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입시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로 힘듭니다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작년 여름부터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 들어 계속 심해지면서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워지고 모르는 사람을 지나치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누구 눈에도 띄고 싶지 않고 존재감이 아예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학교에 나가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학교만 가려고 하면 심한 복통이 느껴지고 학교 가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듯 등교하는 게 힘들어요. 다음 날 학교에 가는 게 두렵고 싫어서 새벽 내내 잠들기 싫다는 생각에 잠들지 못합니다. 대학교에 원서도 넣고 생활기록부도 곧 마무리될 시기라 학교에 잘 다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제가 죽을 듯 한심하면서도 학교에 가는 게 턱 밑까지 숨이 차오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힘듭니다.
주변에선 고 3이 인생의 다가 아니라고들 하시지만 대학에 잘 가도 가지 못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길을 계속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라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렇게 우울하고 불안하게 지내다가도 잠시 현실을 잊고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볼 때면 다시 기분이 괜찮아지는 느낌이라 그냥 게으르게 지내는 걸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힘든 척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자괴감도 듭니다.
주변에선 아무렇지 않다가 갑자기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는 게 이상하다고 그냥 게으른 행실이 문제라고들 하시기에 원래도 쉽게 얘기하지 못하던 얘기들을 하기가 더 어려워져 얘기하지 못합니다. 또 최근엔 스트레스받으면 조절이 안 되면서 자꾸 화가 나고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완벽한 해답은 없겠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면서도 정말 죽고 싶지는 않기에 조언이라도 받고 싶어서 사연 남겨 봅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작년부터 이어져 온 불안과 우울, 그에 더해 고 3으로서 느끼시는 압박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힘들지만 인생의 중요한 시기인 만큼 잘 버텨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하고 스스로 더 자책하고 계신 것 같기도 한데요.
사연에 우울과 불안이 시작된 원인에 대해서는 남겨 주시지 않았기에 정확한 원인을 모두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고 3 입시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증상이 더욱 악화되신 것으로 보입니다. 대인관계를 피하고 철수하는 모습, 학교에 가기가 두렵고 학교에 가려고 하면 신체적, 심리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잠들지 못하는 것 등은 등교 거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학교 공포증(school phobia) 내지는 학교 거부증(school refusal)이라고 합니다.
등교 거부 증상은 아동, 청소년들에게서 나타나며, 사연자님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인 고 3 학생분들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하고 학교에 가려고 하면 몸이 아프거나 대인관계에서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 학교에 가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불안감, 우울함이 올라오기도 하고 학교에 가기를 거부하며, 등교하라고 했을 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가정적, 대인 관계적 어려움, 학교에서의 괴롭힘, 학업에서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 우울이나 불안을 비롯한 심리적 어려움 등이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요. 사연자님이 말씀하신 우울이나 불안도 등교 거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교 원서를 넣고 생활기록부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계신 것이 아닌지요. 또, 대학을 잘 가도 가지 못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길을 혼자 걸어가는 느낌으로 죽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학업과 입시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우울감이나 불안을 상당히 경험하고 있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울, 불안이 심하면 자신과 주변 사람들,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심해지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와도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고,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하고 힘들다가도 잠시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보면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혹시 내가 스스로 너무 힘든 척하는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행동은 지금 느끼시는 심리적 어려움, 즉 우울감과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울감과 불안으로 인한 마음의 무게가 무겁다 보니 일시적으로라도 이를 떨쳐내고 가벼워지고자 하는 일종의 회피 전략인 것이죠.
회피라고 해서 부정적인 어감이 든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이런 행동 자체가 나쁘다, 좋다 이야기하기보다 그런 행동 이면에 있는 사연자님의 마음이 어떠한지에 더 집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는 그만큼 평소에 스트레스가 많고 심적으로 힘들다 보니, 잠시 스스로에게 숨 쉴 구멍을 내어 주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연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경험하시는 마음의 어려움을 주변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않으셔서 더 힘드시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힘든 마음을 모른 체 하고 덮어 둔 채로 그냥 공부에만 집중해야지, 입시에 몰두해야지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결하지 못한 채 마음의 어려움을 억압하다 보면 증상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연자님이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고 자책하기보다는 ‘내가 지금 마음이 힘들구나.’하고 자신의 힘든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기 어렵고 학교에 가려고 할 때 경험하는 증상들이 심리적인 면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 분들과도 충분히 이야기 나눠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단순히 의지 부족, 게으름이 원인이 아닌 우울감, 불안과 연결된 증상이며, 참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정신건강 영역의 문제임을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충분히 말씀 나누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교내 상담 선생님, 학교 밖의 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 등을 방문하시기를 권유합니다. 불안과 우울, 등교 거부와 관련된 다양한 원인을 탐색하고 상담, 약물치료 등을 통해 필요한 도움을 받으시다 보면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시기인데 왜 잘 해내지 못하고 이러고 있을까 하며 자책감과 무기력감을 많이 느끼고 계실 것 같은데요. 이제는 자기 비난을 멈추고 그동안 많이 애쓰셨고 지금도 애쓰고 있는 자신을 격려해주며 안아주셨으면 합니다. 또, 부모님과 선생님,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논의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통해 마음의 어려움을 치유해 나가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