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너머 동료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느끼시나요?
정신의학신문 ㅣ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라인 소통이 일상화된 시대, 직장인들은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바로 '고스트 피드백(Ghost Feedback)'이라 부르는 현상입니다. 대면 소통이 줄어든 만큼 상사와 동료의 피드백도 흐릿해졌고, 때로는 아예 실체가 없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디지털 상에서 동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공감력을 발휘하고 계신가요?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업무 성과나 역량에 대한 피드백이 부족하다고 호소합니다. "잘하고 있어요."라는 피상적인 답변이나, ‘읽음’ 표시가 된 메신저의 메시지들이 쌓여가지만, 이런 모호한 반응은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낳습니다.
직장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디지털 공감력'입니다. 화면 너머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읽어내고,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피드백을 전달하는 능력이 중요해졌습니다.
팀원의 메일이나 텍스트의 메세지의 톤이 평소와 다르다면, 1:1 대화를 제안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간단히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나요?'라고 묻는 질문이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안정감, 내가 조직의 일원으로서 가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이기 때문이지요.
하버드 의대 신경과학부 랜디 버크만(Randy Buckman) 교수팀이 발표한 ‘디지털 시대의 불확실성과 뇌 반응 패턴 연구’는 1만 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뇌 활성화 패턴 분석을 통해 불명확한 피드백을 받을 때 우리 뇌의 편도체는 실제 부정적 피드백을 받을 때보다 더 강하게 반응한다고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MIT 심리학과의 사라 레빈(Sarah Levine) 교수는 ‘하이브리드 근무 환경에서의 사회적 안전감 연구’를 통해 재택근무 환경에서 ‘사회적 안전감'이 급격히 저하되는 현상을 포착했습니다. 구글과 메타의 직원 5000명을 3년간 추적 관찰한 이 연구는 디지털 소통이 지속될수록 정서적 연결의 갈망이 커진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디지털 공감력을 높이는 방법은 단순히 피드백의 ‘빈도’가 아니라, '연결'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일 겁니다. 실리콘밸리 100개 기업과 2만 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박사의 연구에서도 ‘대화의 양’ 보다는 ‘대화의 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디지털 공감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5분 룰
한 스타트업 회사는 '15분 룰'을 도입해 리더가 매일 온라인 상에서 15분씩 한 명의 팀원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특별한 점은 업무 이야기는 잠시 미뤄둔다는 것인데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팀원의 반려견 이야기 등을 들으며, 업무에 대한 피드백이 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 연결된다고 합니다.
옥스퍼드 대학 조직심리학과 헬렌 스미스(Helen Smith) 교수는 일상적 대화가 조직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업무 외적인 대화를 나누는 팀의 창의성과 생산성이 평균 33% 더 높다고 강조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15분 대화의 룰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겠지요.
감정신호등 시스템
한 기업에서는 매일 아침, 팀원들은 자신의 상태를 신호등 색깔로 표현합니다. 초록색은 '좋음', 노란색은 '보통', 빨간색은 '힘듦'을 의미할 수 있겠지요. 빨간불이 이틀 연속 켜진 팀원이 있다면, 즉시 1:1 대화를 제안했을 때 대부분의 문제가 간단한 대화만으로도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UCLA 감정노동연구소의 제시카 리(Jessica Lee) 박사팀은 300개 기업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감정을 색깔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수치를 평균 28%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동료가 내 상황과 감정을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좋은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디지털 하이파이브'
한 IT 기업은 '디지털 하이파이브'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언제든 온라인을 통해 동료에게 가상의 하이파이브를 보낼 수 있고, 이는 실시간으로 축적되어 '응원 지도'를 만들수 있도록 하여 온라인에서도 연결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고 합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디지털 공감 연구센터' 소장 에밀리 브라운(Emily Brown) 교수는 "하이브리드 시대의 정서적 연결 메커니즘" 연구를 통해 다양한 환경에서도 진정한 정서적 연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의도적인 관심'과 '구조화된 소통 체계'를 결합한 소통은 상대방에게 정서적 연결감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조직원들이 원하는 것은 누군가 나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는 안정감, 내가 조직의 일원으로서 가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일 것입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 그것을 따뜻한 소통의 매개체로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인터넷 채팅 창을 바라보며 묻고 있을 것입니다. "팀장님, 제 업무 성과는 어떠신가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길 권합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우경수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