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과 본능이 알려주는 것, Gut feeling
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어딘가 불편하고 쎄한 느낌을 받거나 어떤 장소를 찾았을 때 빨리 그곳을 나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직감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드는 그런 순간들 말이죠.
이런 느낌을 정신건강 분야에서는 ‘Gut feeling’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gut는 내장기관이나 소화기관을 의미하는 말로, 뱃속에서 나오는 감정, 즉 직관이나 본능적인 느낌을 뜻합니다. 불편하거나 긴장되는 상황에서 뱃속이 불편하거나 메스꺼운 느낌, 부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보신 적이 있다면 이 말이 쉽게 이해가 되실 텐데요. 중요한 실적 보고를 앞두고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속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이 모두 이 gut feeling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흔히 나타나는 질병 중 하나입니다. 장-뇌 축(gut-brain axis) 이론에서는 장과 뇌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계속 상호작용한다고 봅니다. gut feeling을 통한 감각은 기존에 이미 저장되어 있던 장기기억 속의 지식과 현재의 상황에 대한 비교를 통해 뇌에서 평가되며,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처리됩니다.
그 결과 gut feeling은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라고 인지되는 것이죠. 그러나 장에서의 느낌과 뇌의 판단이 항상 일치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백여 미터 높이에 달하는 전망대에 올라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리 바닥 위에서 경치를 감상할 때 뱃속에서는 불편감이 느껴지고 위험하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지만 뇌에서는 위험하지 않으며, 괜찮을 것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비단 소화기 계통에 한정되는 느낌뿐만 아니라 gut feeling은 더 넓은 의미에서는 본능과 직감 자체를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다양한 환경적 위협 속에 적응하며 살아왔고, 경험과 학습을 통한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되면서 신체적 또는 정서적으로 위협이 되는 것, 생존에 위협이 되는 대상이나 상황을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었습니다.
Gut feeling은 그 과정에서 정보 취합 및 추론을 통한 복잡한 의사결정과 고차원적인 인지처리 단계를 거치지 않고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과거의 경험과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육감’과 유사한 직감과 본능적 느낌을 통해, 또 다양한 신체 반응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지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본능과 직감은 일반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특정 상황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또, 건강과 관련된 일이나 행동을 결정할 때, 낯선 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결정이 필요할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의사결정의 순간마다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에 의한 의사결정과 본능과 직감, 즉 gut feeling에 의한 결정 중 무엇을 따라야 할지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실제로 이에 관한 논쟁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독일의 심리학자로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한 게르트 기거렌처(Gerd Gigerenzer)는 저서 <생각이 직관에 묻다(원제 Gut Feelings: The Intelligence of the Unconscious)>를 통해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높아진 현대사회에서 최상의 선택을 위한 수많은 고민과 조언들이 존재하지만 직관을 통한 결정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양한 정보에 대한 복잡하고 신중한 인지처리 과정을 거친 의사결정과 직관과 본능에 따른 신속한 결정 중 어느 것이 나은지를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가지 의사결정 방식 모두 필요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단지 상황이나 정보의 특성에 따라 둘 중 어떤 것이 더 적합할지를 생각하고, 더 나을 것으로 판단되는 방식을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매우 중요하고 파급력이 큰 사안,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있고 많은 정보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는 일,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는 복잡한 인지과정을 거친 의사결정 방식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촌각을 다투는 일, 생명이 달린 일처럼 위급한 일, 많은 정보를 수집하지 않더라도 결정 내릴 수 있는 일, 혹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비교적 덜 중요하고 파급력도 적은 일(ex. 식사 메뉴 정하기, 지하철로 이동 시 다양한 경로 중 어떤 길을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직관과 본능에 따르는 선택을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직감과 본능, gut feeling이 우리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자 할 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무시하거나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나요? 물론 본능과 직감에만 의존해 이성적 판단이 가져올 수 있는 이익이나 긍정적인 결과를 보지 못한 채,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능과 직감이 때로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며, 이성적 판단 못지 않게 좋은 의사결정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감과 본능, 이성과 합리성을 조화롭게 활용하며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