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yours,] 오늘도 성인 ADHD를 검색한 분들에게

2025-02-27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ㅣ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고층 빌딩 숲 사이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매일 많은 직장인분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최근 20~30대 환자분들 중에서는 업무 중 집중력 저하를 경험하며 ‘혹시 성인 ADHD 때문일까?’ 고민하다가 검사와 진료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병원에 오기 전 이미 성인 ADHD에 대해 수차례 검색하고,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이거 완전 내 이야기인데?”라고 생각한 끝에 찾아오셨다는 말씀도 자주 듣고요. 오늘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성인 ADHD 책을 소개하고, 이 편지를 통해 성인 ADHD 환자분들이 오랜 시간 겪어온 어려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ADHD가 있는 아이라고 했을 때 보통 어떤 모습들이 떠올려지시나요? 우산이나 필통을 자주 두고 와서 잔소리를 듣는 아이, 공공장소에서 위험한 장난을 치다가 꾸중을 듣거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아이, 학교에서 문제를 풀다가 계산은 정확하게 했지만, 실수로 오답을 선택하고 뒤늦게 속상해하는 아이, 친구들과 대화 중 불쑥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내뱉어 ‘눈치 없는 아이’가 되어버린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겠죠.

 오늘은 그런 아이가 10년, 20년 이상 적절한 진단과 치료 없이 성장하며, 수많은 좌절을 겪고 스스로를 탓하며 버텨온 끝에 성인이 되었을 때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자 합니다. 성인 ADHD로 치료받고 있는 한 분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그냥 나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이유도 모른 채 부모님께 혼나고 마치 매일이 날벼락을 맞는 기분이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과 눈물이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일러스트_freepik

성인 ADHD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보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은

오랫동안 반복된 실수와 좌절 경험이 누적되면서 낮아진 자존감과 헝클어진 자아상이었다.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 도대체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할까 하는 자책과 주변의 시선,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자신에게 가해졌던 비판의 목소리

[...] 결국 비판의 칼날은 사소한 좌절에도 자신을 쉽게 몰아 세우게 된다.”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의 저자 반건호 교수는 30년 넘게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을 연구하며 치료해왔습니다. ADHD 아동을 데리고 온 보호자들에게도 ADHD 증상이 흔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성인 ADHD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진료실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짧은 시간에 미안함을 느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책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성인 ADHD의 유형과 진단 과정을 설명하며, 둘째, “성인 ADHD의 오해와 편견, 거짓 정보를 가려내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셋째, ADHD로 인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과 변화를 위한 방법을 다루며, 마지막으로, 인생의 궤적 연구와 직접 경험한 치료 사례를 통해 “ADHD가 가진 희망의 길”을 보여줍니다.

 

약물을 복용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불필요한 오해로 덜 상처받고,

 [...] 내가 나를 잘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체계적인 시간관리와 주변관리로 다른 이들에게 신뢰가 높아질 수 있다.

[...] 무엇 보다 평생을 짓눌러왔던 여러 어려움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린 시절 ADHD 증상을 겪었지만 다행히 주변의 따뜻한 지지와 관용을 경험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마주하는 현실은 다를 수 있어요. 이해보다는 성과가 우선시되고,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업무 수행이 요구되는 직장에서는 ADHD로 인한 어려움이 한층 더 두드러지기 마련입니다. 또한, 조절되지 않은 충동성은 성인이 된 후 음주 문제나 과속 운전 같은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집중력 저하나 충동 조절의 어려움은 ADHD 외에도 여러 정신건강 문제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 ADHD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연구에 따르면 “성인 ADHD의 84%에서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이 있으며, 두 가지 이상은 61%, 세 가지 이상 동반되는 경우가 45%”에 이른다고 합니다. 따라서 동반 질환의 치료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ADHD는 신경발달장애이기 때문에 “성인기 증상이 있다고 해도 아동기 증상이 확인되지 않으면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라는 점인데요. 즉, “성인이 돼서 처음 진단을 받은 경우라고 해도, 이미 어릴 때부터 문제가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인 ADHD를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할 때, 제가 강조하는 것은 ‘그분이 이미 지난 수십 년간 ADHD와 함께 살아왔다는 부분’이에요. 불편함 속에서도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루틴이나, 책에는 없는 창의적인 해결 방법들을 제가 환자분들에게 배우기도 합니다. 치료를 시작한 이후에도, 약물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함께 찾아내고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코칭을 제공합니다.

오랜 세월 ADHD를 모른 채 살면서 자신을 지켜온 지혜를 배우고,

그녀의 인생 행로를 통해 ADHD특징이 그동안 어떤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을지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과잉행동은 남보다 잠재된 에너지가 많아서 강력한 추진력과 지구력이 될 수 있으며,

여차하면 발끈하던 충동성은 순발력과 민첩함으로 변할 수 있다.

주의산만은 다양한 관심사와 창조적 아이디어로 이어질 수 있다.

[...] 사람 안에 깃든 여러 가지 면들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아 지금까지 안경과 콘택트렌즈로 시력을 교정하고 있는데요. 불편함과 고통의 정도를 비교할 순 없지만, ADHD 환자분들이 표현하는 ‘안개 낀 머릿속’이 아침에 막 눈을 뜰 때 보이는 뿌옇고 흐린 세상과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상생활을 위해 매일 아침 렌즈를 착용해야 선명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은, ADHD 환자분들이 아침에 약을 복용하며 맑고 또렷한 하루를 맞이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밤이 되어 렌즈를 빼면 다시 세상이 흐려지고, 안구 건조로 인해 인공눈물이 필요하듯, ADHD 약물도 복용을 중단하면 효과가 지속되지 않고 부작용을 조절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제 시력은 수술 없이는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겠지만, 렌즈 덕분에 환자분들의 눈을 보고 진료하며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력을 정확히 측정하고 알맞은 도수를 찾는 과정이 필요했듯, 성인 ADHD가 의심된다면 이제는 검색창이 아닌 예약창을 눌러보시길 권합니다. 치료를 통해 지금보다 더 또렷한 세상에서 원하는 것들을 더욱 수월하게 이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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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예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