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심리학 5 - 연기만 늘어가는 당신을 위해
정신의학신문 |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표정관리의 시간이 또 찾아왔다. 사수와 함께하는 점심시간은 정말이지 고역이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농담에 일일이 반응해 줘야 하는 건 물론이고, 더 견디기 힘든 건 사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 생각을 묻는데, 조금만 망설이면 "네 생각은 많이 다른가 보네?" 하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척하는 게 먹히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뇌에 힘준다'라는 표현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본능을 억누르고 최대한 의지를 발휘해 말이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을 의미하는 유행어다. 뇌는 사람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근육이 아니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만 보면 틀린 말이지만, 사실 이 말만큼 감정노동을 잘 드러내는 표현도 없는 것 같다. 직장생활에서도 '뇌에 힘을 주고' 표정과 말투, 단어를 다듬는 과정이 빠질 수 없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80년대에 비로소 등장했다.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Alie Russell Hochschild)는 항공사 승무원들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는 식으로 다스려 표정이나 신체를 통해 외부에 드러내는 행위'를 감정 노동이라고 처음 정의했다. 혹실드는 승무원들이 기내 복도 사이로 무거운 기내식용 손수레를 끄는 육체노동과 비상 탈출 상황에 대비하는 정신노동을 수행하는 것 말고도 승객들에게 즐겁고 안전한 곳에서 충분히 배려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짓고 상냥한 말투를 사용하는 등의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 이후 마침내 감정노동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감정노동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걸까? 그 괴로움은 내가 실제로 느낀 감정과 상대에게 드러내야 하는 표현 사이의 간극에서 시작된다. '감정 부조화(emotion dissonance)'라고 부르는 이 간극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순간적으로 갈등에 빠지면서 긴장한다. 차를 타고 갈 때 눈으로 보이는 풍경과 귀의 전정기관으로 전해지는 정보 사이에 간극이 생길 때 멀미가 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마음에도 일종의 멀미가 나버리는 것이다. 그 긴장감은 우리를 소모시키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렇다면 상대를 마주하며 순간적인 내적 갈등을 다루는 동안 우리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최대한 숨기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대응이다. 이때 받는 스트레스는 물론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할수록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이중적이거나 가식적인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기 쉬운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간극이 잘 다스려지지 않아 마음의 소리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에 그것대로 우린 꽤나 곤란한 상황을 맞이한다. 실제로 손해를 입을 수 있을뿐더러 이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본능적인 감정 자체가 위험하고 부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감정을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
감정노동이 힘든 이유는 더 있다. 회사에서 극심한 감정노동을 해낸 후 집에 돌아와 사소한 일로 가족에게 짜증을 낸 뒤 후회해 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억눌려 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편한 사람에게 분출한 뒤에 밀려오는 자책감 역시 감정노동이 고통스러운 이유다.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자신의 가치를 저도 모르게 점점 낮추게 될 수도 있다. 상대가 나를 무례하게 대하고 마음대로 규정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를 향한 상대의 태도를 나도 모르게 내면화하여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의 생각대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노동의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결과다.
▶ 우리 안의 아이들
이제부터는 우리가 감정노동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자. 그걸 왜 알아봐야 하냐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을 더 잘 이해할수록 우리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놀랍게도 사람을 무시하는 이들의 이면에는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이 상황을 바꿀 만한 힘을 갖지 못한 약한 존재라는 무력감 역시 존재한다. 그래서 분노나 비아냥, 무례함을 탑재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다 못해 드러누워서 팔다리를 휘젓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아이에게는 장난감을 살 수 있는 돈도, 힘도 없다. 부모님의 허락 없이 장난감을 손에 넣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이다.
