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미루기 습관으로 이어진다면?

2025-07-04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ㅣ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해야 할 일을 미루며 마음속으로 자책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청구서를 내야 하는데도 미루거나,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기로 한 계획, 제출 마감이 다가오는 과제나 보고서, 친구에게 보내려던 짧은 메시지조차 미루다 놓치는 일이 반복될 때,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책이 따라옵니다. 많은 분이 이런 미루기의 습관을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으로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심리적 요인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들과 떨어져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로 함께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내 감정이 이해받지 못하고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외로울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정서적 단절감’에서 비롯되며, 우리 뇌와 마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외로움은 우리의 자기조절 능력과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즉, 외로울수록 결심한 일을 지속하거나, 해야 할 일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에너지를 내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행동과학자인 팀 피츨(Tim Pychyl) 교수는 미루기를 ‘감정 회피 전략’으로 설명합니다. 미루기는 어려운 일을 앞에 두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불안, 두려움, 지루함 같은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는 무의식적 반응이라는 것이죠. 이때 외로움이 배경에 깔려 있으면, 우리 뇌는 “이걸 해도 어차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어”, “실패하면 혼자 감당해야 해” 같은 무력감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행동이든 시작 자체가 벅차게 느껴집니다.

 또한,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 관점에서도 외로움과 미루기의 연결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애착이 안정된 사람은 실패나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을 믿고 도전할 수 있지만, 불안정한 애착을 가진 사람은 도전에 앞서 불안, 회피, 자기 비난이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내 감정을 잘 받아주고 지지해 줬던 경험이 적었다면, 성인이 된 지금도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내적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실수나 실패를 ‘혼자 감당해야 할 것’처럼 느끼며, 아예 시도 자체를 미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외로움과 미루기의 악순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 ‘미루기’의 감정적 뿌리를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저 ‘시간이 부족해서’, ‘귀찮아서’ 미룬다고 생각했던 일을 다시 떠올려보세요. 그 일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시작하려 할 때 마음속에서 어떤 말이 들리는지 천천히 관찰해보는 것입니다. 혹시 “나는 이걸 잘 못 할 거야”, “실패하면 창피해질 거야”, “그래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같은 생각이 들었다면, 그 아래엔 외로움이나 자기 불신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정서적 연결’을 의식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 사람과의 관계 회복도 좋지만, 일단은 마음속에서 따뜻한 지지자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상상된 사회적 지지(imagined social support)’라고 하는데요. 과거에 나를 응원해 줬던 선생님, 친구,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다면 나에게 뭐라고 말해줄까?’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실제로 지지를 받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셋째, 자기 자신에게 친절한 태도를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Dr. Kristin Neff)가 강조한 ‘자기 자비(self-compassion)’는 변화의 강력한 힘이 됩니다. 힘들어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안쓰럽게 여기며 위로해 주듯, 자신에게도 자비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면 우울, 불안, 반추가 줄어들고 자존감이 향상되는 긍정적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자기 자비를 실천하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일을 미룬 자신에게 “나는 왜 이 모양이야?”라고 말하기보다는 “지금은 좀 지치고 외로워서 그랬구나. 다시 시작해보자”라고 다정하게 말해보는 연습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행동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 나누는 내적 대화의 변화는 스트레스 반응을 낮추고 행동을 유연하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넷째, 작은 연결과 성취를 하나씩 쌓아가기입니다. 오래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안부를 묻거나, 동네 도서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관심 있는 활동에 참여해 보세요. 혹은, 해야 할 일을 너무 크게 잡기보다는 5분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아주 작은 일부터 시도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미루는 습관을 단번에 없애는 방법은 없지만, ‘나는 조금씩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믿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장 효과적인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너무 지치거나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땐 전문가와 함께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도 추천드립니다. 상담이나 코칭을 통해 외로움과 미루기의 연결을 탐색하고, 자기 조절력을 회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찾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연결될 때 힘이 납니다. 미루기의 근저에는 “나는 혼자야”, “실패하면 외로울 거야”라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불안을 부드럽게 껴안아 주고, 다시금 나와 타인과의 연결을 회복해 갈 때, 우리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아주 작은 연결 하나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짧은 메시지 하나, 10분짜리 할 일 하나, 혹은 내 마음을 다정하게 들여다보는 5분의 시간처럼 말이죠. 이 작은 실천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따뜻하게 연결하고, 미루는 습관에서 한 걸음 나아갈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건대하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명제 원장

 

<참고문헌>

Cullen , K. (2025, May 5). Loneliness Makes Us Procrastinate More. Psychology Today.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the-truth-about-exercise-addiction/202505/loneliness-makes-us-procrastinate-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