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체시계, 제대로 맞춰져 있나요?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장애
정신의학신문 ㅣ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의 몸은 하루 24시간 동안 끊임없이 여러 리듬을 타고 움직입니다.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밤이 되면 자연스럽게 졸음이 오죠. 이런 하루 주기를 따라 움직이는 생체시계를 '일주기 리듬'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시계가 잘 맞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장애는 바로 이 '생체시계'가 잘못 맞춰졌을 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가끔 야근이나 장거리 여행 때문에 밤낮이 뒤바뀌는 경험, 다들 한 번쯤 해보셨을 텐데요. 이때 몸이 적응하지 못해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불면증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이는 부족하고 교란된 수면을 보충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수면장애로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장애(Circadian Rhythm Sleep-Wake Disorder)를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수면 시간을 맞추려 해도 자신의 신체 리듬이 일상과 맞지 않아 지속적인 피로와 불편을 겪습니다. 주요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수면 패턴이 일주기 리듬과 사회적·직업적 요구 사이에서 불일치하여, 수면장애가 지속되거나 반복된다.
- 과도한 졸림이나 불면, 또는 2가지 모두 초래하며, 기능적 손상이나 일상생활에 고통을 유발한다.
- 이러한 증상은 최소 1개월 이상 지속된다.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장애는 지연 수면 위상 유형, 전진 수면 위상 유형, 교대 근무 유형, 불규칙형, 비24시간 수면-각성 유형의 하위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예를 들어, ‘올빼미형’, ‘야행성’ 생활패턴을 가졌다고 불리우는 지연 수면 위상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자고 싶은 시간보다 너무 늦게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죠. 반대로 전진 수면 위상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잠이 들고 일찍 깨어 ‘아침형 인간’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불규칙형은 특별한 패턴없이 야간에 불면과 낮시간의 졸림이 특징으로 치매나 파킨슨 환자에서 흔하게 나타납니다. 비24시간형은 시각장애인이나 빛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수면각성리듬이 점점 뒤쳐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올빼미형’, ‘아침형 인간’처럼 생활습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장애는 우리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가야 하는 생체 리듬이 교란되었을 때 나타나는 질환이기 때문에, 피로와 졸림을 겪으며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줄 수 있어요. 장기간 방치될 경우 수면 부족으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코티솔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인해 심뇌혈관 문제 등 여러 내과적 질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지속적인 피로감과 집중력 저하, 짜증, 불안, 우울감 등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지연 수면 위상 증후군과 같은 일부 형태는 주로 청소년기와 젊은 성인에게 발생하며,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개선되기도 합니다. 반면, 교대 근무로 인해 발생한 일주기 리듬 장애는 지속적인 교대 근무 환경에서는 증상이 계속되어 야간근무자의 5~10%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장애의 치료는 개인의 생체 리듬을 환경에 맞춰 조정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가장 기본적인 치료 방법은 수면 위생 개선인데, 카페인이나 알코올 섭취를 제한하고, 일관된 수면-기상 시간 유지, 수면 환경을 어둡고 조용하게 만드는 등의 생활 습관 조절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습관 변화는 생체 리듬을 안정시키는 첫걸음이 됩니다.
지연 수면 위상 증후군에서는 아침에 커튼을 모두 걷고 밝은 빛을 쬐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광치료는 이른 아침에 1만 룩스 정도의 강한 빛을 쬐는 치료법인데, 수면각성 리듬을 앞당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멜라토닌 보충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멜라토닌은 생체 시계를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적절한 시간에 보충함으로써 수면-기상 리듬을 자연스럽게 맞출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약물치료도 고려될 수 있습니다. 수면제나 각성제는 수면의 질을 개선하거나 낮 동안의 졸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약물 치료는 개별적인 상태와 생활 리듬에 맞춰 조정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불면증을 위한 인지행동치료(CBT-I)는 수면과 관련된 잘못된 믿음을 교정하고, 매일 수면 일지를 작성하는 치료법입니다. 침대에 눕는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초반에는 오히려 피로할 수 있지만, 여러 연구에서 불면증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나라는 24시간 서비스하는 업종이 많아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야간 근무자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사회가 글로벌해지면서 외국출장이 잦거나 외국회사와 소통을 해야하는 회사원들, 최근에는 밤새 미국 주식 또는 코인투자를 하는 분들이 늘면서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장애로 고생하시는 환자분들이 점차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애를 가볍게 생각하고 방치하는 경우가 있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수면의 질은 물론, 정신적·신체적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장애가 의심된다면, 단순히 수면 시간만 조절하려고 하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으면서 일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준배 원장
[References]
대한신경정신의학회. (2017). 신경정신의학 제3판. 아이엠이즈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