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yours,] ‘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할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2025-07-31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ㅣ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태어나 보니 이미 정해져 있었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였던 ‘엄마’. 어떤 분들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아픈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부모 자식 간의 특수한 관계는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벗어나고 싶을 만큼 괴롭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떠날 수 없고, 결국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엄마와의 관계에 갇혀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책과 이 편지가, 그런 관계의 도돌이표를 마침내 지나 다음 악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어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독자분들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가요? 진학이나 진로, 연애와 결혼 등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엄마가 생각하는 정답’만을 강요하거나, 일상 전반에 과도하게 간섭하며 집착하진 않으셨나요? 혹은, 희생과 눈물로 얼룩진 본인의 삶에 대한 괴로움과 분노를 쏟아내며 “나한텐 너밖에 없다”라고 자주 말씀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반복되는 부부 싸움 끝에는 “아빠한테 가서 이제 그만 화 내시라고, 식사하시라고 전해”라며 가족의 평화를 책임지는 역할을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셨을지도 모르지요. 때로는 “너는 첫째니까, 동생은 어려서 잘 모르니까 네가 조금 더 참고 양보해야지” 같은 말로 형제자매 사이에서 미묘하거나 때론 분명한 차별을 반복해오셨을 수도 있습니다.

일러스트_freepik

“내게 맞지 않는, 나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일지라도

엄마라는 존재의 심리적 기원을 밝히고 갈등을 해결하고

가능성을 발견하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용기를 내어 마음속 숨은 상처를 만나고 그 이면의 상황을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 엄마가 엄마답지 못할 때는 분명 엄마에게 내면적인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내 안의 상처도 이해되고

이를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부부 및 가족치료 임상가이자 심리학자인 이남옥 교수는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라는 책에서 상처가 되는 대표적인 네 가지 어머니의 유형을 설명합니다. 자녀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거나, 차별을 하거나,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엄마 모습이 이에 해당합니다. 겉보기에는 헌신적이고 다정해 보이지만, 자녀의 정서적 경계를 침범하고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 자녀는 종종 너무 많은 사랑에 휩싸여 오히려 자신을 잃고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자녀는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면서도, 그 부족한 사랑을 갈망하며 성인이 된 후에도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엄마와 마치 한 몸처럼 얽혀 있는 관계에서, 독립하거나 건강한 거리를 두는 일이 불효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럴 때면 자신이 가엾은 엄마를 저버리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한, 엄마에게는 최고의 남편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자녀에게는 결코 최악의 아빠는 아니었을 수도 있는 존재가, 어느새 엄마의 시선과 감정에 물들어 가족 안에서 편을 나누는 구도 속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힘든 엄마’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지만, 그저 원망하거나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엄마의 삶을 그 부모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3대에 걸친 가계도를 함께 살펴보고 그 뿌리를 이해해 보려는 가족치료적 통찰을 제안합니다. 또한,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수많은 기억 속에서 숨어 있던 작지만 따뜻한 기억을 다시 찾아가 보는 치료과정을 소개합니다. 때로는 엄마에게 듣고 싶었지만 끝내 들을 수 없었던 말을 치료자와의 대화를 통해 나누며, 마음속에 새로운 ‘가상의 안정된 부모상’을 형성해 나가는 작업도 포함됩니다.

“지금까지 받아온 상처와 아픔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입니다.

상처로 인해 맺어진 불균형한 관계 또한 불가항력적인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자각했다면 상처받은 자신을 수용하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몸처럼 붙어 있는 이 관계는 이제 독립이 필요합니다.

[...] 이제는 엄마의 뜻과 다른, 자신의 욕구와 의견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엄연히 엄마와 다른 존재입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분화(differentiation of self)’라는 개념은 미국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머레이 보웬이 창시한 가족체계이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입니다. 보웬 이론은 가족을 하나의 정서적 단위로 보고, 정신질환이 가족 체계 내에서의 정서적 상호작용 결과로 발생할 수 있음을 제안하며 오늘날 가족치료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자기분화란,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가족이나 타인과 정서적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요. 이는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에서도 사고(thinking)와 감정(feeling)을 분리해낼 수 있는 내적 능력, 그리고 가족이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자기(self)를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대인관계적 능력의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엄마가 비록 슬퍼한다고 해도 그것은 엄마의 감정일 뿐입니다.

그 감정까지 모두 책임지고 다 떠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보다 더 강력하게 엄마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엄마는 내가 없으면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라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나친 밀착이나 융합, 혹은 극단적인 거리감을 동반한 단절의 관계는 모두 미분화된 상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엄마와의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건강하게 분리된 상태는, 저자가 말하듯 “놓아주기와 연결하기가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진 관계”입니다. 독자분들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인가요? 아니면 ‘엄마’ 또는 ‘타인’의 목소리인가요? 엄마가 어떤 모습이었든, 우리는 누구나 엄마와의 관계 안에서 ‘두 번째 탯줄’을 끊는 심리적 분리를 경험해야 합니다. 이는 ‘나’를 찾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 과정 속에는 때때로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나 결국 그 끝에서,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지켜낼 수 있는 새로운 엄마와의 관계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로부터 이어지는 대인관계 속에서는, 타인의 감정에 과도하게 휘둘리거나 요동하지 않는, 더 단단한 ‘나’와 마주하게 되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화해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입니다.

[...] 변화라는 건 내가 가진 부모에 대한 밑그림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

 

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예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