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면서 표정은 왜 그래?" 미세표정의 과학
정신의학신문 |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누군가가 화를 내고 있다고 느꼈지만, 정작 그 사람은 웃고 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혹은 누군가가 슬프다고 말하지만, 어딘가 미심쩍은 순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우리 일상에서 얼굴 표정은 말보다 더 많은 걸 전해주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상대방이 기쁘거나 화난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얼굴의 작은 변화만으로 그 감정을 느낀 적이 한두 번쯤은 있을 거예요. 표정은 단순한 근육의 움직임을 넘어, 사람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투영하는 중요한 신호 역할을 하죠. 미소, 눈썹의 움직임, 입꼬리의 미세한 변화 등은 말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감정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모든 표정이 진짜 감정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감정을 숨기거나 사회적 상황에 맞춰서 얼굴을 조절하기도 해요. 그렇다면 숨겨진 진짜 감정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표정과 감정 표현에 대해 더 알아보면, 숨은 감정 신호를 더 잘 읽어내고, 그만큼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표정은 나타나는 시간에 따라 거시표정(Macrexpression)과 미세표정(microexpression)으로 나눌 수 있어요. 미세표정이란 약 0.2초 정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매우 짧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얼굴 표정이에요. 일반적인 표정과 달리 미세표정은 의식적으로 조절하기 어렵고, 감정을 숨기려 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드러나죠. 이 표정들은 분노, 슬픔, 기쁨, 놀람, 공포, 혐오, 경멸 같은 기본 감정들을 반영하며, 상대방의 내면 감정을 포착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미세표정은 일상 대화 속에서 감정을 감추려 하거나 의도적으로 조절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화를 내면서도 웃으려 한다면 그 사람의 얼굴에 짧은 순간 진짜 화난 감정이 스치듯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직감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어긋나는 미세한 단서를 제공하고,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런 미세한 신호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상대방이 말로 하지 않는 내면의 감정까지도 알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폴 에크만(Paul Ekman) 박사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모든 인간은 공통적으로 7가지 감정(행복, 슬픔, 분노, 놀람, 공포, 혐오, 경멸)이 얼굴 표정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얼굴표정 부호화시스템(Facial Action Coding System: FACS)을 개발해 FBI, CIA 등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픽사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자문역할을 하면서 부모가 아이들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돕기 위한 안내서를 마련하기도 했다네요.
7가지 기본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은 진화론적으로 중요한 생존과 사회적 적응에 유리한 이점을 제공해줍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특정 근육들이 활성화되며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죠.
행복(Happy): 행복한 감정이 있을 때는 광대근육이 수축하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를 짓습니다. 진정한 미소인 "듀센 미소(Duchenne smile)"에서는 안륜근이 함께 활성화되어 눈가에 주름이 생깁니다. 행복한 표정은 신뢰를 높이고 집단 내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이끌어내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듭니다.
슬픔(Sadness): 슬픔을 느낄 때는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며, 전두근이 이마를 당겨 눈썹이 위쪽으로 당겨지거나 구부러지며 눈 주위에 긴장이 생겨 눈물이 맺히기도 합니다. 타인에게 도움과 지원을 요청하는 신호가 되어 주변 사람들의 동정과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져 어려운 상황에서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분노(Anger): 위험이나 침해를 받아 화가 나면 추미근과 비근근이 눈썹을 당기며 미간에 주름을 형성하고, 구륜근이 입술을 긴장시켜요. 미간 주름이 눈부심을 방지하고, 목표물에 눈의 초점을 뚜렷하게 맞춰 움직임을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분노의 표정은 공격성을 표현하고 경계를 설정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공포(Fear): 공포는 위협을 감지하고 즉각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을 때 나타납니다. 전두근이 눈썹을 위로 당기며, 안륜근이 눈을 크게 열리게 합니다. 공포의 표정은 주변 환경을 더 잘 인식하고 빠르게 위험을 감지하도록 돕지요.
혐오(Disgust): 혐오감을 느낄 때는 상순거근과 비익근이 수축하면서 코를 찡그리고, 대관골근이 입술을 위로 당깁니다. 악취가 코로 들어오는 공기흐름을 차단하고, 입으로 음식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합니다. 혐오감은 해로운 물질이나 환경을 피하게 하는 감정으로 표정을 통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음식이나 환경에서 멀어지도록 진화했죠.
놀람(Surprise): 놀람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변화에 대해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공포의 표정과 유사하게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는 놀람의 표정은 즉각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빠르게 상황을 평가해 생존에 중요한 대응을 가능하게 합니다.
경멸(Contempt): 경멸을 표현할 대관골근이 한쪽 입꼬리를 위로 당겨 비대칭적인 표정을 형성하며, 구륜근이 입술의 나머지를 고정해 비뚤어진 미소와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경멸의 표정은 특정 행동이나 사람을 낮추는 신호로, 사회적 규범을 위반한 사람에게 경고를 주고 집단 내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직장 생활이나 친구 모임에 가서 눈치가 없다거나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상황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표정과 감정을 잘 캐치하지 못하는 게 주요한 원인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평소 무뚝뚝하여 얼굴이 굳어있어 감정에 따른 자연스러운 표정변화에 어색함을 느끼는 분들도 있지요.
감정 인식과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연습을 통해 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폴 에크만 그룹이 개발한 트레이닝 프로그램 METT(Micro Expression Training Tool, 유료)을 통해 온라인으로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미러링 연습을 해보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거울 앞에서 7가지 기본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 사진을 보고 각 얼굴 근육을 따라 움직이며 표정과 감정의 연결을 스스로 확인해보는 것이죠. 이를 통해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을 때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 알아차리게 되며, 감정 표현이 보다 자연스럽고 명확해집니다.
그리고 밖에서는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 그들의 표정이나 말투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연습을 하면서 감정 공감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미세표정이 잘 읽힐 때 소통은 더 깊어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표면적으로는 기쁘다고 하지만,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슬픔의 미세표정을 본다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더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런 미세표정을 잘 읽는 능력은 감정적으로 더 풍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상대방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결국 미세표정은 단순한 얼굴의 움직임이 아니라 감정을 읽고, 더 진실된 소통을 하는 열쇠 역할을 합니다. 이 미세한 단서를 통해 우리는 더 깊은 감정적 연결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삼성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최준배 원장
[References]
폴 에크먼. (2012). 텔링 라이즈.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