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음챙김(mindfulness) - 강박증 치료의 필수 요소
정신의학신문 ㅣ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 글은 강박증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의학적·심리적 진단이나 처방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정신건강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앞서 강박증을 이해하는 여러 관점과 치료적 접근을 살펴보았습니다. 강박 사고(Obsessions)와 강박 행동(Compulsions)이 일으키는 악순환, 그리고 회피라는 전략이 실제로는 불안을 더 키운다는 점, 나아가 수용전념치료(ACT)에서 말하는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강박증 치료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인 ‘마음챙김(Mindfulness)’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최근 연구와 임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마음챙김은 강박적 사고와 행동의 무한 루프를 끊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흔히 마음챙김(Mindfulness)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경험에, 판단을 배제한 상태로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뜻한다고 정의됩니다. 강박증 환자분들은 미래나 과거에 대한 불안, 혹은 강렬한 침투적 사고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문단속을 제대로 했는가”라는 걱정이 끊임없이 올라와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이미 일어나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느라 시간을 보내곤 하지요. 마음챙김은 이러한 생각과 감정을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아, 지금 이 생각이 떠오르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린 뒤, 다시 현재의 순간에 주목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강박증과 마음챙김의 연결고리
강박증 환자분들은 반복되는 침투적 사고로 인해 “이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하게 인식하고, 이를 없애거나 확인함으로써 불안을 줄이려 합니다. 그러나 마음챙김적 관점에서는, 생각에서 도망치거나 싸우기보다는 “생각은 생각이고, 그 생각이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집중합니다. 실제로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현실이 분리될 수 있음을 체득할 수 있다면, 강박 사고에 대한 기계적 반응 대신 작은 여유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강박증에서 자주 동반되는 현상 중 하나는, 과거의 실수나 미래의 위험을 계속 재생산하는 “반추(rumination)”입니다. 마음챙김은 특정 생각에 빠지거나 그 생각을 피하려고 애쓰는 대신, 현재의 감각이나 호흡, 신체 상태 등으로 주의를 돌리도록 안내합니다. 이를 통해 불안이나 강박 생각이 들어올 때마다, 그 속에 빠져드는 것을 일시적으로 늦추거나 중단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CBT의 노출 및 반응 방지(ERP)나 ACT 같은 다른 치료법과의 결합
마음챙김은 독립적인 기법이기도 하지만, 강박증 치료에서 흔히 사용되는 노출 및 반응 방지(ERP)나 수용전념치료(ACT)와 결합되었을 때 더욱 시너지를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ERP 과정에서 환자분이 불안 자극(오염된 물건 등)에 노출되었을 때, 그 순간 느껴지는 불안이나 강박 충동을 마음챙김적 태도로 관찰하실 수 있다면, “불안을 억지로 없애는 대신, 그것이 몸과 마음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 견디는” 연습이 수월해집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이 불안이 조금 지나가기도 하는구나”라는 학습이 일어나고, 강박 행동을 반복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역량을 키우게 됩니다.
수용전념치료(ACT)의 여러 핵심 요소들도 마음챙김을 전제로 합니다. 예를 들어 인지적 탈융합(cognitive defusion) 과정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비판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허용하면서도 “이건 내 마음속에 지나가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고 바라보는 데 마음챙김적 태도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강박증 치료의 다양한 단계에서 발휘될 수 있는 기초 기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상에서의 마음챙김 적용
강박증 환자분들 중에는 “마음챙김 명상? 난 불안을 억누르기도 벅차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챙김은 굳이 특별한 자리에 앉아서 호흡만 보는 행위가 전부가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연습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호흡 관찰입니다. 자리에 편안히 앉아 눈을 살짝 감고, 들숨과 날숨이 몸을 통해 오가는 과정을 느껴보시면 됩니다. 강박 사고나 불안이 스며들 때마다 “생각이 떠올랐구나”라고 인식만 하시고, 다시 호흡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이 단순한 연습은 마음이 지금 이 순간에 닻을 내리도록 도와줍니다.
