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yours,] ‘러닝’이 마음에 어떤 힘을 주는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
정신의학신문 ㅣ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옷차림이 한결 가벼워지고, 해가 늦게 저무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계신가요? 어느새 성큼 다가온 여름을 맞이하기까지, 올 상반기 동안 매주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러너들이 전국 곳곳을 힘차게 내디뎠다고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달리는 지인을 한두 명쯤은 떠올릴 수 있거나, 이미 달리기를 일상 속에서 즐기고 계신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달리기에 빠져드는지 궁금해하는 분들, 또 이미 러너로서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달리기가 주는 의미와 효과를 알고 싶으신 분들께 이 편지를 전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책과 이 편지가, DNF(Did not finish; 중도 포기) 없이 완주를 돕는 든든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마라토너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김세희 저자는, 기업정신건강연구소의 임상교수로 활동하며 국내 한 기업에서 임직원들의 마음을 돌보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을 포함해 50회 이상 마라톤을 완주했으며, 2024년에는 3시간 7분 30초라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수십 차례의 완주와 저자의 최고 기록은 누구나 감탄할 만한 성취이지만, 이 편지에서는 <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라는 책을 통해 그 성취를 가능하게 한 마음과 태도에 집중해 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대회를 완주하기까지는 단 하루의 대회 당일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일상 속 수많은 훈련의 시간과 차곡차곡 쌓여온 발걸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단순히 운동 종목으로서의 ‘러닝’을 넘어, 우리가 삶이라는 긴 마라톤을 살아가는 동안 러닝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또 어떻게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비록 러닝이라는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운영하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삶의 러너라고 스스로를 지칭할 수도 있겠지요. 그 여정 속에서 ‘왜’라는 질문, 혹은 ‘개인이 세운 목표’나 ‘성과 달성’ 같은 동기가 움직일 힘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어떻게 오랜 시간 꾸준히 지속하여 달릴 수 있었는지의 질문에 기록 단축과 같은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특별한 이유가 없이도 순간에 몰입했던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마음 안에 자리 잡은 불안, 두려움, 걱정, 염려, 우울을 가리기 위해 목표를 정한다.
[...] 불안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목표에 매여 관리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목표에 따르는 스스로의 규칙을 지키면 뭐라도 한 것 같아서 불안이 조금은 잦아든다.”
삶이라는 주로를 달리다 보면, 즐거움과 괴로움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여정 속에서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가혹하게 비난하거나 무가치하게 느끼는 '자기 비난(self-criticism)'이라는 깊은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지요. 이러한 자기 비난이 깊어질수록 자신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할 만큼 심리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속도를 늦추게 하거나,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 보상과 확실한 기쁨은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른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못마땅하게 여긴다.
'나'를 믿지 못하고 '내'가 불만족스럽다.
[...] 자신을 사랑한다는 개념은 나르시시즘narcissism 과는 다르다. 나르시시즘이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라면,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믿고 긍정하며 스스로에 대해 감사하는 개념이다.”
러닝이 신체, 그리고 정신에 작용하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유익한 효과는 저자가 책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지만: 1) 도파민 활성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상쾌함, 2) 뇌의 원활한 혈액순환으로 기억력과 집중력 등 뇌 기능의 활성화, 3) 신체 전반의 혈액 순환이 개선되어 신체 기능의 활성화, 면역력 개선, 부종과 치질의 예방 및 완화, 4) 체중 감량, 5) 식욕 억제, 6) 양측성 신체 자극 신호를 통한 근심과 걱정에서부터의 자유, 7) 성취감, 만족감, 뿌듯함과 자신감, 러닝이 제공하는 보상은 이를 포함해 더 큰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자 폴 길버트(Paul Gilbert)는 ‘연민(compassion)’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과도한 자기 비난과 수치심이 다양한 정신 병리를 유발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를 완화하는 치료적 자원으로서 연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요. 흔히 연민(compassion)과 동정(pity)을 혼동하기도 하지만, 두 개념은 분명히 다릅니다. 동정은 멀리서 바라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면, 연민은 고통에 다가가 함께 무언가를 기꺼이 실천하려는 행동의 마음입니다. 즉, 고통을 느끼고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실행의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바로 연민입니다. 이 연민을 자기 자신에게 확장한 개념이 ‘자기 연민(self-compassion)’입니다.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돌보려는 적극적인 태도와 행동을 뜻하지요. 러닝을 하다 보면 계획한 거리만큼 달리지 못하는 날도 있고, 내 컨디션을 탓하고 싶은 날도 있는데요.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에게 가혹해지지 않고 오늘의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러닝은 단순한 기록 경신이나 체력 단련을 넘어 인내와 존중, 자기 수용을 훈련하는 일상의 자기 연민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고비라고 생각되는 순간 자신을 관찰하여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단련하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다.
[...] 온전하게 마음을 들여다보고 운영하는 일이 달리기를 통해 좀 더 수월해진다.
나를 고집하고 주장하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한다.
나를 둘러싼 전체 배경이 더 넓어지면서 '나'만을 주장하지 않게 된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한다.
[...] 내가 아는 사랑은 이해이다. 나를 이해하며, 상대를 이해한다.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과정은 매일의 달리기에서도 이어진다.
달리면서 끊임없이 나를 알아가고 이해하여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
편지를 마무리하며 러너들이 사랑하는 대표 러닝화 브랜드들의 슬로건을 떠올려봅니다. 그 문장들에는 우리가 달리기를 할 때 떠올리면 좋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요. 독자 여러분도 ‘구름 위를 달리듯’, 혹은 ‘날듯이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각자 ‘선한 목적을 품고 달릴’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단 한 걸음부터 ‘시작해 보셨으면’ 합니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오직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그리고 ‘즐겁게’요. 자기 돌봄을 위한 작은 실천으로서, 신발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가 천천히 걷기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언젠가 주로 위에서 마주쳐 환하게 인사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대합니다.
“삶도 달리기도 템포 맞추기다.
나에게 맞는 템포로 조절하는 능력을 갖추면 수월해진다.
[...]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왜냐하면 나의 역량과 처한 상황을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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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예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