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했지만 취소되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마음일까?

2024-12-27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ㅣ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MBTI를 통한 성격유형 분류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서로 다른 유형 간 차이에 관한 내용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약속이 취소되기를 바라는 유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국민 MC로 불리는 유재석씨는 방송을 통해 자신이 내향적인 성향의 ISFP인데 ‘만나고 싶은데 만나기는 싫은 그런 마음’이 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에 같은 성격유형인 미주씨 역시 약속이 있어서 나가면 누구보다 즐겁게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나가기까지 늘 고민이 많고, 만나고 싶어서 약속을 잡지만 약속이 취소되면 오히려 좋다는 반응을 보였는데요. 해당 내용이 방송된 후 많은 사람이 두 사람과 같은 마음을 느낀 적이 있다면서 약속이 취소됐을 때 ‘오히려 좋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비단 내향적인 성향이나 특정 MBTI 유형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약속이 부담스럽거나 취소하고 싶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할 것 같을 때,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혼자 쉬고 싶을 때, 약속 장소나 시간이 부담스러울 때 등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대개는 상대방과 이미 정한 약속이니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끌고 약속 장소로 향하곤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에만 그치는 약속 취소의 유혹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꽤 자주 약속을 미루거나 어기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도 그러면 안되는 걸 알지만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고 느끼면서 상대방에게 미안해합니다. 약속이 깨진 상대방은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 저 사람은 나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구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약속을 깨는 이들과 거리를 두게 마련입니다.

 물론 양쪽 모두가 부담스러운 약속이었다면 약속 취소가 취소를 통보한 당사자나 상대방 모두에게 안도감과 기쁨을 줄 수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부담스러워서 가지 않을 핑계가 없나 고민이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한다니 두 팔 벌려 환영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계속해서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습관이 있다면 대인관계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신뢰를 잃고 좋지 않은 평판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치기 소년처럼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거나, 약속 취소를 위해 둘러댔던 핑계나 사소한 거짓말들이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져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약속 관련해서 곤란을 겪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모든 약속에 바로 Yes 하기보다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고민한 후 답하기

 약속이 잡혔을 때 상대방에게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바로 Yes라고 답하는 편은 아닌가요? 마음이 내키지 않거나 일정상 무리인데도 그 순간에 거절하는 불편함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약속을 잡고 나면 더 큰 부담감과 불편함을 계속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는 성급하게 약속에 응하기보다는 일정을 살펴본 후에 답을 다시 주겠다고 하는 편이 좋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내가 응하고 싶은 약속인지, 부담되지는 않는지 충분히 생각해본 후 비로소 마음이 확고해졌을 때 답을 하는 것입니다.

2.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싶은 이유를 살펴보기

 약속에 나가기 망설여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피곤하거나 사람들을 만나서 쓸 에너지가 없어서인지, 불편한 상대여서 그런 것인지, 장소나 시간이 부담스러운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만날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장소나 시간이 불편해서 그런 것이라면 시간이나 장소를 변경하자고 제안해볼 수 있습니다. 피곤하거나 에너지가 없는 것이라면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지금 상황을 이야기하고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보자고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오히려 다른 핑계를 대고 약속을 취소하거나 억지로 약속에 나갔을 때보다 자신이나 상대방 모두에게 더 좋고, 관계에도 도움이 됩니다. 만약 특정 사람과의 약속을 자신도 모르게 계속 회피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불편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3. 나를 위한 시간과 약속 사이의 경계 설정하기

 내향적 성향의 사람들에게 약속이란 그 자체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와는 별개로, 밖에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신경이 많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이런 성향에 해당한다면 자신의 에너지 수준에 맞게 약속의 횟수나 시간을 정해놓고 자신을 위한 시간과 약속에 할애하는 시간 사이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주말 이틀 중 반나절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청소나 다이어리 정리, 독서 등을 통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죠. 외향형의 사람들은 내향형에 비해서는 약속 자체로 인한 스트레스나 에너지 소모가 적을 수 있지만, 아무리 외향형이라도 끝없이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지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적절한 약속의 양이나 시간, 약속의 성격과 대상을 잘 파악해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개인적 시간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해보세요.

 습관적으로 약속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거나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하며 자책하지는 않으셨나요? 알려드린 방법들을 통해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습관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약속과 개인적인 삶 사이의 경계와 균형을 현명하게 찾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전형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