둘째, 바디 스캔(Body Scan)입니다. 누워 있거나 앉은 상태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주의를 기울입니다. 특정 부위의 긴장이나 감각 변화를 알아차릴 때, “이 부분이 조금 뻐근하구나” 정도로 표현하고 넘어가되, 거기에 대한 판단이나 걱정을 붙이지 않습니다. 강박 생각이 스며들어도 “그것도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구나”라고 인식하고 다시 몸의 감각으로 돌아옵니다.
셋째, 일상적 활동에 마음챙김을 담아보기입니다. 걷기, 설거지, 옷 접기 같은 일상에서 하는 행동을 할 때, 그 순간의 감각을 하나하나 체험해보는 겁니다. 예컨대 “물을 만졌을 때의 온도는 어떻지?” “걸을 때 발바닥이 닿는 느낌이 어떠한가?” 등을 의식적으로 느껴보시면, 머릿속에 맴돌던 강박 사고가 약간 뒤로 밀려나는 효과를 체감하실 수 있습니다.
마음챙김이 중요한 이유
강박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는 “이 강박 사고나 행동이 논리적으로 맞는지, 틀린지”를 분석하기도 합니다만, 마음챙김은 그와 별개로 “그 생각이나 불안이 어떻게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해줍니다. 즉, 이성적 분석과는 또 다른 결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불안이 내 몸과 마음에 흐르고 있구나. 내가 이 불안을 제대로 느끼고 있으며,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겠구나”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또한 마음챙김이 자리 잡으면 “강박 사고가 올라올 때마다 즉시 회피나 확인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충동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자동 반응을 일으키기보다 “잠깐,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자. 이 생각이 진짜 현실을 반영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스쳐가는 이야기일까?”라고 물어볼 공간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런 질문 하나가 강박증이라는 복잡한 거미줄 속에서 작은 탈출로를 마련해줄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마음챙김이 강박증 치료에 유의미한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들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임상시험에서는 마음챙김 기반 인지치료(MBCT)가 강박적 사고의 빈도와 강도를 감소시키는 데 효과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으며, 노출 및 반응 방지(ERP)와 결합했을 때 치료 유지 효과가 향상됐다는 사례들도 존재합니다. 더 나아가 마음챙김이 불안 전반, 스트레스 대처 능력 등에 긍정적 기여를 한다는 결과들도 다수 발견되고 있어, 강박증뿐 아니라 폭넓은 영역에서 활용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마음챙김은 기술이 아닌 “태도”
마지막으로, 마음챙김은 완벽하게 숙달해야만 효력을 발휘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강박증을 겪는 분은 “한두 번 명상을 해봤는데, 머릿속이 계속 시끄럽더라”며 좌절감을 느끼시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챙김의 핵심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에 빠져들거나 통제하려 애쓰지 않고, 그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부정적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또 그 생각이 왔구나. 괜찮아, 지나갈 수 있어”라고 말하며 다시 현재로 복귀하는 그 시도가 이미 마음챙김적 태도인 셈입니다.
정리하자면, 마음챙김은 강박증 치료에서 단순히 ‘이완’이나 ‘심리 안정’을 위해 추가되는 보조 기술이 아니라, 강박적 패턴 그 자체를 흔드는 핵심적인 도구 중 하나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불안이나 강박 사고가 스며들 때마다 “그런 일이 생겼네”라고 인정하고, 나아가 그 선택을 바탕으로 일상적인 행동을 재개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강박증이라는 거대한 틀에서 벗어나, 이전보다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조금씩 되찾게 됩니다.
불확실함과 강박 사고에 자꾸만 시달릴 때,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커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챙김은 생각과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억압하지 않고도 관찰하는 제3의 길을 열어줍니다. 그것이 강박증과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수용전념치료(ACT)나 노출 및 반응 방지(ERP) 같은 다른 치료기법과 결합했을 때는, 마음챙김이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하곤 하지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보겠다는 작은 선택과 연습이, 강박증이 움켜쥐고 있던 삶의 시야를 서서히 넓혀주는 매개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신재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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