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맞다고 하는 것, 정말 맞는 걸까? 세뇌와 동조로부터 균형 맞추기
정신의학신문 ㅣ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아침에 어떤 옷을 입을지, 점심으로 뭘 먹을지, 뉴스에서 어떤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지, SNS에서 누가 한 말에 ‘좋아요’를 누를지를 말이죠. 그런데 한 번쯤 “이 생각, 진짜 내가 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타인의 말이나 분위기, 반복된 메시지에 영향을 받아 굳어진 건 아닐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세뇌(brainwashing)’ 혹은 ‘사고 통제’라고 부릅니다. 꼭 영화에 나오는 악당이나 사이비 종교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우리도 알게 모르게 이런 영향에 휘둘리곤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짐 존스 집단 자살 사건’이 있습니다.
1978년, 미국의 사이비 종교 지도자 짐 존스는 남미 가이아나의 밀림에 ‘존스타운’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수백 명의 신도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점점 독재적으로 변해갔고, 외부와의 접촉을 막고 신도들을 통제하며 자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강요했죠. 결국 FBI의 조사가 임박하자, 그는 신도들에게 “이 세상은 타락했고, 우리는 해방을 위해 함께 떠나야 한다”라며 900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독극물을 마시게 해 집단 자살을 유도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세뇌가 얼마나 강력하고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일상에서 이런 극단적인 세뇌 상황은 잘 일어나지 않지만, 좀 더 가볍고 은근한 방식의 ‘생각 주입’이나 ‘동조 압력’은 훨씬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어떤 정치적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면, 처음에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점점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생각을 바꾸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또, SNS에서 좋아요 수가 많은 의견에 끌리거나,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을 자동으로 신뢰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이런 상황들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비판 없이 따라가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경향은 뇌과학적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뇌는 효율을 추구합니다. 매번 새롭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건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익숙한 정보, 반복되는 메시지, 권위 있는 말, 감정적으로 강한 자극에 더 쉽게 끌리도록 설계되어 있죠. 그래서 피곤할 때, 불안할 때, 무언가 확신이 부족할 때 우리는 더욱 쉽게 ‘누군가의 생각’을 내 생각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모르게 타인의 생각이나 주장에 휩쓸리는 걸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잠깐 멈춰서 생각해 보는 습관
우리가 하는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인지, 누군가의 말이나 분위기에 따라 그냥 흘러간 건 아닌지 자문해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너무 빨리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내가 왜 이 말에 끌렸을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느껴질까?’ 하고 한 걸음 떨어져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자동적으로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멈춰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2.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하기
세뇌나 무비판적 동조는 대개 감정을 통해 작동합니다. 공포, 분노, 죄책감, 소속감 같은 감정은 이성적 판단보다 더 빠르게 행동을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정보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꼭 진실인 것은 아닙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그 정보가 틀린 것도 아니고, 반대로 감동을 줬다고 해서 무조건 맞는 것도 아니죠. 감정은 존중하되, 그 감정을 불러일으킨 정보가 과연 사실인지, 왜 그런 반응이 들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다양한 의견을 찾아보기
요즘은 알고리즘이 우리의 관심사에 맞는 정보만 계속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마주하는 정보는 생각보다 훨씬 편향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생각만 반복해서 들으면, 그것이 마치 ‘진리’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도 들어보고, 반대되는 기사도 읽어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주기적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을 초기화한다든지,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찾아보면서 알고리즘이 다양해지게끔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식적 노력이 처음에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야 내 생각의 근거가 단단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휘둘릴 가능성도 줄어듭니다.
4.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기준을 스스로 세우기
정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할지를 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언제나 사실 확인이 된 정보에만 반응한다”, “사람보다 논리를 우선한다”, “존엄성과 평등은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다” 같은 나만의 판단 기준이 생기면, 외부 자극에 덜 휘둘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세상의 영향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말에 끌리고, 다수의 분위기에 편승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반복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바로 내가 ‘생각했다’라고 착각하면서 누군가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오늘 하루는,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생각이나 감정 앞에서 잠깐 멈춰서 이렇게 물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건 정말 내 생각일까?” 이 질문 하나가 우리를 세뇌와 무비판적 동조에서 한 걸음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삼성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준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