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뒤바뀔 때, 부모화

2024-09-23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우리는 각자 가족 내에서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자녀, 남편, 아내, 부모 등 역할마다 기대되는 기능이 있고, 가족들과 이런 역할과 기대를 주고받으며 생활합니다. 전통적인 성 역할 관점에서는 아내는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고, 남편은 바깥일을 하며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는 했죠. 그에 반해 지금은 이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바뀌어서 아내와 남편이 경제적 부분과 가사, 양육을 함께 공유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도 비교적 크게 영향받지 않고 일관되게 유지되는 가족 내 역할이 있는데요. 바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부모는 아직 어리고 돌봄이 필요한 자녀에게 물리적, 정서적 돌봄과 지지를 제공합니다. 세상에 처음 나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를 떠올려 보세요. 이 아이에게 부모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생존과 성장에 상당한 위협을 받게 되겠죠. 

흔히 부모-자녀 사이를 천륜이라고 합니다. 하늘에서 이어준 인연으로, 부모는 자녀에게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 사랑을 쏟아붓고, 자녀의 안위를 늘 살핍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죠. 필요한 음식과 옷, 목욕시키기 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아이가 자람에 따라 교육, 사회화와 같은 더 넓은 영역의 지원을 제공합니다. 부모의 보살핌 아래서 자녀는 보호와 안전감을 경험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필요를 채워 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이런 기대가 충족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타인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형성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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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정 내에서 이런 부모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돌봄과 사랑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가 정서적, 경제적, 환경적 이유 등으로 인해 자녀에게 충분한 사랑과 실질적 지원을 주기 어려울 때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어려움으로 인해 자녀의 정서적인 욕구를 충분히 알아차리거나 반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어린 자녀가 보호자의 관심이 필요해서, 혹은 배가 고파서 울지만 부모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기도 쉽지 않기에 자녀에게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합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부모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자녀의 학비나 생활비를 제대로 지원해주기가 어려운 가정환경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각각 경우는 다르지만, 가정 내에서 부모로부터 필요한 정서적, 물리적 지원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 반복, 누적된다면 자녀는 어떻게 느낄까요? 아마 부모님에게서 필요한 지지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 부모님이 주지 못하는 정서적, 물리적 지원을 자녀인 자신이 오히려 부모님에게 제공하고자 하기도 합니다. 우울하고 힘들어 보이는 부모님을 정서적으로 지탱하고 힘을 주는 역할을 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모님께 보탬이 되고자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해 가장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자녀가 부모 역할을 대신하는 상황, 부모 자녀 간 역할이 역전되는 것을 ‘부모화(parentification)’라고 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고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또 부모님이 노쇠하시면서 이런 역할 역전이 일어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화’에서는 어린 자녀들이 자신의 욕구나 필요를 충분히 인지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부모의 욕구나 감정, 주변 상황을 지나치게 살피면서 스스로를 억누르게 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흔히 ‘애어른’이라는 말을 많이 하죠. 어린아이가 떼쓰지 않고 의젓하며 속이 깊을 때 주로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른스러운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사실 ‘내 욕구와 감정’이 아닌 ‘부모님, 어른들의 마음과 시선’을 더 신경 쓰고 눈치 보는 불안함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사랑받고 관심받으며 보호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데서 오는 내면의 공허감과 외로움,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수반되기도 합니다. 

이런 아이들은 겉으로 봤을 때는 얌전하고 알아서 뭐든 잘하는, 일찍 철든 아이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이 아이에게 어떤 욕구가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것이죠. 하지만 떼쓰고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아이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런 아이들에게 기울이는 것보다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사랑받고 관심받으며,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부모화를 경험하며 성장한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누군가를 돌보거나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데서 존재 가치와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계속 뭔가를 해드림으로써 자신의 정서적 결핍을 채우고 내가 가족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증명하고 확인받으려고 하기도 하죠. 혹은 반대로, 믿고 기댈 만하다고 생각되는 연인이나 배우자, 가까운 친구와의 관계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지 못한 정서적, 물리적 필요를 채우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인에게 평생 부모님께도 부려 보지 않은 어리광을 피운다거나, 자신도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죠. 

우리는 누구나 ‘내면 아이’를 마음속에 갖고 있다고 하죠. 몸은 자랐지만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는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았던 욕구나 그로 인한 결핍, 사랑받고 보살핌받고 싶었던 내면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부모화를 경험한 분들이라면 이런 내면 아이의 외침이 이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부모화의 경험을 이미 성인이 된 지금 없던 일로 돌릴 수도 없고, 무조건 부모님을 탓할 수만도 없습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지는 못했을지라도, 부모님은 그분들 나름대로 노력을 하셨을 것이고, 살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사건과 환경들을 극복하면서 각자 힘든 과정을 겪어오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이 완벽한 부모이지 못했듯, 우리 또한 완벽한 자녀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역시 부족한 부모일 수밖에 없겠죠. 

이렇듯 우리는 완벽할 수 없는, 부족한 자녀이자 부모이지만 그저 ‘더 나은’ 부모, 혹은 자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혹시 자녀로서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애써 오지는 않으셨나요?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내면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더 아끼고 다독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채워지지 않은 나의 결핍을 현재 내 자녀와의 관계에서 충족시키고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혹시 내 자녀에게 부모의 역할을 기대하는 부모화의 대물림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