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의 스트레스 효과적으로 다루기
정신의학신문 ㅣ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바로 일터입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나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일터에서 매일 동료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일하고 식사하는 시간이 많다는 데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낀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의 연간 스트레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의 주원인으로 ‘일’을 꼽는 경향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페이첵스 리포트에 따르면 풀타임 형태로 일하고 있는 18~79세의 미국인 2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절반 이상이 주중 근로시간의 60% 이상 동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스트레스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직무 스트레스(job stress)’라고 하며, 이는 인적자원관리, 산업 및 조직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주요 관심사로 다뤄져 왔습니다. 직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① 역할 모호성 또는 역할 갈등
정확한 업무의 범위나 책임 소재, 목표, 업무방식 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할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역할이 모호한 채로 조직이나 상사로부터 명확한 업무 방향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일하게 될 때, 누구라도 혼란과 당황스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또, 여러 역할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할 때도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원래 소속되어 있던 팀의 팀장님의 업무 지시와 새로 소속된 TFT 팀장님의 업무 지시가 동시에 떨어졌을 때, 그리고 그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매우 난감하겠죠.
② 과도한 업무량 또는 너무 쉬운/어려운 업무
업무가 너무 많아서 잠잘 시간도 부족할 때, 매일같이 야근을 밥먹듯 하게 될 때 우리는 신체적, 정신적 소진을 경험합니다. 꼭 업무량이 많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능력과 경험치, 기술에 비해 너무 쉽거나 어려운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고 무기력, 좌절감, 매너리즘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의 의미나 보람, 성취감,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③ 대인관계
일터에서 우리는 상사, 동료, 부하직원, 거래처나 협력업체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 중에는 힘이 되고 든든한 사람들도 있지만 잘 맞지 않거나 갈등을 겪게 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개인적 갈등이나 괴롭힘의 차원을 넘어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안, 우울과 같은 심리적 어려움이 야기되기도 하며, 심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④ 사내 정치
조직 내에서 특정 집단이 영향력을 발휘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공익보다 앞세우는 것을 보다 보면 조직에 대한 회의감, 불의에 대한 저항감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느낍니다. 실력이 아닌 인맥이나 뒷거래로 조직 내에서의 위치가 결정되거나 중요한 의사결정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⑤ 통제력
근무 시간이나 장소, 담당 업무 등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없을 때도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통제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일하는 방식, 업무 내용, 근무 환경 등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심한 경우 정서적 고통, 이직에 대한 생각, 다양한 신체 증상들, 결근, 실제 이직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요인들이 직무 스트레스와 관련되어 있으며, 직무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하면 만성적 스트레스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두통, 위장장애, 수면장애, 분노, 주의집중 곤란, 불안, 고혈압, 면역약화 등의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직무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다룰 수 있는 해결 방법을 찾기보다는 술이나 담배, 약물 사용 등을 통해 일시적인 해소법을 찾는 데 그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잠시간은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건강을 더 해칠 수 있습니다.
직무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① 스트레스 원인 파악하기
스트레스 상황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 그때 나의 감정이나 생각, 대처 방식 등을 기록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스트레스를 구체화하고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지, 혹은 어떤 생각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다른 대처 방식에는 무엇이 있는지 탐색하면서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통제감을 기르는 것입니다.
② 일로부터 온전히 쉬는 시간 갖기
퇴근 후에도 습관적으로 메일을 확인하거나 업무 관련 전화를 받기 위해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요? 물론 급하게 처리할 업무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온전히 업무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갖고 일과 삶의 경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③ 갈등을 경험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되도록 피하기
노력해봤지만 지속적으로 갈등을 겪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많이 일으키는 사람과의 접촉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사람과의 만남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접촉 빈도를 줄임과 함께 대면보다는 서면이나 메일, 메신저를 통한 소통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④ 건강한 습관 만들기
일은 내 삶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지나쳐 완벽주의로 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일 외에도 만족감이나 성취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악기연주나 전시 관람, 콘서트 가기, 식물 키우기, 헬스나 요가 같은 운동하기, 외국어 공부하기 등 일과는 관계없는 새로운 활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⑤ 상사와 이야기하기
앞서 이야기한 방법들만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고, 근본적인 일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상사와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가 단순한 불평불만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어떤 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업무 내용에서의 변화 혹은 근무 환경의 변화, 같이 일하는 팀 구성원의 변화와 같이 구체적인 영역에 관해 이야기할 때 상사 역시 도움을 제공하기 더 용이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또, 팀 안에서 해결할 영역과 다른 상위의 조직이나 타 부서에서의 관여가 필요한 영역을 구분해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직무 스트레스가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관리법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여나갈 수는 있습니다. 알려드린 직무 스트레스 관리법을 통해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삼성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준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