물론 아이일 때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모든 성인에게는 아이일 때 겪었던 이 감정과 몸부림이 여전히 뿌리 깊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감정적으로 취약한 상태가 되면 (우리가 성인임을 잠시 잊은 채) 그때의 감정이 다시금 솟구치는 것이다! 이제는 그때처럼 무력한 존재가 아님에도 무의식중에 자신을 힘없는 존재처럼 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나의 지위를 부적절하게 사용한다.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으나, 각자의 경험은 다양하므로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과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강렬한 감정일수록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소환된다. 여러 연구에서도 '나는 언제든 무시당할 수 있는 존재다.', '남을 믿으면 반드시 상처 입게 된다.' 등 어린 시절에 형성된 나와 세상에 대한 부적응적인 믿음이 잘 조절되지 않는 경우에는 성인기에도 비슷하게 드러나며 삶의 방식과 대인관계에도 강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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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보호하는 연기 수업
그렇다면 우리는 감정노동에 처하는 상황에서 나를 더 잘 보호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두 가지 전략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는 내면의 감정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표현은 상대에 맞춰서 해주는 '표면연기(surface acting)'다. 예를 들면, 상사의 말에 속으로는 '또 한심하고 재미도 없는 소리나 하고 앉아 있네.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웃으며 "하하, 선배 완전 웃겨요. 그런 재미있는 얘기는 어디서 알아 오시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 모두에게 익숙한 방법이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드러나는 표현뿐만 아니라 내면의 감정까지 조절하는 '내면연기(deep acting)'다. 별것도 아닌 일로 생트집을 잡는 상사에 대해 '그래, 내 앞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저 사람도 이렇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상처들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하고 연민을 느끼려 노력하면서 겉으로도 상냥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내면연기라고 할 수 있다. 어떤가, 이 방법은 조금 낯선가?
두 전략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두 가지 전략 중 어떤 것이 우리의 건강에 더 이로운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낫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하나의 전략만을 고수하기보다는 상대에 따라, 그리고 나의 컨디션에 따라 표면연기와 내면연기를 함께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 그럼 어떤 경우에 표면연기를 하고 어떤 경우에 내면연기를 하는 게 좋을까?
먼저 표면연기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하는 것이 낫다. 꼰대 상사에 대한 뒷담화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폭력적이지 않은 수준의 가벼운 뒷담화는 실제로 구성원의 심리적 괴로움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준다. 꼰대 상사의 성대모사까지 해가며 애환을 나누다가 다시 상사를 대할 때는 상냥하고 예의 바른 팀원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제 주연상급의 표면연기를 하는 나에 취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반면에 내면연기는 인간적인 연민을 느낄 만한 여지가 있는 상대에게 시도해 보자. 물론 모든 이에게는 연민을 느낄 만한 구석이 아주 조금씩은 있다. 모두 가지고 있을 법한 외로움과 두려움 같은 인간적인 취약함을 떠올려 보는 시도를 해둔다면 언젠가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한 명에게 표면연기와 내면연기를 모두 다 시도할 수도 있다. 이때는 내면연기를 통해 감정의 부조화를 어느 정도 줄인 후 표면연기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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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쳐도 괜찮다
그런데 이 모든 전략을 시도하기에 앞서 우리는 자신이 꽤나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으며, 아주 수고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분명하게 알려줘야 한다. 내가 언제든지 지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가 일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평소에 충분히 생각하고 마음속에 새겨두는 것이 좋다. 나의 가치를 나도 모르게 평가절하하려고 할 때마다 마음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만져 볼 조약돌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로지 돈이라는 의미만 남아 있더라도 괜찮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 내게는 그것이 필요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이렇듯 애쓰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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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꼭 강조하고 싶은 방법이 있다. 바로 도망치는 것이다. 물론 무작정 치는 도망이 아니라 '신중한 도망'이다. 감정노동은 스펙트럼 같아서 어디에서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감정노동의 강도가 유독 심한 관계나 업무는 분명히 존재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이들에 비해 특히 더 심한 괴로움을 반복적으로 느끼고 있다면 그 일과 환경이 당신에게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감정노동을 견디지 못하는 나를 질책하는 대신(뭔가를 견디지 못하는 건 질책당할 일이 아니다) 격려하면서 나에게 맞는 환경을 계속해서 찾으려고 노력해 보자. 도망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도망치는 것이 뭐 어떤가. 도망은 나쁜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을 잘 가꾸고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태도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뇌에 너무 힘주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반유화 원장
-『출근길 심리학』에 수록된 에피소드 「반복되는 월요일이 여전히 두렵다면」에서 발췌, 편집했습니다.