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심리학 8 -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다면

2024-08-19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다음 중 학창 시절 당신만의 찍기 방법이 있다면? 

① 연필을 선택지 위에 세우고 손을 놓아 연필이 가장 가까이 떨어진 선택지를 고른다. 

② ‘어느 것을 고를까요’ 노래를 부른다. 

③ 오늘은 ‘3번’이다! 하나의 번호에 올인한다.

 

“골라 주세요! 오늘 점심 메뉴 짬뽕 대 설렁탕!” 

“이직을 앞두고 고민입니다. A 회사 대 B 회사! 선배님들 결정을 도와주세요!”

 

선택은 언제나 어렵다. 그래서 선택을 쉽게 못 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이르는 다양한 말들도 생겨나는 것이겠다. 이번 장에서는 당신이 지금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활용할 만한 몇 가지 심리학을 소개해 보려 한다.

 

§ 맑은 정신에 바른 선택이 깃든다

첫 번째는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컨디션이다. 이스라엘 교도소의 가석방 절차에 관해 진행되었던 연구를 살펴보면 수감자들의 가석방 여부는 판사의 컨디션에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연구에서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수집된 1100여 개의 사법 판결을 분석한 결과, 하루의 시작 또는 판사의 식사시간과 휴식 직후에 이루어진 심리일수록 수감자에게 관대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컸다. 반면, 식사시간 직전의 판결에서는 수감자 대다수의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믿지만 사실은 배고픔이나 피곤함, 체력에 너무나도 쉽게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결정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를 지치게 하며 이를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고 부른다. 심리학자 캐슬린 보스(Kathleen Vohs)와 연구진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때 우리의 자제력이 얼마나 약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선택 조건’에 놓인 참여자에게는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티셔츠, 향초, 샴푸, 사탕, 양말 등 여러 가지 종류의 물건을 늘어놓고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선호하는지에 대해 연속적으로 선택하도록 했다. 그들은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무려 300여 개의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비선택 조건’에 놓인 참여자들은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물건을 보되 선택을 하지는 않고, 지난 1년간 그 제품을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대한 설문을 작성했다.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두 집단 참여자들이 들인 노력의 강도는 비슷한 수준인 셈이었다.

그러나 두 집단의 참여자들이 이후에 보인 자기통제력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심리 실험에서는 보통 얼음물에 손을 담그게 한 뒤 얼마나 오랫동안 버티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자제력을 평가하는데, 이 연구 참여자 중 선택 조건에 놓였던 사람들은 비선택 조건에 놓였던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얼음물에서 손을 뺐다. 연속된 선택으로 지친 나머지 자제력이 떨어진 것이다.

그 밖에도 충분하고 적절한 수면을 취했을 때 의사결정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를 비롯해 컨디션이 판단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이처럼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에는 생각 이상으로 큰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러니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는 충분히 자고, 충분히 먹고, 충분히 쉬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자. 몸의 컨디션이 뇌의 컨디션을 결정한다.

 

때로는 선택할 일 자체를 아예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만 들으면 다소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국의 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도 한 인터뷰에서 “저는 결정해야 할 다른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매일 아침 무엇을 입을지까지 결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회색이나 파란색 정장만 입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을 것이다. 바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다. 그를 상징하는 검은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 또한 선택을 줄이기 위한 비책이었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 결정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든다. 그러니 중요한 결정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불필요한 결정 자체를 줄이는 것이 좋다.

이때 무엇이 필요한 결정이고 무엇이 불필요한 결정인지를 나누는 기준은 당신에게 달렸다. 커피를 마실 때 어떤 원두를 고를지, 오늘은 어떤 액세서리를 착용할지 등이 삶의 기쁨이라면 그것은 소중한 일이므로 꼭 남겨두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옷을 입을지가 중요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어떤 샴푸를 쓸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선택지 중 스스로 의미 있는 선택지는 남겨두되, 그 외에 자신을 오로지 피곤하게만 하는 선택지에 대해서는 아예 한 가지를 정해놓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절약하기를 권한다.

 

사진_ freepik

 

§ 내 인생을 박살 내는 선택이란 없다

이쯤에서 우리가 왜 선택하기를 어려워하는지도 생각해 보자. 대개는 그 선택의 결과를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선택지가 없는 상황을 은연중에 반기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무력감과 좌절감을 주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어 준다. 그러나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책임감의 무게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이럴 때는 미래의 내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지?”라고 질문했을 때 나름의 대답을 할 수만 있다면 자책감을 느낄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 선택이 결론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든 나쁜 선택이었든 당시에 왜 내가 그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두라는 뜻이다. “두 회사 중 이 회사로 이직하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연봉은 낮지만 내가 원하는 경력을 더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야!” 같은 식이면 좋다. “그냥 더 생각하기 싫어서 골라버렸어!”보다는 이 대답이 낫지 않을까? 미래의 나에게 조금 더 나은 해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려 보자.

선택의 순간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쉽게 압도되거나 순간에 주어지는 수많은 정보 때문에 오히려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럴 때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심리적인 거리(psychological distance)’를 두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미래의 내가 결정한다면’, ‘다른 사람이 결정한다면’, ‘아주 먼 곳에서 결정한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선택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져 보는 것이다.

심리적 거리 두기와 관련된 연구도 있다. 이 연구에서 한 집단은 당장 내일 자동차를 산다는 가정하에 글을 쓰도록 요청받았고, 다른 집단은 1년 뒤에 자동차를 산다는 가정하에 글을 쓰도록 요청받았다. 그런 다음 연구진은 그들에게 서로 다른 자동차 네 종에 관한 열두 가지 정보를 제시한 뒤, 어떤 자동차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지 선택하게 했다. 이때 먼 미래인 1년 뒤에 자동차를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사람들은 당장 내일 자동차를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집단에 비해 객관적으로 더 나은 조건의 자동차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니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나로부터 잠시 거리를 둬보자. 눈앞의 정보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불안은 전두엽의 기능을 떨어뜨려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한다. ‘한순간 잘못된 선택으로 나는 언제든 끝장날 수도 있어!’라는 마음은 안타깝게도 우리를 오히려 잘못된 선택으로 유도한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말해 주자.

 

‘어떤 선택이든 괜찮아. 이건 삶의 수많은 순간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어떤 선택도 나를 영원히 구속할 수는 없어. 만약에 아쉬운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에 맞춰서 또 해결하려 노력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당신을 위로하려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단 한 순간의 결정으로 우리 삶이 통째로 산산조각나는 선택이란 존재할 수 없다. 때로는 아쉽고 후회되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그 후에 수습할 것이 있다면 또 수습해 나가면 된다. 당신이 어떤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든 이런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문을 열어 나가길 바란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반유화 원장

-『출근길 심리학』에 수록된 에피소드 「반복되는 월요일이 여전히 두렵다면」에서 발췌·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