으로 남기고, 이런 도전을 통해 느낀 점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산책을 통해 기분 전환이 되었다거나,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든지,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를 통해 내가 행동했을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건강한 삶의 루틴 지키기
무기력증이 왔을 때는 식사나 청소, 세수하기처럼 일상적인 활동들도 귀찮아집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루틴을 잘 지키는 것이 무기력증을 극복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영양소가 풍부한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일정한 시간에 충분한 수면 취하기처럼 균형있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4. 사회적 관계망 활용하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고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기 쉽습니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연락하거나 작은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무기력증이 심하거나 우울감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의 자조모임에 참여하면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볼 수도 있습니다.
소개해 드린 방법과 함께, 무기력감이나 우울감이 너무 심하신 경우에는 전문가를 통해 도움을 받으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긍정적 자기대화와 성공경험, 건강한 삶의 루틴과 사회적 관계를 통해 삶의 즐거움과 활력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우경수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