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집중이 잘 안 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신의학신문 ㅣ 김영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초반 남자입니다. 지금은 직장생활은 하지 않고 있고, 몇 달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4개월 정도 쉬고 있습니다. 원래 계획은 토익, 한국사 등을 공부해서 스펙을 쌓으려고 했는데, 공부는 아예 안 하고 머릿속으로만 ‘해야지’ 하고 막상 실천하기 어려워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현재 제 상황이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고, 과거 학창 시절 때 왕따 당하고 아이들이 그냥 싫다는 이유로 저를 욕하고, 책상 위에 냉면을 붓고 가방을 손상시키고, 버스 탈 때 계속 저를 욕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실패한 20대 대학 생활, 그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괴롭힘당한 기억이 번갈아 가며 계속 상기되어 괴롭습니다.
글이 별로 많지 않은 가벼운 책 읽는 것도 집중이 안 됩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과거일이 떠올라 후회되고 괴롭고, 친구가 만나자고 해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귀찮기도 하고 제 하소연하기도 싫습니다. 시골에 살고 있는 부모까지 원망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지만 전화하는 것조차 짜증납니다.
예전에는 TV를 보거나 수면 또는 산책하는 게 안 좋은 기억을 잠시나마 잊는 방법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미래만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모든게 최악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이 미화된다고 하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미래를 위해 이런저런 계획도 세워보고, 실행에 옮기려고 생각도 해 보시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또, 학창 시절과 대학, 직장 시절에 경험하셨던 힘든 기억들이 떠올라 괴로우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힘든 일을 겪으면 누구나 의욕이 꺾이고 부정적인 마음이 들 수 있고, 실패나 좌절, 주변의 스트레스 요인들이 여러 번 반복되면 다시 일어서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 역시 지금 그런 마음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의 취업과 삶을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억과 마음이 현재보다는 과거의 일들에 아직 머물러 있고, 그로 인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에 온전히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남겨주신 사연의 내용들을 살펴봤을 때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우울감을 경험하고 계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우울감이 있는 상태에서는 평소에는 쉽게 할 수 있었던 일들도 어렵게 느껴지고, 주의력이나 집중력도 저하됩니다. 글이 많지 않은 글도 읽기 쉽지 않다고 느끼신 것은 이런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 친구분들과의 만남을 갖지 않는 것처럼 대인관계에서 위축되고 직업활동을 비롯한 사회적 활동에서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 부모님을 비롯한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 역시 우울감이 찾아올 때 경험할 수 있는 증상들입니다.
현재 만족스럽지 않은 자신의 모습과 과거 경험했던 괴롭힘과 대인관계에서의 힘들었던 기억, 실패라고 각인된 대학 생활 등이 누적되어 삶 자체가 실패했고, 본인이 실패자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해도 결국 실패할 것이고, 삶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비관적 전망이 생각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TV를 보면서 주의를 전환하거나 산책, 수면 등을 통해 나름대로 이런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대처해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울감이 더 깊어지고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이제 그런 방법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어서 더 힘든 상황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주의집중이 어려운 부분과 의욕이 생기지 않는 데서 오는 고민을 호소해주셨지만, 그 이면에 있는 우울감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에 대한 적절한 도움과 개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 경험하시는 주의집중의 어려움과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단순히 사연자님이 의지 부족, 게으름과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울감으로 인한 증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더 깊이 탐색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정신과 전문의나 전문상담사를 통한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그 과정에서 공부나 취업준비와 같은 현재 당면한 과제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과거 경험하셨던 괴롭힘이나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 대학과 직장생활에 대한 사연자님의 생각과 감정을 더 깊이 살펴보면서 우울감의 원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살펴보고,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일들(미해결 과제)을 적절하게 다루는 법을 배우실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너무 어려운 목표보다는 쉽고, 달성이 가능한 작은 목표들부터 세우면서 일상에서의 루틴을 만들어가시기를 권합니다. 예를 들어 ‘토익’이라는 막연한 목표보다는 ‘하루에 토익 Part 1 문제를 5개씩 풀겠다’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또, 비단 공부나 취업에 관한 것이 아니라더라도 꾸준한 운동 계획을 세우고 달성함으로써 통제감과 성취감을 경험하는 것도 좋습니다. 예를 들면, ‘한 달 동안 일주일에 3일 이상 하루 만보 걷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휴대폰 앱 등을 활용해서 실제로 목표를 달성했는지 체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성취했을 때는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에게 보상을 해줄 수 있습니다. 목표 달성일에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 중 너무 비싸지 않은 것으로 자신에게 선물을 해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막연하고 너무 버겁게 느껴질 때,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 감당하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는 몸을 일으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고, 조금씩 행동에 옮기며 실천하고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새로운 일들을 시작할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고,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으며, 무언가를 했을 때 그것이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상에서의 꾸준한 시도와 성공 경험, 그리고 전문가를 통한 도움을 통해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에서 가벼워지시고,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삼성공감 정신건강의학과 강남점 ㅣ 김영돈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