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친절함을 베풀까?
정신의학신문 ㅣ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시간과 친절함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시간과 친절함은 언뜻 잘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의 시간과 친절함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977년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댄 뱃슨(Dan Baston)이 프린스턴 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있습니다. 시간에 대한 압박에 대해서 학생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인 신학교 학생들은 학업 평가를 위해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대한 강연을 하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 이야기는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향하던 사마리아인 여행자가 강도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구타당한 채 길에 버려진 모습을 발견하고, 연민을 느껴 상처를 싸매고 치료하며 친절하게 돌보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인 신학교 학생들은 다른 건물로 이동해 강연을 한 뒤 지도 교수로부터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안내 받았으나 실제 실험은 강연 장소 바로 앞에서 쓰러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연기자와 마주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다가가면 연기자가 더욱 신음하거나 기침을 하며 고통을 호소하도록 하였고, 연구자들은 학생들이 그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을 하며 관찰하였습니다.
실험 참가자인 신학교 학생들은 강연을 하러 가기 전, 아래의 2가지 중 한가지의 말을 듣게 됩니다.
1번) 강연 예정 시간이 이미 몇 분 지났으므로 강당에 서둘러 가야 합니다.
2번) 강연이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이쯤에서 강당으로 출발하는 편이 좋습니다.
이 실험을 설계할 때에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었습니다. 첫째, 선한 도움을 주기 위해선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는 사마리아인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도울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가정입니다. 둘째, 선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머리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이 높은 긴장 상태나 특정 주제에 몰두해 있지 않았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가능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셋째, 일상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선한 마음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학대학교 학생들에게는 신앙심이 있고, 끊임없이 의미를 찾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타인을 도울 준비가 더 잘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가설이었습니다.
실제 실험에서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요? 신학교 학생들이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선한 행동을 실천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강연 예정 시간이 지났다는 안내를 받은 학생 중 10%만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왔던 것이지요. 나머지 90%의 학생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무심코 지나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이 진행할 강연 시간에 늦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선택한 신앙 또는 배움의 가치와 상반되는 행동을 한 것이지요.
반면, 강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안내 받은 그룹의 학생들의 60%이상이 쓰러진 사람을 돕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실험 결과의 차이가 이처럼 극명하게 다르게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도움 행동에 영향을 끼친 유일한 변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연구진들은 그것을 ‘시간에 대한 인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험은 오직 시간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 뿐이었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미세한 차이가 다른 행동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지요. 시간에 대한 조작된 조건이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타인의 복지 보다는 자신의 당면 과제를 우선시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다른 요소는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달리와 뱃슨의 연구는 시간을 인식하는 차이에 따라 행동이 크게 달라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험의 결과는 시간의 여유와 친절함을 베푸는 일이 서로 높은 상관을 가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실험은 눈 앞에 닥친 실제적인 당면과제에 대한 속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평소 시간과 타인을 돕는 일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계신가요? 늘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많아 누군가를 도울 여유가 없다고 느끼시나요, 아니면 덜 급한 일들이 있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충분하다고 느끼시나요?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선한 마음의 사마리아인이길 꿈꾸던 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인생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시 멈춘 시간을 통해 우리의 선한 마음이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이 공감하고, 더 많이 친절을 베풀며, 궁극적으로 더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여유를 만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우경수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